새로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이 사법이다. 현재도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사법개혁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원론적인 논의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개혁의 핵심을 포착하지 못하고 구체적 실행구상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예나 마찬가지다. 

개혁이란 근본문제와 핵심모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야 그 목표가 올바로 설정되고 구체적 실행계획이 현실성 있게 수립될 수 있다. 그동안 사법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은 핵심적인 ‘사법모순’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사법모순’은 ‘법률가 양성ㆍ충원에서의 실패’와 ‘사법부의 구조적 실패’를 말한다. 이 둘이 사법개혁의 양대 목표이다. 전문화된 각 영역마다 철저한 프로 법률가를 요구하고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사법시험 합격을 과거(科擧) 합격과 동일시하는 인식이 남아 있는 한,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또 사법부의 강고한 중앙집중식 관료주의와 폐쇄주의를 유지한 채 호봉단일화, 법정의 개선, 재판진행과 소송절차의 개선, 경향교류제, 근무여건 개선 등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개혁의 방향은 분명하다. 법률가 양성ㆍ충원에서는 사법시험이라는 일회적 ‘순간 승부’대신 ‘법학교육-법률가자격시험-직역연수-부적격자 퇴출-계속교육’이라는 유기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법률가자격시험에는 반드시 정규 법학교육을 이수한 사람만 응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법부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법독립’과 ‘사법책임’이라는 사법의 양대 원리에 합당하도록 사법부의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이는 사법부의 구조를 각 심급, 즉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단위로 인력과 재정 면에서 완전 분리하여 독립시키는 것이다.

그런 다음 각 법원의 구성방법과 판사의 충원 방법, 법원 운영시스템을 마련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재판의 독립, 판사의 충원과 인사, 판사 신분의 보장, 판사의 권위와 자부심 등과 관련된 문제들은 대부분 해결된다. 나머지는 이런 새 구조에 맡게 정비하면 된다.

새로운 법률가 양성ㆍ충원 시스템으로 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논의된다. 미국식 로스쿨(law school)의 도입이다. 나는 10년 전부터 이를 제안해 왔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제도의 채택보다 이를 성공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와 실행이다. 이를 위해서는 로스쿨 운영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연구뿐만 아니라 물적 설비, 교수 충원방법, 교육방법, 교육자료 개발, 새 학사관리시스템 구축 등 획기적인 시스템 전환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 투자가 필요하다. 과연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계획을 세우면서 로스쿨로의 전환을 운운하는지 걱정된다. 구체적 실행계획 없이 4년제 법과대학을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기만 한다면 ‘무늬만 로스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배심제는 문제점도 심각하고 폐지론도 만만치 않은데다 위헌문제까지 걸려 있고, 근본적 사법모순에 비하면 주변 문제이므로 더 많은 논의 후에 실시해도 늦지 않다. 판사의 종신제는 사법책임원리를 무시하는 반개혁이므로 개혁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판사감독제도와 부적격자 퇴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부디 개혁의 본(本)과 말(末)을 정확히 가려 ‘제대로 알고 하는 개혁’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정종섭
법과대학 교수ㆍ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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