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미술품 물납제의 현주소를 살펴보다

지난해 5월,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수호하며 민족 문화를 보전해왔던 간송미술관이 경영난과 거액의 상속세 납부 문제로 삼국시대 보물을 경매에 내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상속세를 현금이 아닌 미술품으로 대신 내도록 하는 ‘상속세 미술품 대납’에 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대학신문』은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 목적에서부터 문제점과 보완책까지 살펴봤다.

 

미술품 물납제란?

우리나라는 현재 상속세와 재산세에 한해 물납을 인정하고 있다. 물납 대상은 부동산과 유가증권에 한정되며, 미술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현행 물납제는 금전 납부가 어려울 경우에 상속·증여세가 2,000만 원을 넘고, 부동산과 유가증권의 비현금 자산이 상속·증여 재산 가액의 2분의 1을 초과할 때만 물납을 허용한다. 제한적인 상황에만 국가가 현금화에 대한 부담을 납세자 대신 지겠다는 취지다. 이는 미술품 상속세 물납제 도입이 어려운 배경으로 연결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윤영훈 연구위원은 “현금화의 어려움과 비상장 주식의 매각 손실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물납 대상 확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존재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미술품의 보유 및 거래가 재벌을 비롯한 고액자산가 위주로 이뤄졌기 때문에 미술품 물납제가 가진 자를 위한 제도라는 인식이 강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미술품 물납제와 현행 물납제는 도입 목적과 취지에 큰 차이가 있다. 납세 편의를 도모하는 현행 물납제와 달리, 미술품 물납제는 문화향유권의 증진이 목적이다. 이에 따라 현행 물납 허용 대상인 부동산, 유가증권과 달리 물납된 미술품은 현금화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며, 국립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이를 보유한다. 이렇게 되면 미술품이 처분되지 않으므로 문화 부문에 대한 예산 투입 효과가 발생한다. 양현미 교수(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는 “피카소 유족의 상속세 대납으로 확보한 피카소의 작품을 국립 피카소 미술관 건립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한 프랑스의 사례가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한 대표적인 예”라며 “미술품 물납제는 큰 돈을 들여 수집하지 못하는 가치 있는 미술품을 세금 대신 받아, 이를 보존하고 국민에게 공개하는 의미가 더 큰 제도”라고 밝혔다.

 

미술품 물납제, 어떤 문제를 안고 있나

미술품 물납제는 현행 물납제와 그 목적과 취지에서 차이를 갖지만, 현행 물납제와 공통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첫 번째 문제는 미술품 감정평가 문제다. 감정평가 문제는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위한 제1의 선결 과제다. 이 문제는 미술품에 대한 평가 가액 산정의 어려움에서 기인한다. 박상인 교수(행정대학원)는 “미술품 시장은 아직 활발하게 형성돼있지 않다”라며 “현행 물납 대상인 부동산과 유가증권도 평가 가액이 쉽게 정해지지 않으며,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평가 집단 내부의 담합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으며, 평가의 객관성 확보 문제에 관해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두 번째 문제는 조세 회피의 문제다. 박상인 교수는 “현금화를 위해 판매를 한 뒤 상속세를 내면 처분 과정에서 양도소득세를 내게 되지만 물납제를 이용하면 양도세를 회피할 수 있다”라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세제 혜택을 주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박훈 교수(서울시립대 세무학과)는 “상속이나 증여 재산은 가격의 등락에 따라 세금을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라며 “생존 작가의 작품처럼 가격 등락이 심한 경우는 물납 허가 요건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물납제가 부정한 경로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박상인 교수는 “회사 소유의 돈으로 미술품을 사서 개인 소장하고 있다가 물납을 하거나, 범죄에 연루된 자금을 세탁하는 경로로 물납제를 이용할 수 있다”라며 “구입 경위와 자금 출처에 관한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효과적인 국가의 미술품 확보를 위해서는

물납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감수하면서도 이를 통해 국가적으로 보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박상인 교수는 “국가적인 컬렉션으로 소장해야 할 필요성이 큰 미술품은 국가가 나서 처분이 이뤄지는 경매 등에서 직접 사들이면 된다”라며 “정부의 미술품 구입 예산이 적은 것이 문제이므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먼저고, 이것이 쉽지 않다면 미술품 수집을 전담하는 기금을 만들어 관리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히려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이 미술품 구입 예산 부족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양현미 교수는 “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기증해 올해 7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공개된 미술품은 한국 미술사에서 가치가 매우 높은 작품들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예산 48억 원으로는 해당 컬렉션의 한 점도 살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술적,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탁월할수록 미술품의 경제적 가치가 커져 국유재산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으므로 미술품을 물납으로 받아 국립미술관의 컬렉션으로 넣으면 정부는 예산 확대 그 이상으로 미술품 구입을 지원한 결과가 되는 것”이라 설명했다. 박훈 교수 역시 “세금을 현금으로 걷고 나서 그 돈으로 다시 미술품을 사는 것보다, 상속이라는 사유화의 길목에서 미술품을 물납받는 것이 국가가 좋은 미술품을 확보하는 경쟁력 차원에서는 더 효과적이다”라고 밝혔다.

미술품 물납제 도입은 그 부작용의 최소화를 위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미술품 물납 허용액에 관한 승인 한도의 지정, 현금납부자와의 조세형평 문제, 상속인 과다 수혜의 문제, 공정한 감정 문제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 이후에는 미술품 물납제와 현행 물납제 간 도입 목적 및 취지의 차이를 법제의 차원에서 구체화해야 한다. 윤영훈 연구원은 “부동산과 유가증권에 대한 물납은 지금까지의 물납 축소 기조에 따라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미술품 물납제는 별도의 문화지원 정책으로 검토할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미술품 물납제의 도입을 위해서는 가격 감정 문제, 현금납부자와의 조세형평 문제 등 선결돼야 할 과제가 많다. 그럼에도 문화향유권 확대라는 미술품 물납제의 취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악용 가능성과 현실적인 우려를 고려하며 본격적인 논의를 해나가야 할 때다.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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