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철 교수(교육학과)
신정철 교수(교육학과)

지난주 연세대에서 ‘대학원생들의 역량과 학문적 성장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2시간 정도 특강과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주제를 정한 이유는 앞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는 대학원생들의 학문적 역량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박사생들의 참여가 많았고, 온라인 토론으로는 이례적으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은 자연스럽게 대학 랭킹에 관한 이슈로 흘렀다. 세계 랭킹에서 아시아 대학들의 약진과 이러한 순위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초점이 모아졌다. 

필자는 그에 대한 답으로 미국 보스턴대학 필립 알트바흐 교수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2012년 독일의 Ulrich Teicher 교수 퇴임 학술대회에서 알트바흐 교수는 필자에게 아시아에서 세계적인 대학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 질문했다. 필자는 아마도 20~30년 내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 답했다. 알트바흐 교수의 같은 질문에 대해 홍콩에서 40년 이상 교수를 하고 있는 동료 학자 한 분도 똑같은 의견을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나와 그 홍콩대학 교수가 말한 이유다. 아시아의 대학들은 ‘학술문화’(Academic Culture)가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들은 자신만의 학술문화가 취약하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에 취약하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학문적 수월성(Academic Excellence)을 이루기 어렵다.

소위 대학(University)이라고 불리는 사회적 기관은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그런 자치의 정신과 학문의 자유에 기반한 연구가 밑바탕이 돼 인류의 평화와 번영, 공존, 행복한 삶을 이끌어갈 사상을 제시하고,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적 기반을 제시하는 곳이 대학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대학들은 자치, 학문의 자유라는 토대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당연히 인류의 삶을 이끌어 갈 세계적인 사상이나 기술이 나오기 어렵다. 물론 아시아 대학들은 최근 논문의 양적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양적인 성장은 논문의 수, 인용된 수 등으로 계산한 것이다. 양적인 성과는 비교적 명확하고, 무엇을 어느 정도 높여야 하는지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준다.

서울대도 2007년에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면서 ‘겨레의 대학에서 인류의 대학으로’라는 모토를 내걸고 2025년까지 세계 10위권 대학을 목표로 설정했다. 다소 허황돼보였지만, 장기적인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이 흠이 되지는 않는다.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기 이전인 2005년 서울대의 QS 랭킹순위는 세계 93위, 2010년에 59위, 최근 발표한 2022년 순위는 36위다. 상위권에 속한 대학들은 변동이 거의 없으며, 철옹성과 같다. 세계 10위권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 학문의 자유를 바탕으로 학술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학술문화는 서로 다른 생각과 사상에 대하여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며, 교수는 자신의 연구주제에 천착해 이를 끊임없이 탐구해 발표하고, 그런 노력과 성과를 인정하고, 격려하며, 함께 학술 공동체를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다.

학술문화의 형성은 긴 안목을 가지고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학술문화가 제대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좋은 인재들을 모으고, 학술이 숭상되는 거버넌스를 구축하며, 재정을 포함한 충분한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제 서울대는 미래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기 위해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새로운 장기발전계획은 양적 성장 일변도로 치중했던 것을 벗어나, 대학을 질적으로 한 단계 더 성숙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긴 호흡과 안목을 바탕으로 학술문화를 발전시키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할 구체적인 방안들이 담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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