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서울대 박물관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 건축 100년〉

서울대 건축학과와 BK사업단이 한국 현대 건축 100년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특별기획전을 공동 주최했다. 내년 2월 2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박물관(70동)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건축학과 출신 건축가들의 과거 작품과 교수진의 최근 작업을 다루며 한국 현대 건축 발전에 기여한 서울대의 역할을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 건축 100년과 한국 사회

전시에 기획의원으로 참여한 김승회 교수(건축학과)는 건축을 ‘개인과 사회의 삶을 공간으로 조직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박물관 2층 전시는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 출신 건축가부터 현재에 이르는 100년의 한국 건축을 조망한다. 

한국 건축은 1919년 배출된 경성고공의 제1회 졸업생들로부터 시작됐다. 박길룡 건축가는 1930년대에 조선총독부에서 나와 화신백화점과 보화각 등을 신축 설계했다. 시인 이상이 경성고공을 졸업해 조선총독부 영선계(營繕係)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은 관람자의 관심을 자극한다. 그의 시와 그림은 조선건축회 기관지를 통해 처음 발표됐고, 건축잡지 「조선과 건축」 표지 디자인 공모에 그의 도안이 당선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인 전남도청 회의실 역시 경성고공 건축과 출신 김순하가 1930년대에 작도한 도면으로 건축됐다. 당시건축은 조형 미술이라기보다는 공학적 산물로, 바우하우스*와 모더니즘에 기반했다.

해방과 전쟁 이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건축 프로젝트가 이뤄졌다. 남산타워 건설 등 도시 개발사업이 시작됐고 고층 아파트와 지하도, 지하철, 터널, 고가도로가 지어지면서 근대화와 함께 정체성의 혼란도 나타났다. 이에 따라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시도한 한옥의 현대적 해석을 통해 드러나듯 한국 전통을 건축에 어떻게 접목해야 할지가 주요 문제로 떠올랐다. 한편 김승회 교수는 당시 지어진 세운상가를 ‘한국 근대의 야망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종로 3가부터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약 1km의 세운상가는 남북 방향으로 건설되면서 청계천과 종로를 따라 형성된 서울의 동서(東西) 가로망 구조를 단절한다. 당시 서구에서는 이런 메가구조*가 기획 단계에서 끝나고는 했지만, 세운상가는 건축가와 사회의 협력으로 실제 건설까지 이를 수 있었다. 1980년대에는 올림픽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면서 건축을 통해 한국을 보여주려는 국가적 프로젝트들이 생겨났고, 2000년대에는 세계화와 함께 새로운 건축 방식이 나타났다. 

 

건축의 결구(結構), 디자인과 공학의 결합

박물관 1층으로 내려오면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진의 최근 작업물을 살필 수 있다. 건축학이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시대 상황상 건축은 예술로만 존재할 수 없었기에 건축 디자인과 건축 공학이 경성고공 시절부터 결합한 상태로 유지돼왔다. 김승회 교수는 1층의 키워드가 디자인과 공학의 결합이라는 의미의 ‘결구’(Fabrication)라고 설명한다. 

김승회 교수의 ‘서울 시네마테크’는 결구에 집중한 실험적인 프로젝트다. 서울 시네마테크는 충무로에 영화 문화공간을 만들기 위해 진행된 국제지명 설계 공모 제출작이다. 그는 현장성이 중요하고 즉흥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영화 매체의 특성을 고려해, 철골로 된 프레임을 짜놓고 건물을 바꿔나갈 수 있게끔 한 디자인 콘셉트를 구성했다. 건물은 이중의 입체 구조 시스템으로 이뤄져 선형의 입체 구조가 발코니, 녹색 공간, 계단 등의 많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대 건축도시이론연구실의 ‘정의와 제도’는 시인 이상의 「동경」 중 “카인의 말예들은 별을 잊어버린 지도 오래다”라는 말을 모티브로 삼아 비정의(非正義)의 도시를 지적한다. 삶의 진실이 담긴 교정시설, 장애인 학교, 공동묘지와 같은 시설은 배제한 채 문명의 이기만을 미사여구 아래에 담아 차별을 강요하는 비정의를 담아냈다. 건축도시이론연구실은 도시의 기초가 정의임을 강조하며, 차별을 차이로 승화해야 한다는 점을 문제의식으로 삼아 여성 전용 직업훈련 특화 교정시설을 구상했다.

김승회 교수의 '서울 시네마테크' 프로젝트
김승회 교수의 '서울 시네마테크' 프로젝트

 

건축의 역사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시간은 지나가 버리지만, 공간은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를 점유한다. 김승회 교수는 “공간은 시간과 더불어 우리에게 삶의 조건으로 주어진다”라고 말한다. 한국 건축 100년을 다루는 것은 건 축만을 이야기하기 위함이 아니다. 건축은 도시의 이야기이자 근현대 한국인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승회 교수는 “한국 건축사는 사다리의 역할을 한다”라며 “역사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작품이 사다리의 발판이 돼주고, 미래의 건축가들은 그 발판을 밟고 한층 위로 올라간다”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그려온 미래: 한국 현대 건축 100년>은 미래 건축가들에게 특정한 방향을 요구하지 않는다. 전시는 미래 건축가들에게 우리가 어떤 자산과 기반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한국 건축이 100년 동안 이룩한 단단한 역사를 통해 미래 건축가가 더 활발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하리라 기대한다는 뜻이다. 김승회 교수는 “최근 〈오징어 게임〉이나 〈기생충〉같은 한국 콘텐츠가 주목받는 것은 지금까지의 한국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라며 “한국 건축계도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것을 이겨낸 노력을 통해 앞으로 더 대단한 성과를 이뤄내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김승회 교수가 건축을 ‘개인과 사회의 삶을 공간을 통해 조직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하듯, 공간은 개인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수단이다. 누군가의 집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듯이 한국 건축을 이해하는 것은 곧 한국이라는 공동체에 속한 내 정체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건축 이야기 그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건축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내가 속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이고, 나와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건축의 역사를 알아보고, 더 나아가 우리 공동체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파악해보는 것은 어떨까.

 

*바우하우스(Bauhaus): 1919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에서 설립·운영됐다. 공예 부분의 장인을 육성하기 위한 학교로 출발해 현대 디자인의 완성을 이룩한 장소로, 모더니즘에 영향을 줬다.

*메가구조(Megastructure): 거대한 건축물이나 인공 구조.

 

사진: 백수지 기자 sjvaqu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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