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솔(판화전공 석사과정)
강솔(판화전공 석사과정)

나의 학우들은 종종 내가 밥을 먹으며 뇌를 그만 회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어떤 화두가 던져지면 늘 상상의 나래를 펼쳐 친구들 앞에서 한 편의 만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날개 돋힌 듯 자유롭게 날아 원하는 곳으로 도달한다. 어쩌면 석사 과정의 본질이자 정수라고 할 수 있는 논문 심사에 1차부터 불합격하게 된 것 또한 이런 비대한 상상과 만담 같은 단어들 때문일 것이다. 주도면밀하고 방어에 능통한, 그러면서 동시에 핵심을 꿰뚫는 단어들을 골라 문장을 지어내지 못한다는 것은 연구자에게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자 단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의 나래와 세상에 대한 시선을 그대로 휴지통에 버려 버린다면 2년간 펼친 상상의 나래에게 도리가 아닐 것 같다. 언젠가 버려버린 미숙한, 그러나 치기 어린 옛날 글이나 그림들이 요즘들어 그립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면을 빌어 초고의 초록 부분을 일부 발췌한 생각에 내 멋대로 살들을 붙여 다시 기록해보고, 부끄럽지만 학우들에게도 나의 시선을 공유하고자 한다. 

종종 친구와 농담조로 ‘현생은 폰을 켜면 사라질 허상일 뿐인 것을…’ 이라는 대화를 밈처럼 주고받곤 한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는 용어인 ‘현생’은 자신의 실제 삶, 혹은 지금 해야 할 자신의 본분을 뜻한다. 실제 삶을 따로 구분짓는 용어가 생겨났다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삶이 중요하게 자리잡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상 세계 속 다른 자아가 존재할 수 있고, 그것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현실의 삶과 현실이 아닌 곳에서의 자기 자신을 분리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며 실제의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가상을 통해 오히려 진정한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멋진 나를 드러내는데 집착하기보다는 멋진 버섯 농사꾼이 될 수도, 일상을 나누는 유튜버가 될 수도, 그 다양한 것들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로 인해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느꼈다. 가상의 영역과 규칙에 기반한 교류 플랫폼 속 온라인 자아가 현실에서의 그것만큼이나 중요해지면서, 가상이기에 더욱 완벽해질 수 있는 다른 자아들처럼 내 세계를 둘러싼 매끈한 서사를 공유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오늘날 훈련받은 사람들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서사의 세계에 살게 되는데, 이런 완벽하게 자신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황은 오히려 새로운 압박이 되고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완전하지 않아서 괜찮았던 가상 세계에서만큼은 굳이 완벽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텐데…

나는 인터넷 속 세상과 서사가 유행하기 이전부터 미술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의 가능성을 찾았고, 이를 통해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다양한 즐거움과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현실에서 직면하기 어려운 많은 어려움들에 대해 ‘판화를 찍는 행위 속에서’ 혹은 ‘찍어낸 것들 속에서’ 쿠셔닝을 느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됐고, 나의 작업에도 위와 같은 요소들이 필연적으로 들어가게 됐다. 나는 매끈하고 완벽한 서사에 반하는, 비선형적·다변적 상상과 그 과정을 드러냄으로써 이런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논문을 통한 설득에 장렬히 실패했지만, 나는 여전히 판화의 본질적 속성이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매력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오늘날의 개인 혹은 사회를 드러낼 때 그 속성들은 오늘날 미술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도 더욱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작업과 삶의 태도를 통해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도대체 이 사람이 현생의 대안으로 제안하는 판화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언제든 예술복합연구동(74동) 판화 작업실을 방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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