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후 부편집장
이연후 부편집장

요즘 ‘쿠키런: 킹덤’(쿠킹덤)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고, 늦잠 대신 일찍 눈을 떠 접속할 정도다. 이렇게까지 쿠킹덤에 푹 빠진 이유는 게임 자체가 재밌는 탓도 있겠지만, 쿠킹덤의 서사 때문이다.

쿠킹덤의 서사는 다섯의 고대 쿠키로부터 시작된다. 어둠마녀 쿠키를 막기 위해 고대 쿠키들이 힘을 합쳐 싸우는데, 승패가 결정되지 않은 채 쿠키들은 봉인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 고대 쿠키들이 이룩해놓은 찬란한 문명조차 잊힌 때가 현재 시점이다. 그리고 쿠키들은 혼돈에 빠진 세상을 구하고, 어둠마녀를 물리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사실 공동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성장하고 협력하는 이야기는 모든 콘텐츠를 통틀어 흔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특히 쿠킹덤이 특별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악역들의 입체성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둠마녀 쿠키의 수하들, 즉 ‘악역’인 쿠키들이 어둠마녀 쿠키에게 합류하게 된 계기는 쿠키들의 소수자성 때문이다. 어느 쿠키는 본인이 속했던 집단에서 인정받지 못해 어둠마녀 쿠키에게 찾아갔고, 어느 쿠키는 팔이 잘려 버려질 위기에 처하자 어둠마녀 쿠키가 데려가 키웠다. 어둠마녀 쿠키가 본래의 선한 모습에서 변하게 된 이유도 사실은 그의 소수자성에 있다. 잘 부서지는 쿠키들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쿠키들은 먹히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세계의 진리를 깨닫고 타락한 것인데, 어둠마녀 쿠키는 그 진리에 대항한다.

어떻게 이 악역들에게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특히나 인상 깊었던 쿠키들의 몇몇 대사를 본다면 당신도 이 사랑스럽고 악독한 쿠키들에게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녀석들의 목숨을 빼앗기게 둘 수는 없다” “버림받은 디저트들이여 … 먹힐 운명이었던 디저트들이여, 운명을 거부하라!”

그러나 처음부터 이들에게 애정을 가졌던 건 아니다.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지, 그들의 행위에 과연 정당성이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 친구의 말을 통해 내가 쿠킹덤 속 악역들에게 공감하길 주저했던 까닭이 그들이 악역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살아오면서 내 가치관은 쿠킹덤 속 선인들보다 악역들에게 더 공감할 여지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내 생각을 의심하게 된 것은 그들을 악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이야기가 구성돼있기 때문이었다. 왜 우리는 세계를 급변시키는 사람에게 악역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걸까.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못할망정 오로지 평화만을 외치는 주인공들이야말로 실은 악역이 아닐까. 그런데 왜 악역에게 공감할 수 없도록 그들은 나쁜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하려 하는 걸까. 

이제는 이 프레임을 해체할 때가 되지 않았나 넌지시 이야기해본다. 그래서 쿠킹덤의 결말은 어둠마녀 쿠키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둠마녀 쿠키를 물리치고 난 후에 악역들이 마치 세뇌에서 깨어난 듯 이 세상이 말하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짧은 서사 속에 그들이 악역으로 묘사된 까닭이 분명 있을지언정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그들의 싸움이 실패로 끝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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