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청년 놀이 문화에 대한 성찰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달고나 뽑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따라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오징어 게임〉 속에 등장하는 추억의 놀이처럼 즐거운 놀이를 즐기며 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빠른 경제적 성장 속에서 한국의 문화적 성숙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뤄졌고, 특히 ‘청년’의 놀이에 주목하는 시도는 부족한 상황이다. 『대학신문』은 현대 청년의 놀이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 놀이에 관한 여러 목소리를 담았다.

 

청년들은 어떻게 ‘놀고’ 있을까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의 개념에 주목해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정의했다. 하위징아에 따르면, 놀이는 △자발성 △탈(脫)일상성 △비경제성 △무목적성의 특징을 가지며 우리 삶의 본질이 되는 활동이다. 『노동사회에서 구상하는 놀이의 윤리』의 저자 김겸섭 교수(경상국립대 독어독문학과)는 “놀이의 본령은 함께 노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라며 “기존의 것을 자유롭게 전복함으로써 그 속에서 웃음을 창출하는 것이 놀이 본연의 기능”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놀이를 하며 현실 제도나 주류 사회의 정책이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욕망을 충족하고 삶의 주체로서 즐거움을 마음껏 표출한다. 또한 놀이는 나와 이웃 간의 결속을 다져주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김종갑 교수(건국대 영어영문학과)는 놀이를 ‘내 마음과 몸이 화해하고 조율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 낯선 사람, 세계와 화해할 때, 나와 세계의 관계는 적대적인 관계에서 친구의 관계가 된다”라며 놀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놀이가 갖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현대 청년의 놀이 문화는 지배적인 경제구조와 불가분한 관계 속에서 상품화·획일화돼 모방과 권태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매체의 발달로 인해 놀 거리는 많아졌지만, 반복되는 상업적 놀이 문화 속에서 ‘자발성’과 ‘진정한 만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권태와 피로가 채웠기 때문이다. 김화임 교수(전북대 독일학과)는 “카페 방문과 인스타그램 업로드, 술 게임, 넷플릭스처럼 대학생이 즐기는 놀이가 어떤 이에게는 유의미하거나 큰 재미로 다가올 수 있다”라면서도 “‘남들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하는 식’이 돼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상업적인 놀이 문화에 휘말려 들어간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종갑 교수는 “과거에는 같이 놀 사람이 없고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따분함을 느꼈다면, 현대인의 권태는 놀 것은 많지만 스스로 재미와 가치를 잃어버려서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청년들은 현재 자신의 놀이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까. 지난 2일(화)부터 9일까지 『대학신문』에서 서울대 구성원(학부생 62명, 대학원생 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년 놀이 문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6%가 하루 5시간 미만의 여가를 보낸다고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75% 이상이 한가한 시간에 주로 즐기는 놀이로 ‘친구들과 밥 먹기, 카페 가기, 술 마시기’ ‘넷플릭스, 유튜브 등 영상 시청’ ‘게임, SNS’를 꼽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이들 중 인터뷰에 응한 6명의 학부생은 평소 △사람들과 만나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대외적인 놀이 △전시회 등의 문화생활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선별하고 친구 태그하기 △SNS에서 진행되는 챌린지 등의 놀이를 즐긴다고 밝혔다. 또한 현재 청년 놀이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 중 공감되는 말을 모두 고르라는 질문에는 ‘놀이가 상품화돼 돈과 체력을 소비하는 식의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증가한 여가 시간을 의미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타인의 놀이를 모방하거나 늘 비슷한 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아 지겨울 때가 있다’의 세 선택지가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코로나19와 현대 청년의 놀이 문화

코로나19 사태는 청년의 놀이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가 비대면 사회를 앞당기면서 청년들이 여가와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졌고, 놀이 활동의 중요도가 높아짐에 따라 놀이 개념의 재정의가 이뤄졌다. 김재현 씨(경제학부·17)는 “‘논다’라는 것은 외부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에는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락거리이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일종의 휴식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자기 치유의 과정으로서 놀이가 갖는 가치가 크다”라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동 시간과 오프라인 만남 빈도도 감소하면서, 개인의 활동 반경이 변했다. 김종갑 교수는 “만나는 사람의 범위가 줄어들며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과 지역사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됐다”라며 “가까이 있는 사람과의 친밀감을 재확인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하며 집의 의미가 변화하기도 했다. 권수진 씨(지리학과·20)는 “집이 휴식의 공간이자 사회생활과는 분리된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바깥세상과의 경계가 불분명해져 두 세계가 융합된 공간이 됐다”라며 놀이 공간으로서 집이 갖는 의미가 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팬데믹으로 인한 단체 생활의 어려움은 놀이를 개인화시켰다. 놀이의 본질을 정의하기는 어려우나,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 중 무엇이 진정한 놀이에 더 가까운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김종갑 교수는 “놀이란 쌍방적 관계 속에서 재미와 자유를 느껴야 한다”라며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게 아니라 상호 조율하는 과정이 놀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화임 교수는 “혼자 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시간을 재밌게 보내고 나면, 높은 자존감을 얻을 수 있고 함께하는 시간을 더 기쁘게 만들 수 있다”라며 “혼자 경험하는 놀이는 처음에는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하지만, 진지하고 맹렬한 노력 끝에 ‘재미’에 도달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청년들은 사회적·문화적 변화에 맞춰 새로운 놀이 문화를 모색하고 있다. 청년 놀이 문화 실태 조사를 통해 청년들이 즐기고 있는 새로운 놀이 문화를 조사한 결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놀이로 간주하고 즐기게 됐다는 응답이 주를 이뤘다. 한편 SNS로 전파되는 놀이 문화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응답들도 다수였다. 김채연 씨(인류학과·19)는 “SNS 자체는 팬데믹 시대에 소통 도구가 되지만, 놀이 문화에는 안 좋은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SNS에 올릴 사진이나 영상을 선별하는 것이 놀이 시간의 일부가 됐고, 그 과정에서 인위적인 사진을 찍으며 즐거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청년 놀이 문화가 ‘카페’로 대표된다는 점에서 청년 놀이 공간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청년들이 자유롭게 공간을 공유하며 놀 수 있는 문화공간이 생기고 있고, 지금도 여러 곳에서 활발히 운영 중이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소셜 다이닝*을 진행하는 사단법인 ‘청년공간 이음’ 김효성 대표는 “신림동 일대의 1인 가구 청년에게 무료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사업을 시작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취업을 위한 공간이 아닌 놀이와 관계를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라며 “청년들이 생활하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많은 지역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목포에서 청년 마을 사업을 꾸려나가는 단체 ‘괜찮아마을’ 홍감동 대표 역시 청년을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함을 지적하며 “청년을 움직이는 것이 공공의 목적이나 사회적 가치보다는 ‘재미’라는 점에 기안해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한편 김겸섭 교수는 이런 청년 놀이 공간에 대해 “사회가 돈이 없어도 놀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주길 기대하기보다, 우리 스스로 놀이를 발명하고 발굴하는 것을 지향하는 커뮤니티가 많아져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문화 사회와 여가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서

한국은 근대 성장주의와 코로나19라는 몸살을 겪으며 이제 문화 사회·여가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정치권에서는 주 4일제에 관한 논의가 나오고, 청년들도 절대적인 수입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직업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등 여가를 충분히 확보해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그러나 여가 시간 확보 못지않게 ‘어떻게’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인지도 중요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문화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국가적 비전으로 ‘다양한 놀이 문화 활성화’, ‘놀이의 양극화 현상 해소’ 등을 제안한다.

다양한 놀이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가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공동체적 놀이에는 축제가 있다. 김화임 교수는 그의 논문 「놀이와 문화정책」에서 중앙정부가 축제를 평가하고 선정할 때 ‘놀이’를 중요한 잣대로 삼으면, 기획자가 더 적극적으로 축제에 놀이 요소를 구현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또한 외국의 사례를 참고해 놀이 문화 증진을 위한 정책 방향성을 설정해볼 수도 있다. 김화임 교수는 “독일 사회민주당은 주택 손질, 정원 가꾸기 등 소소한 개인 활동을 진작시키고, 주말농장 배당과 지역·마을 단위의 소규모 공동체 행사·축제에 대한 광범위한 지원을 정책 방향으로 내세웠다”라고 설명했다.

매체와 노동에 묻혀버린 놀이를 다양화해 청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놀이의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고 자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놀이를 촉진하는 정책 역시 필요하다. 김겸섭 교수는 놀이와 관련해 ‘커먼즈’(Commons, 공유 운동) 개념의 필요성을 얘기하며 “모두가 즐길 수 있고 자본으로 회귀돼서는 안 되는 공유재처럼, 누구나 사회적 계층에 상관없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워라밸 친화적인 부분을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감동 대표는 지역사회에서 청년이 놀며 자치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는 국가의 도움 없이도 자생 가능한 수익 모델을 청년들이 스스로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국가가 정책을 만들 때 실제 타깃인 청년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년들 스스로가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게끔 만들어줘야 한다”라며 당사자의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코로나19로 한층 빨리 다가온 비대면 사회로의 변화는 우리가 근대적인 ‘일하는 인간’의 개념에서 벗어나, 총체적인 자아를 실현하는 새로운 인간형을 추구해야 함을 알려준다. 자아를 구성해나가는 청년들에게 ‘놀이’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든 청년이 스스로 주체가 돼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즐겁게 놀이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소셜 다이닝(Social Dining): 함께하는 식사를 매개로, 사람들과 대화하며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소통 방식.

 

인포그래픽: 김윤영 기자 kooki1026@snu.ac.kr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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