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 놀러오세요, 덕후의 숲

‘덕후’는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한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중에서도 취미의 영역을 넘어 이를 직업으로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신조어 ‘덕업일치’는 덕질과 업이 일치한다는 뜻으로, 덕질의 대상이 직업이 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학신문』이 덕업일치를 이룬 서울대 덕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 제공: 한승석 교수)
(사진 제공: 한승석 교수)

 

국악인이 된 법대생

법대를 졸업했지만 국악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던 나머지 국악인이 된 사람이 있다. 바로 국악인 한승석 교수(중앙대 전통예술학부)다. 한 교수는 2018 남북정상회담 1주년 기념 판문점 공연에서 우리나라 국악인들을 대표해 무대를 선보였으며, 현재도 국악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교수는 전라남도 진도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남도 음악을 비롯한 국악과 가까이 지냈다. 대학 입학 후 그는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학내 전통춤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는 “학교 축제가 열리면 풍물패가 온 교정을 누비고 다녔다”라며 “내 DNA 안에 어릴 적부터 들었던 음악들이 내 깊숙이 잠들어 있다가 그때 비로소 깨어났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자가 꿈이었던 한 교수는 군 제대 후 취미로 즐기던 국악을 접고 취직 공부를 하려 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예인 이광수 선생의 가르침 하에 활동을 이어가면서 국악의 길로 들어섰다.

국악인이 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한 교수는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로 결심했다. 그는 “무모하더라도 그 당시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국악의 길로 들어서 다른 이들에 비해 내공이 부족하다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여러 스승의 가르침과 도움을 받으며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후 한 교수는 『끝내 바다에』라는 앨범을 발매하며 ̒표현력을 가진 판소리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뤄나갔다. 그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자리에서 판소리 대합창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다”라며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한 교수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행복하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로 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라며 “그러나 덕업일치를 이루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실컷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학생들에게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보람을 느끼며 사는 삶이 진정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전했다. 덧붙여 그는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걱정하기보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즐기면 다음 단계는 저절로 열린다”라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를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사진 제공: 와이랩)
(사진 제공: 와이랩)

 

웹툰으로 그려내는 역사

어려운 역사를 재밌는 웹툰으로 그려내는 덕후가 있다. 바로 웹툰 작가 ‘무적핑크’ 변지민 작가(디자인학부·09·졸)다. 어린 시절 그는 이집트 역사에 푹 빠져 만화책이 낡아 너덜거릴 정도로 역사 만화를 읽는 등 역사를 매우 좋아했다. 이런 흥미를 토대로 변 작가는 <조선왕조실톡>, <세계사톡>, <삼국지톡>까지 많은 역사 웹툰을 그려왔다. 

변 작가는 미대 재학 중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전히 취미로 시작한 SNS 연재지만, 이후 웹툰 플랫폼에서 정식 연재하게 되며 웹툰 제작을 본격적인 업으로 삼게 됐다. 그러나 역사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업으로 삼는 것에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변 작가는 “좋아하는 일이어도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감을 둬야 한다”라며 “웹 콘텐츠는 상품이기에 늘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제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역사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 대중들에게 역사를 재밌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변 작가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보다, 그가 대군 시절 고기를 편식하고 형인 세자 양녕에게 시비를 걸던 모습이 더 관심을 끈다”라며 “역사적 인물들의 인간적인 매력을 어필하며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역사적 인물의 매력을 끌어내기 위한 변 작가의 노력은 그의 작업 방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변 작가는 “인물의 입체적인 형태를 빚어내는 데 가장 신경을 많이 쓴다”라며 “정사, 야사, 문학작품 가리지 않고 모두 참고해 실제로 존재할 법한 인물상을 빚어내고 인물을 살아 숨쉬도록 만든다”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변 작가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다. 그는 “<조선왕조실톡>을 작업할 때는 학술자료를 사느라 한 달에 책값만 700만 원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삼국지톡>을 작업 중인 작업실에는 대한민국에서 나온 모든 <삼국지연의> 판본이 있고, 역사적 인물이 쓴 문학작품선집도 부지런히 모으고 있다”라고 준비 과정을 밝혔다. 이렇게 책장에 꽂힌 사료는 전부 그의 영감이 된다. 

변 작가는 '열심히 살았던 옛사람 소개'와 '역사에 대한 두려움 해소해주기'를 역사 웹툰 창작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웹툰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의 삶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삼국지톡> 완결 후에도 역사 웹툰을 연재할 예정”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이어간 덕후들이 있다. 덕업일치를 이룬 이들의 이야기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