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박진희 극작가의 이야기를 듣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그 발전 방향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중요하다. 과거에는 그런 역할을 철학자가 주로 했다면, 이제는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세상에 대한 사유의 기회를 대중에게 제공한다. 지난 18일(목)부터 28일까지 경기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박진희 작가의 희곡 「위대한 뼈」는 ‘철학으로 예술하기’의 대표적인 예다. 「위대한 뼈」는 사회의 압력에 억눌리던 50대 가장이 스스로 ‘펄떡거림으로 생존을 증명해야 하는 물고기’로 변한다고 느끼는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와 고뇌를 표현한다. 지난 25일 연극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박진희 극작가를 만났다.

(사진 제공: 박진희 극작가)
(사진 제공: 박진희 극작가)

 

매번 새로워지는 아날로그 예술의 매력

박진희 극작가의 꿈은 본래 연극연출가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 우연히 본 연극을 통해 무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다. 박 극작가는 “연극이론을 전공하면서 배우와 대본을 조율하고 수정 및 분석하는 ‘드라마터그’(Dramaturg)를 자주 했다”라며 “드라마터그를 통해 희곡 장르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문학성과 실용성을 모두 품은 희곡의 특성에 매료돼 본격적으로 희곡을 쓰게 됐다. 박 극작가는 “희곡은 대사에 함축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문학 장르인 동시에 공연을 위한 대본이라는 실용성을 함께 가진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OTT 플랫폼이 생겨나고, 쏟아지는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서 연극은 더 이상 많은 사람이 찾는 예술 장르가 아니다. 그럼에도 연극은 일회적인 무대를 통해 디지털 매체가 구현할 수 없는 반추의 장을 매번 새롭게 탄생시킨다. 박 극작가는 “연기·연출·무대·미학·희곡 등 모든 것이 무대를 통해 발화된 후 죽어 없어지지만, 무대는 다음날 공연에서 다시 살아나 또 다른 발화를 한다”라며 “열 번의 공연은 같은 내용일지라도 한 번 한 번의 공연은 배우의 호흡, 관객과의 공감대 형성에 따라 변하는 모두 다른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연극은 일회적이지만, 연극의 주제는 지속적이다. 그는 “연극은 인간의 본질을 캐는 예술이기 때문에 무대가 계속되는 한, 연극이 담아내는 사회적 주제는 살아있다”라며 “1970~80년대 희곡을 다시 무대에 올렸을 때 촌스럽거나 시대에 어긋난다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

「자살당한 자」 「개놈 프로젝트」 「당신의 방」 「슬푸다, 이도 꿈인가 하니」 「달각시가 달각달각」 그리고 「위대한 뼈」에 이르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무엇인지 묻자, 박진희 극작가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라고 답했다. 그는 “10년 동안 희곡을 쓰면서 인간은 무엇이고 인간의 가치는 어떤 것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다”라며 “「위대한 뼈」에서도 ‘인간이란 근본적으로 불안하고 우울하고 늘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존재’라는 그간의 고민이 표현됐다”라고 밝혔다.

「위대한 뼈」는 무한 경쟁 시대에서 뒤처진 수많은 사람들의 처절함을 표현한다. 하지만 박 극작가는 해당 작품 속 주인공 ‘병태’의 모습이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관찰한 것이 작품의 씨앗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화점 판매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있고, 최근에는 재난지원금을 동사무소에서 나눠주는 아르바이트를 신청했다”라며 “직접 하지 않는 한 그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렇게 관찰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고민을 작품에 담아내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와 같은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박 극작가는 극작을 하면서 슬럼프나 어려움이 특별히 없었다고 답했다. 그는 “연극은 돈을 많이 벌거나 크게 주목을 받기 어려운 장르이기 때문에 즐겁지 않으면 하기 힘들다”라며 “작품을 하는 것이 즐겁지 않아지는 순간 슬럼프가 찾아오겠지만, 내 경우 즐겁지 않았던 작품은 없었다”라고 얘기했다. 무대연출가의 디렉팅(Directing)에 맞춰 대본을 수정하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그마저도 설레고 즐거웠다는 그의 말에서 연극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엿보였다.

 

철학하는 연극의 미래를 그리며

박진희 극작가는 지난 10년간의 작품세계를 톺아보며 자신이 인간의 본질이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담다 보니 이야기를 어두운 방식으로 표출해왔다고 회상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앞으로는 인간의 이야기를 우화에 빗대는 등의 방식으로 인간의 밝은 면을 그려내고 싶다”라고 밝혔다. 

한편 박 극작가는 연극이 여전히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화,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 세월호 등의 사회적 이슈와 연극은 함께할 수밖에 없다”라며 “연극은 일방향적인 영상매체와 다르게 관객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극작가는 관객이 자신의 연극을 통해 사회의 방향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는 “다들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이 옳다고 믿고 살아가지만, 연극이 꼬집는 메시지를 보면서 내가 정말로 잘하고 있는지, 이 사회의 지향점이 올바른 것인지 질문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대학로 무대가 줄어들면서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연극은 침체기를 맞았다. 이제 박 극작가의 목표는 연극계의 부흥을 돕는 것이다. 그는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 연극 외에도 다양한 연극이 존재한다”라며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의 연극이 관객에게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작품을 만들고 소개하는 것이 연극인으로서도, 극작가로서도 가장 큰 지향점이자 바람”이라고 전했다. 

 

아날로그 예술인 연극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반복한다. 그 주제를 구현하는 무대는 매번 태어나고 죽지만, 그래서 새롭다. 즉, 삶을 통한 인간의 좌절, 불안, 고뇌라는 본질적인 주제는 매번 다른 무대에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연극을 통한 철학은 멈출 줄 모르는 우리 삶과 사회에 꼭 필요하다. 『대학신문』은 철학 하는 예술인, 박진희 극작가의 행보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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