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목걸이

이건학

눈, 2021.

하늘에서 눈이 내려와 소복이 쌓이는 그런 날이 있다. 축축하게 흩날려 괜히 땅만 질펀하게 만드는 진눈깨비나, 땅에 닿자마자 사라지는 싸라기눈과 달리,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을 정도로 보송하게 쌓이는 그런 함박눈. 나풀나풀 내려오는 커다란 눈송이는 거룩함마저 만들어내곤 한다. 인적 드문 곳에 찾아가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쌓인 눈을 보고 있으면 느껴지는, 아무것도 없이 쌓여 펼쳐진 눈의 향연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일종의 거룩함.

그런 거룩함을 느낄 때면 순백의 눈밭을 그대로 지키고 싶어진다. 어떤 침입도 허락하지 않고 그 순간을 영원히 보존하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순백은 그 어떤 것도 칠해지지 않은 순수함인 동시에,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결핍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핍과 순수함은 같다. 시간, 경험, 아니 그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결핍을 해소한다면 순수함은 깨진다. 그렇기에 꺄르륵거리며 눈밭 위에 뛰어들고, 눈싸움을 하고, 나뒹굴고, 기어이 순수한 눈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본인들의 놀이터로 삼을 아이들을 막아야만 한다. 마치 그 거룩함을 깨뜨리는 게 제 사명인 양 꼭 들어와 발자국을 잔뜩 남기고 돌연 가버리는 청년들을 막아야만 한다. 누구도 그 완전한 순간에 발걸음을 들여서는 안 된다. 순백은 언제까지나 오롯이 혼자만의 순백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눈밭이라는 것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이 필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어찌어찌 그 순수함을 지켜낸다 해도, 해가 뜨면 녹아 구정물로 뒤덮일 눈밭임을 잘 안다. 마침내 눈밭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기어이 어지럽혀진 채로 누군가의 흔적을 담아내야 한다면, 그 간섭의 주인공은 반드시 나여야만 한다. 그 순수함은 나를 통해서 채워져야 한다. 

그리고 오로지 나를 통해서만 채워져야 한다. 

목걸이, 2006.

그녀는 가슴 안에 시리도록 푸른 목걸이를 품고 있었다. 예기치 못하게 그 목걸이를 발견한 2006년의 가을, 10살 소년은 무언가를 ‘원한다’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다. 소년은 원하는 게 많은 아이였다. 10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나, 신상 로봇 완구나,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예쁜 색의 리코더처럼 여느 또래 아이들과 같은 것들을 원했다. 아니, 원하는 줄 알았다. 그녀가 차고 다닌 목걸이를 처음 본 날, 소년은 이제껏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받아쓰기 만점도, 신상 로봇도, 예쁜 색의 리코더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만 사실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다. 또 다른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금방 잊힐 그런 것들.

그러나 푸른 목걸이는 달랐다. 소년은 목걸이를 처음 본 순간 자신이 목걸이를 평생 기억하리란 사실을 직감했다. 목걸이를 사랑하고 끊임없이 원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어떤 것도 목걸이에 대한 열망을 대체할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알았다.

소년의 예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그 목걸이는 내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나는 요즘까지도 가끔 그 목걸이가 나오는 꿈을 꾸며 몽정한다. 

J, 2016.

J를 처음 본 것은 2016년의 여름이다. 나보다 오 년 하고 십칠 일 일찍 태어난 그녀는 피부가 우윳빛인 여자였다. 잡티 하나 없이 뽀얗고 보드라운 피부. J와 내가 함께 걷는 도중 우연히 마주친 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찌떡 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주택가 사이 어둑어둑한 그 여름밤, 꼬깃꼬깃한 마음을 어렵사리 꺼내 수줍게 고백하는 내게 그녀는 슬며시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일 아침에 바쁠 것 같은데, 나 화장하는 동안 머리 좀 말려줄 수 있어?

‘그래, 좋아.’ 내지는 ‘아니, 내 인생에서 꺼져.’를 예상했던 내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눈동자만 굴리는 동안, 그녀는 왼쪽 입꼬리를 씨익 올린 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몇 초가 흐른 뒤 그녀는 배시시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일 아침 일찍 내 집으로 와. 아침 같이 먹자. 드라이기는 집에 쓸만한 거 있으니까 따로 챙겨오지 말고.

J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떤 행동을 할지 도무지 예측이 안 되는 사람.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럭비공. 이게 내가 정의 내린 J였다. 그 럭비공이 튀어가는 모든 궤적이 하나의 실이 되어 나를 꿰찼고, 나는 그 궤적에 꿰여 끌려다니며 행복해하는 것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 실이 나를 본격적으로 꿰차기 시작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찾아간 J의 집에는 따뜻한 밥과 미역국이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J의 말대로, 성능은 좋으나 소리가 몹시 큰 검정 드라이기도 있었다. J의 집 현관 초인종을 누른 오른손은 10분 후 국자로 미역국을 퍼 담았다. 그로부터 20분 후, 오른손은 왼손의 도움을 받아 바쁘게 J의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다시 15분이 지난 후, 오른손은 J의 볼을 따뜻하게 스쳤고, 3분 뒤 J의 젖가슴을 애무하기 시작했고, 2분 뒤에는 J의 등허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다시 15분이 지난 후 오른손은 J의 왼손과 원래 하나였다는 듯 서로 꼭 붙잡은 채로 노곤하게 쉬고 있었다. 

선배. 응? 아침에 바쁠 예정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냥, 해보고 싶었어, 그런 척. 싱겁네요. 점심엔 짜장면 시켜 먹자.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J가 정한 내 몫의 메뉴는 짬뽕이었다. 자기 몫으로는 짜장면을 결정한 후 주문했다. 내 오른손이 짬뽕의 조개껍질을 까서 입에 털어 넣고, J가 짜장면을 한 젓가락 집어 오물오물 씹으며 J와 나의 연애는 시작했다. 

J와 자주 가던 디저트 카페의 주력 메뉴는 우유 푸딩이었다. 자기야, 꼭 나 같지 않아? 이 우유 푸딩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에요? 향긋하고 달콤하다는 거요? 아니, 그거 말고. 그것도 맞긴 하지만. 음, 뽀얗고 부드럽다? 비슷했어. 정답 알려주면 안 돼요? 매끈하고 희고 곱잖아, 이 우유 푸딩. 뽀얗고 부드러우면서 탄력도 있고. 자기, 나랑 지내면서 한 번이라도 본 적 있어? 나 피부에 트러블 생기는 거. 어젯밤에도 선배 피부를 정말 샅샅이 훑었다고 생각했는데, 본 적 없네요. 그러니까, 나랑 똑같다니까, 이 우유 푸딩.

J의 가장 큰 자랑은 우윳빛 피부였고, 나 역시 그 사실을 몹시 자랑스러워했다. 가끔 사랑을 속삭이며 내가 입으로 새기는 흔적 말고는 온몸이 균일하게 뽀얗고 흰, 흔히 말하는 ‘아기 피부’를 가진 여자였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너무나도 뽀얗고 흰 나머지 푸른 목걸이가 들어설 자리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J가 출근할 때 입던 분홍 셔츠 아래 숨은 가슴팍은 온통 우유 푸딩이었다. J와 손깍지를 낄 때마다 고개를 내밀던 손목 역시 우유 푸딩이었다. J가 좋아했던 크롭티를 입을 때마다 나와 인사했던 배꼽 역시 우유 푸딩이었다. 이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 중 오로지 나만이 느낄 수 있었던 J의 허벅지, 엉덩이, 발바닥 등 모든 곳이 우유 푸딩이었다. 어디를 훑어도 J는 우유 푸딩이었다. 자신을 우유 푸딩으로 온전히 채워냈기에, 푸른 목걸이 따위가 들어설 빈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J에게 푸른 목걸이가 있었다면 오히려 어색했을 것이다. 우유 푸딩은 눈과 같은 흰색이지만 그 밀도에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눈은 모든 걸 받아들이고 채워 넣는다. 에스프레소를 쏟으면 갈색으로, 딸기 시럽을 쏟으면 붉은색으로 물든다. 그뿐 아니라 쏟아진 자리 그대로 녹아내려 변한다. 하지만 우유 푸딩은 다르다. 에스프레소를 쏟으면 에스프레소가 위에 얹어진 우유 푸딩이, 딸기 시럽을 쏟으면 딸기 시럽을 곁들인 우유 푸딩이 된다. 무언가가 쏟아진 눈밭은 그것과 하나 되어 채워진다면, 쏟아진 우유 푸딩은 그 자체로 온전히 유지되며 추가된 무언가를 곁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우유 푸딩이 푸른 목걸이를 품고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없다. J의 가슴팍에 푸른 목걸이가 춤추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푸른 목걸이를 차지 않은, 우유 푸딩으로 만들어진 럭비공을 사랑했다.

목걸이, 2006.

2006년 가을, 소년은 다니던 합기도 도장에서 호신술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사범님이 짝지어준 연습 파트너와 함께 멱살이 잡혔을 때 필요한 술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열 살짜리 소년이 호신술을 아무리 연습한다 한들 실제로 성인이 나쁜 맘을 품고 멱살을 잡으면 대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우스운 사실이지만 그래도 15년 전의 나는 호신술만 잘 익히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파트너가 내 도복 깃 위로 멱살을 잡았고 내가 술기를 걸었다. 낑낑거리며 자세를 익힌 다음 교대했다. 멱살을 잡을 때는 Y자 형태로 되어있는 도복의 양쪽 깃을 양손으로 잡는다. 깃 끝을 말아쥐면 자연스레 멱살이 잡히고, 이제 파트너가 술기를 연습하면 그를 도와주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았다.

다만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파트너가 차고 있는 목걸이의 존재였다. 그녀의 피부는 반쯤 투명했다. 뛰어놀기 좋아하는 또래 아이들의 혈색 좋은 피부가 아닌, 창백하리만치 하얀, 하얗다 못해 투명한 빛깔의 피부로 둘러싸인 여자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후 겪은 10년은, 이성의 깃 자락을 양손으로 붙잡는 상황에서 긴장감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어쩔 줄 모르는 시선을 돌리던 중, 도복 깃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다. 창백하고 투명한, 자칫 손톱이라도 스치면 찢어질 듯 얇디얇은, 희고 고운 빛깔이었다. 그녀의 그 반투명한 피부 아래 푸른 실핏줄이 그대로 비쳐 보였다.

실핏줄은 거미줄처럼, 그러나 그보다 더 마구잡이로 얼기설기 기워져 있었다. 내 시야에 들어왔던 것은 도복 깃 사이로 보이는 핏줄뿐이었으나, 나는 분명 그 핏줄이 도복 아래에서 그녀의 목 전체를 두르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마치 목걸이처럼, 가슴팍에서 시작하여 어깨를 지나, 목 뒤까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실핏줄인 척하는 목걸이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푸른 목걸이 하나를 차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분명 그 목걸이 안에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을 텐데, 체온만큼 따뜻한 붉은 물이 실핏줄 안에 촘촘하게 스며들어 있을 텐데, 어째서인지 목걸이의 색은 시리도록 푸른 빛이었다. 보고 있으면 서늘한 기분이 들게 되는 그런 푸른색. 어느 순간 넋 놓고 바라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 서늘함이 함박눈이 되어 나를 덮치게 되는 그런 색. 

함박눈이 내리는 학교 운동장을 밤새도록 지켜본 적이 있는가? 눈이 내리는 가운데 두터이 쌓인 운동장 위 눈밭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눈밭에서는 순수하고 청량한, 그러나 한편으로는 냉혹한 서늘함이 느껴진다. 그 이유 모를 냉혹함의 언저리에 항상 안아달라는 아우성이 들리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 손바닥을 펴고 눈을 받았을 때, 체온에 녹아 사그라드는 그 아우성에 귀 기울인 적이 있는가? 쏟아지고 쏟아져 쌓이는 눈을 보고 있자면, 눈밭은 안아달라고 외치는 아이와 겹쳐 보인다. 그럴 때면 유년기에 달려가 폭 안기면 따뜻하게 반겨주는 어머니의 품이 되어 눈송이와 눈밭을 그러안아 품고 싶어진다. 눈은 차갑고 냉혹하다. 그러나 그 눈이 마지막까지 내지르는 비명은 뜨겁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가슴팍을 뚫어지게 쳐다본 그 1초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등골이 오싹할 만큼의 냉기 가운데 일말의 온기를 발견했다. 볼을 비벼 그 온기를 확인시키고 싶다는 욕망과의 처절한 싸움은 지금 생각해도 25년 인생에 가장 힘든 투쟁이었다. 

창백한 피부 아래 파묻힌 푸른 목걸이. 그것은 티 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더없이 불안하고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말없이 자리에 앉아 수줍은 미소로 일관하는 그 목걸이. 그렇게 본인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정작 아는 것도 가진 것도 없이 불안하게 뻗어 나간, 잘못 건드렸다가는 산산이 부서질 그 목걸이. 목걸이는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다. 목걸이로 무언가를 잡아 올리려거든 그 틈새로 사르르 도망쳐버릴 것이 뻔하다. 설사 잡는 데 성공하더라도 목걸이는 금방 끊어질 것이다. 목걸이는 채워져있지 않고,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녀의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목걸이를 둘러싼 그 상황만큼은 똑똑히 기억한다. 머뭇거리는 나를 기다리던 그녀는 술기를 걸었고, 손에 힘이 풀어질 대로 풀어져 제대로 멱살을 잡지 못하던 내게 핀잔을 줘가며 연습을 계속했다. 그때 나는 이미 그녀의 가슴팍에서 뻗어 나온 실핏줄에 온몸이 연결된 마리오네트였다. 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채 그녀의 손놀림을 따라다니며 낙법을 치고, 넘어지고, 발기된 성기가 티 나지 않도록 엉거주춤 일어나 도복 깃을 잡고, 목걸이를 봤다. 

그날 이후로 그녀를 본 적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시 그 푸른 목걸이를 본 적이 없다. 기억하지 못하는 새 그녀와 여느 도장 회원들처럼 재잘재잘 웃고 떠들며 지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2010년 봄, 도장 세면장에서 남몰래 나눈 첫 키스의 상대가 그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여자의 도복 깃 사이에 숨어 있다가 의도치 않았다는 듯 고개를 내밀어 인사하는 푸른 목걸이와의 만남은, 그 가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단 한 번 본 그 여자를, 가슴팍에 너무나도 차갑지만 따스하게 안겨 오는 목걸이를 품은 그 여자를, 정확히는 그 여자가 내게 보여주고 간 푸른 목걸이를, 15년째 사랑한다. 

J, 2016.

J는 대학 선배였다. 내가 J를 알게 되었을 때 이미 그녀는 원하는 직장에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 탓에 학교를 같이 다닌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는 J를 쭉 ‘선배’라고 불렀다. 처음 J를 만난 것은 대학 동아리 술자리에서였다. 이미 졸업했지만 동아리 모임에는 가끔 얼굴을 비추는 선배가 있다는 말에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그 사람 옆자리에 앉는 데까지 성공했다. 진한 쌍꺼풀과 흰 피부, 그리고 물방울무늬 반다나 헤어밴드와 청바지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선배, 졸업생이시라고 들었어요. 티 많이 나나요? 아뇨, 그냥 얘기를 들었어요. 그렇구나. 신입생이에요? 네, 선배.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래도 될까? 친구도 말 편하게 해줘. 아, 저는 이게 더 편해요. 짧은 정적이 이어진다. 졸업하고 이렇게 나오시는 거, 힘들지 않아요? 좋아서 하는 건데 뭐. 친구도 좋아해서 들어온 거 아니야, 연극? 직장인이 되고 일을 하게 되면 이런 취미는 이어가기 힘들 줄 알았어요.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잘 되더라고. 이게 쉬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저도 선배처럼 연극 오래오래 하고 싶네요. 그러면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네. 자주 볼 거면 나중에 밥 한 번 사주세요. 밥약 거는 거야? 졸업생한테? J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2주 뒤, 나는 J가 신입생 때 자주 갔다던 초밥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J는 와사비가 싫다며 주문할 때 와사비를 빼달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날 J와 나는 함께 초밥을 먹고 근처 술집에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고 헤어졌다. 그로부터 J를 세 번 더 만났고, 네 번째가 되는 날 그녀의 머리를 말려주러 집에 갔고, 그렇게 J를 본격적으로 사랑하기 시작했다. 

J는 흔히 말하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본인을 사랑할 줄 알았고, 그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과 연극 동아리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즐겁게 사는 사람이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다 풀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늘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니고 사는 사람이었다. J의 삶은 J의 계획과 통제 아래 있었다. 

그렇게 건강한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는 나 역시도 건강하게 만들었다. 단풍이 지면 손깍지를 낀 채 설악산을 갔고, 꽃이 피면 팔짱을 끼고 잠실을 갔다. 각자 하는 일은 따뜻하게 응원했고 서로의 공간을 존중했다. 그렇게 서로를 따스하게 바라보며, J와 나는 따뜻하게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목걸이를 차고 있지 않았다. 우유 푸딩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건강함이 곧 목걸이의 부재를 의미했다. 그녀는 목걸이를 차고 있지 않았기에, 내가 그녀의 삶에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그녀는 건강했다. 본인이 이십오 년간 쌓아온 삶의 방향성과 색깔이 너무도 탄탄하고 굳게 정립되어 있었다. 그 흠집 없는 인생에 나는 끝내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무능하고 고집 센 직장 상사 때문에 그녀가 스트레스를 받던 시절이 있었다. 자기야, 나 오늘 너무 지친다. 왜요? 또 최 팀장이 아집 부려요? 응. 이따가 만나서 같이 좀 걸을까요? 아니, 나 오늘은 혼자 좀 쉬고 싶어. 집에서 또 웨스 앤더슨 보게요? 응. 오늘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알았어요. 내일 봐요. 응. 좀 쉬다가, 자기 전에 또 전화할게.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나와 사랑하는 동안 그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열두 번, 문라이즈 킹덤을 일곱 번, 다즐링 주식회사를 세 번 보았다. 그러나 그 스물두 번의 영화 시청은 모두 그녀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녀에게서 웨스 앤더슨을 같이 보자는 말은 결코 들을 수 없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것이 J가 살아가는 방식인 것이다. J는 그저 스트레스를 풀 때면 자기 방에서 과자를 까먹으며 웨스 앤더슨을 혼자 보는 삶을 살았을 뿐이다.

J는 반기에 한 번 있는 동아리 정기 공연에 꼭 참여하는 삶을 살았다. 보통 미술 감독, 조명 감독 등 조연출을 도맡아 했다. 입버릇처럼 “언젠가는 길게 휴가를 내고 다시 꼭 배우로 참여할 거야.”라고 말했다. J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요가 학원에 가서 두 시간 십오 분씩 운동하는 삷을 살았다. J는 매일 아침 닭가슴살 샐러드와 청포도로 식사를 해결하는 삶을 살았다. J는 매주 일요일 오후 여덟 시에 청계천에서 삼 킬로미터씩 달리는 삶을 살았다. 같은 맥락에서, J는 본인이 ‘자기야’라고 부르는 남자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J의 인생에 스며들고 싶었다. 눈밭에 흩뿌려진 에스프레소처럼 J와 하나 되어 J에게 흡수되고 싶었다. 그러나 J는 우유 푸딩이었다. 에스프레소는 푸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푸딩에 얹어진 에스프레소가 될 뿐이다. 나는 J를 사랑했고, J도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것은 우유 푸딩이었고, J가 사랑한 것 역시 푸딩 위에 얹어진 에스프레소였다. 

그렇게 나는, 십삼 개월 하고도 이십칠 일의 시간 동안 목걸이를 차지 않은 J를 온 힘을 다해 사랑했다. 그 시간에 푸른 목걸이에 대한 깊은 사랑을 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다지 죄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어찌 되었든 내가 사랑한 여자는 J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끝내 발견하지 못했지만, 십삼 개월 하고도 이십칠 일 내내, 어쩌면 J는 몸 어딘가 내가 찾지 못한 가장 내밀한 곳에 푸른 목걸이를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식도 안쪽이라든가, 눈꺼풀 아래라든가, 그런 곳에 푸른 목걸이가 숨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J를 사랑하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은 J가 목걸이를 차고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다. 

J는 내 궁금증을 처음부터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 목걸이 따위 안 차고 있노라며 나를 떠났다. 우유 푸딩 안에는 푸른 목걸이가 차지할 자리가 없다. 그래서 J의 안에는 내가 차지할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우유 푸딩으로 만들어진 럭비공은 마지막까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튀어 내 품에서 영원히 떠나갔다.

목걸이, 2021.

십오 년 전, 그녀의 목걸이는 반투명한 반죽 아래 파묻혀 있었다. 목걸이를 둘러싼 모든 장애물을 녹여 없앤다면, 목걸이만을 남겨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목걸이를 내 안으로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악마가 웃는 듯이 춤추는 화톳불에 반죽을 던져 넣는 것이다. 목걸이를 둘러싼 반죽은 흐물거리며 녹아내리겠지. 밤새 불순물을 모두 녹여 없애고, 가느다란 실과 같은 목걸이 한 줄만이 내 손아귀에 들어온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기꺼이 내어주리라.

화톳불이 아니어도 좋다. 어떤 방식으로든 반죽 안의 목걸이를 얻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끊어지지 않고 온전한 채로 얻어져야 한다. 목걸이는 ‘어디 스치기라도 하면 끊어져 부서져 버릴 테니 잘 다뤄보아라.’라고 온 힘을 다해 주장한다. 나는 그 주장에 반항할 수 없다. 그러니 목걸이를 얻기 위해서는 목걸이를 보석처럼 잘 다뤄야 한다. 목걸이를 얻게 되면 무얼 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목걸이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만으로 나는 평생 행복할 수 있다.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망치와 정으로 장애물을 조금씩 깎아내어 목걸이를 얻으려 했다. 행여 부서지랴 조심히, 아주 천천히, 섬세하고 상냥하게 반죽 덩어리를 깎아냈다. 식은땀에 온몸이 젖어가며 반쯤 반죽 덩어리를 벗겨내었을 때, 파편 하나가 눈에 튀었다. 따가운 눈을 비비는 순간 잠에서 깼다. 정액에 축축하게 젖어버린 잠옷 바지와 속옷을 세탁기에 넣고, 손아귀에 거의 들어올 뻔한 목걸이의 냄새를 잔잔하게 곱씹으며 샤워기를 틀었다.

잊을 만하면 꾸는 종류의 꿈이었다. 목걸이를 얻기 위한 나의 투쟁. 끝끝내 손에 넣지 못한 채로 잠에서 깨지만, 그럼에도 그 꿈은 항상 야릇하고 달콤하다. 언제 꾸어도 또 꾸고 싶은 꿈이다. 얼굴에 쏟아지는 물줄기를 느끼며, 언젠가는 반드시 목걸이를 손에 넣겠노라고 다짐한다. 

W, 2019.

W를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중학교 교복을 입은 그녀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으니, 아마 초등학생 때부터 우리는 서로 알고 지낸 사이였을 것이다. 가까운 곳에 산다는 것 외에 어떤 접점도 없던 우리가 어떻게 서로 알게 되었는지 역시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어쩌면 꽤 친했을지도 모르겠다. 2019년 겨울이 오기 전까지, W는 그렇게 그냥 ‘아, 그때 그런 친구가 있었지. 괜찮은 사람이었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 구석에 고이 모셔져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W가 본격적으로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은, 그 겨울 자주 가던 동네 카페 안에서였다. 나는 공학용 계산기와 열역학 전공 서적을 가지고 다섯 시간 째 자리에 앉아 과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왼쪽 어깨에 두 번의 산뜻한 손놀림으로 등장했다. 톡톡 하고 두드리는 손놀림. 톡, 첫 손놀림은 예의를 갖추고 노크하는 것처럼 부드러운, 그리고 상냥한 손놀림이었다. 톡, 그러나 두 번째는, 역시 부드럽고 상냥했으나, 열린 문을 보고야 말겠다는 강한 포부가 느껴지는 단호한 손놀림이었다. 

어머, 너무 오랜만이다. 그치? 잘 지냈어? 여기서 다 만나네. 세상 좁다 진짜. 아니지, 같은 동네 살면서 이렇게 가끔 보는 게 더 이상한가? 그 책은 뭐야? 열역학이라니, 난 그런 수식만 보면 어지럽더라. 

중간에 산뜻한 웃음을 곁들인 말을 쉼 없이 쏟아내던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른다. 

미안해. 갑자기 말 많이 해서 정신없지? 반가워서 그래, 얘. 앞에 앉아도 돼?

딱히 막을 생각은 없었지만,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그녀는 자리에 앉았다.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 노트북과 공책을 꺼내 펴다가, 내 필통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J 역시 내 필통을 처음 본 날 같은 반응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뿐인 필통을 만들어본답시고 헝겊으로 된 낡은 필통을 온갖 낙서로 채운 것을 몇 년째 쓰고 있었다. 그때 J는 “참 독특해, 자기 취향. 나한테는 조금 어렵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W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내심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그녀는 잠깐 눈꼬리를 씰룩이더니 다시 시선을 노트북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난 다시 내연기관의 효율에 대해 고민하고, W는 로코코 양식에 대한 레포트를 쓰며 각자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카페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라는 말과 함께 헤어졌다. 으레 하는 말과 다른 점이라면, W에게서 “내일 새로 생긴 초밥집에서 점심 어때?”라는 연락이 정말로 왔다는 것이었다. 많고 많은 음식 중 초밥이라니. 잠시 J가 떠올라 피식 웃으며 그러자 했고 우리는 다음 날 함께 밥을 먹었다. 

그녀는 와사비의 톡 쏘는 맛이 좋다며 초밥을 집을 때마다 와사비를 조금 더 얹어 먹었고, 밥을 다 먹은 후에는 필통 좀 좋은 거 쓰라는 핀잔과 함께 가방에서 새 필통을 꺼내 건넸고, 나는 떨떠름하게 그 갈색 가죽 필통을 받아 가방에 넣었고, 대신 밥은 내가 사겠다고 했고, 그러자 그녀는 쭈뼛거리며 밥값을 계산하는 나를 지켜봤고, 그렇게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흰 눈과 같은 사람이었다. 채워지지 않은 순백의 눈밭과 같은 사람. 눈밭에 에스프레소를 엎으면 쏟아진 자리 그대로 아메리카노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아메리카노 같은 사랑을 했다. 점차 우리의 삶은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하는 것은 긴 밤 서로 잘 보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수업, 과외, 아르바이트 등 피치 못할 일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을 함께 보냈다. 둘만의 은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어도 유독 신이 나던 날, 쉴 새 없이 말하던 내 입을 그녀가 아이스크림 한 숟갈로 막은 이후로, ‘아이스크림하다.’라는 말은 ‘잠시 말하는 걸 멈추고 나와 눈 맞춰줘.’라는 의미가 되었다. 

W는 그녀의 볼을 내 볼에 비비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W는 나와 만날 때 민낯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W는 혈색 좋은 살구색 피부의 여자였다. 민낯의 살구가 까무잡잡한 내 볼에 닿으면 흠칫 놀라다가 자연스레 웃곤 하는 것이 우리의 레퍼토리였다. 언젠가 카페에서 그녀와 리처드 커티스의 어바웃 타임을 본 적이 있다. 영화를 다 본 후, “꼭 보여주고 싶었어. 내가 울적할 때면 보곤 하는 영화거든. 정말 감동적이지 않니?”라고 말하는 그녀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식으로, 우리는 눈과 에스프레소에서 맛있게 타진 아메리카노가 되었다.

W를 만나며 알게 된 가장 의외의 사실은, 그녀는 언제나 쫓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혼한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꿈에 대한 풍족한 지원을 바라기 힘든 가정환경에 압박감을 느꼈다. 장학금을 계속 받기 위해서는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딜레마에 절망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 모든 중압감을 머리에 이고 버티며 살아가는 가운데, 어떻게든 해맑은 가면을 벗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녀를, 나는 사랑했다. 

W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펑펑 운 날을 기억한다.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 W를 위해, 당일치기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기차 안이었다. 나는 정말로 미술사학이 너무 좋단 말이야. 그런데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 주변 환경 때문에 공부하기 힘들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워. 미술사학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에 제약이 있는 게 너무 서러워. 오늘만 해도, 너한테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건데 진짜로, 네가 오늘 나를 위해 준비한 거, 나는 아마 네게 못 해줬을 거야. 기차표가 얼마고, 유람선은 얼마고, 활어회는 얼마인지 혼자 계산하면서…. 여기까지 말하고 W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만 듣고 있다가 그녀를 토닥이고 안아 달랬다. 10분 후, 그녀는 울다 지쳐 내 어깨에 기대 잠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서울에 돌아왔다. 

그날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려던 나를 붙잡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네가 없었으면 어쨌을지 몰라.” 그 뒤로 W는 마치 다달이 치러야 하는 행사라도 된 듯 내 앞에서 자주 눈물을 보였다. 이혼한 후로 “너만 없었으면 더 수월했을 텐데.”라며 폭언을 쏟아내는 어머니, 미술사학에 대한 애정 따위 없이 학위 취득만이 목표인 친구에게 밀려서 장학금을 못 받은 이야기, 막역하다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이야기. W는 각양각색의 이유로 내 앞에서 울었다.

W가 여러 이유로 몹시 괴로워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없었더라도 과연 눈물을 보였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직도 확답을 내릴 수 없다. 그녀를 쫓는 모든 환경은 그녀를 내 앞에서 눈물짓게 했고, 기어이 내가 그녀를 토닥이게 했다. W는 어쩌면 그저 내게 토닥임을 당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여러 번 스쳤고 그때마다 달콤한 쾌감을 느끼는 내 자신이었다. 그녀의 눈에서 짭조름한 눈송이가 펑펑 쏟아질 때마다, 그리고 그 눈송이가 내게 쌓일 때마다 쌉싸름한 흥분이 나를 감쌌다. W에게 안아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게 나라는 사실이, 나아가 나뿐이라는 사실이, W의 가장 여리고 약한 부분을 온 우주에서 나 홀로 보고 어루만진다는 사실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야릇하고 쌉싸름한 아메리카노로 우리만의 세상을 빚고 있었다. 

W의 몸 어딘가에 푸른 목걸이가 채워져 있었을까? 아쉽게도 그녀의 속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섹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그녀였고, 그래서 우리의 첫 관계는 완전히 불이 꺼진 방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졌고, 그것이 곧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알몸을,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으로 느꼈다. 그 사실에 대한 불만은 없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 때문에 W가 목걸이를 차고 있는지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분명 그녀의 몸 어딘가에 푸른 목걸이가 있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의 W는 목걸이의 의인화라 해도 어색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불안했고, 그래서 아름다웠으며, 우리는 서로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의 혈관에는 아메리카노가 흘렀고 그래서 쌉싸름한 삶을 살았다. 

우리의 아메리카노는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아메리카노는 너무나도 허무하게 구정물이 되었다. W가 제일 친한 고등학교 동창과 걷는 것을 본 적이 있다. W와 친구가 웃으며 재잘거리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말을 걸으려던 찰나, W는 꺄르륵거리며 말을 계속 이어가던 친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이스크림하라니까.”

그 순간 아메리카노는 증발했다. 우리는 자연스레 멀어졌고, 그로부터 열흘 뒤 헤어졌다. 헤어지던 날 W가 내게 소리치던 모습을 기억한다. 

“나 진짜 미치겠어.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데?”

눈에서 눈송이를 쏟아내며 울부짖던 W의 모습에서 나는 또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W의 마지막 모습이다. 

목걸이, 2021.

세상에 푸른 목걸이의 존재를 아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그를 사랑하는 것 역시 나뿐이다. J도, W도, 푸른 목걸이에 대한 내 애착을 끝까지 몰랐다. 푸른 목걸이는 여전히 비어있다. 그래서 나는 푸른 목걸이를 사랑한다. 아마 이 짝사랑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언제나 목걸이를 손에 넣겠노라고 다짐하지만, 그게 될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W가 내게서 떠나간 지도 반년이 조금 넘었다. 지금 내 나이는, 나를 처음 만났던 J의 나이와 같은 스물다섯 살이다. 돌이켜 보면, J와 W 모두 푸른 목걸이에 대한 나의 사랑 때문에 내게서 떠나갔을지도 모르겠다. J와 W가 가끔 생각나지 않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문득 생각날 때가 있다는 대답이 나올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나만을 위한 푸른 목걸이를 가슴에 안은 삶을 살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은 결국 나와는 갈라설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가끔 실핏줄이 비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 중 일부는 정말 그 실핏줄을 푸른 목걸이로 품고 살아갈 것이다. 처절한 냉기 가운데 온기를 품고 살아갈 것이다. 흰 눈과 같은 소복함과 결핍으로 장식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름 모를 그들을 사랑한다. 

언젠가 그 목걸이를 손에 넣고, 내 목에 두르고, 내 앞에 자리할 그녀의 목에 두른 채 사랑할 날이 올 것이리라 믿는다. 이루어질 수 있는지와 무관하게, 그 사랑은 내게 너무도 숭고하고 고결한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고 그 푸른 목걸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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