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은화 편집장
채은화 편집장

1학년이 마무리될 때쯤, 생산적인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박이 생겼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열심히 뒤졌고, 『대학신문』 기자 모집 공고를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이곳에 지원했다. 그렇게 지원한 『대학신문』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예상보다 꽤 오랜 시간을, 대학 생활의 절반 가까이를 이곳에서 보낸 것이다.

나는 왜 그 많은 곳 중에서도 『대학신문』에 들어오기로 결심했을까. 퇴임을 코앞에 두고 문득 궁금해졌다. 메일함에서 찾은 2년 전의 지원서에는 “사회 변화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적어도 당시 나에게 『대학신문』은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 있는 동안 나는 사회가 변화하는 모습보다 변화하지 않는 모습을 더 많이 봐온 듯하다. 몇 차례 권력형 인권침해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관련 규정은 변함이 없었고, 한창 논의되던 인권헌장은 제정되지 못한 채, 이제는 본부의 관심 밖 사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첫 학기 취재부 기자로 활동하며 취재했던 생활협동조합(생협) 본부와 생협 노동자 간의 갈등은 올해도 반복됐고, 생협 노동자의 요구안에는 지난해와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 제2공학관(302동)에서 발생한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은 관악학생생활관에서 되풀이됐다. 학교 바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별금지법은 여전히 반대에 부딪히며 제정이 미뤄지고 있고, 군대 내 인권침해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미투 운동으로 가부장적 구조 이면의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가부장적 구조는 한국 사회에서 공고히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똑같은 말이더라도 계속해서 목소리를 냈고, 변화가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럼에도 변화를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변화가 항상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변화가 필요한 일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었다.

2년의 시간 동안 두 눈으로 바라봐온 것들은 변화라기보다 정체에 가까웠다. 하루는 사회 변화라는 건 어쩌면 성립이 불가능한, 공허한 외침뿐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사회 변화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라면? 나는 왜 『대학신문』에 들어왔고, 왜 이곳에서 2년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을 보냈을까.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르겠다. 그러나 정체라고 생각한 것들이 어쩌면 변화의 일부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변화를 준비하고 변화를 위한 오랜 논의를 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은, 나도 이런 변화에 기여했지 않았을까 희망도 걸어본다. 누구보다도 변화를 꿈꾸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나는 오늘도 변화의 가능성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에서 나가 다른 방법으로 사회 변화를 꿈꾸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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