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영 강사(기초교육원)
홍은영 강사(기초교육원)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얼마나 온전하게 담아내고 있을까? 영화〈메멘토〉의 주인공처럼 10분 이상을 기억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일상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 기억은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아서 그것의 본질과 한계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기억에 균열이 생겨 대상 인식에 혼란이 발생하고 소통이 불가능하게 된다면, 타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돼 버린다. 아마도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동일한지조차 알 수 없는 혼돈의 세계에 빠져 그것은 어느덧 공포로 다가올지 모른다.

〈더 파더〉는 치매를 겪는 노인 앤서니가 기억의 혼재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주변 환경을 경험하고 기억을 재구성하는지를 철저히 주인공의 시점에서 보여준다. 관객은 마치 그의 뇌를 들여다보듯 자연스럽게 앤서니의 기억 내용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아름답고 편안한 자신의 집에서 헤드셋으로 오페라를 감상하던 중, 딸의 방문을 받는 앤서니는 연인과 함께 살기 위해 파리로 곧 떠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까운 곳에서 아버지를 돌봐 왔던 딸이 그를 떠나 파리로 간다는 소식은 어쩌면 외롭게 일상을 살아가는 노쇠한 노인에겐 청천벽력같은 소리가 아닐까. 

자신의 방을 나오던 앤서니는 마치 자기 집인 양 거실에 앉아 딸의 남편이라고 말하는 낯선 남자, 처음 보는 젊은 여자 등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자연스럽게 거주하는 모습을 목도하고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당신들은 도대체 왜 여기 있으며 누구냐고 묻는다. 자신이 딸이라고 주장하는 낯선 여자가 간병인의 모습으로 보이다가 다시 딸, 앤이 돼 돌아온다. 자신의 집에 걸려 있던 그림과 책들이 사라지고 소중히 간직했던 손목시계도 도난당한 듯 없어지며, 처음 듣는 얘기를 주변인들은 당연한 듯 말한다. 그는 보고 싶은 작은 딸이 보이지 않자 여행을 간 것으로 생각한다.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은 빠르게 이동함으로써 관객이 앤서니가 겪는 시공간의 혼란과 공포를 같은 시점에서 체험하게 한다. 

관객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야 간병인의 도움을 극도로 거부했던 앤서니가 딸의 집에서 돌봄을 받다가 그녀가 파리로 떠나자 결국엔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양원에 있는 앤서니는 자기를 요양원에 남겨둔 채 딸이 떠났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을 왜곡해 인식한다. 현재 자신을 돌보고 있는 간호사를 딸로 착각하기도 하고 요양원의 직원을 딸의 남편으로, 간호사를 다시 새 간병인과 혼동하기도 한다. 자신이 일궈 온 익숙한 집을 떠나 낯선 요양원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앤서니는 요양원과 돌봄을 받던 예전 딸의 집을 자신의 집으로 오인해 가구들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치매를 겪게 되는 경우 좀 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릴 수는 있지만, 우리는 결국 1인칭 시점에서 살아가며 타인과 교류할 수밖에 없으므로 기억이란 늘 현재 시점에서 재구성되고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각자가 경험한 외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기억이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억은 경험의 주체가 겪는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사본이 아니기에 현재 시점에서 왜곡과 변형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자신을 돌보던 딸이 자신을 두고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앤서니가 딸의 부재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해 눈앞에 있는 간호사를 딸로 착각학고, 교통사고로 이미 죽은 작은 딸이 자신을 찾지 않는 이유를 여행에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혼란스러운 현실은 그 나름의 아픈 이유를 갖는다.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현재 앤서니의 기억은 어쩌면 현 시점에서 그가 겪어내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진실일지 모른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다 사라지듯 죽음을 감지하는 노년의 그에게 가까운 존재의 부재는 상실과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낯선 공간에서 일어나는 알 수 없는 사태에 나름 질서를 부여해보려 시계를 찾으나 늘 간 곳이 없다. 둔 곳을 잊어버려 찾아다니지만 내가 숨겨놓아 찾을 수 없는 시계. 시간은 결국 생명의 다른 이름이기에 찾고 있으면서도 잃어버리고 싶은 그런 대상이 아닐까. 헝클어져 뒤죽박죽된 기억의 틈새에 시간을 가져가 보려 하지만, 시간은 항상 그 틈 사잇길로 빠져나간다. 꺼져가는 기억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서서히 상실해가는 앤서니는 울창한 숲을 내다보며 자신이 누구냐고 묻는다. 내 잎사귀들은 이제 다 떨어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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