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서울대 미술관 전시 〈밤을 넘는 아이들〉 리뷰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아동을 학대하는 사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주목할 필요가 높아진 지금, 가정에서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조명한 전시 〈밤을 넘는 아이들〉이 다음 달 13일까지 서울대 미술관(151동)에서 진행된다. △회화 △사진 △영상 △설치 등 100여 점의 작품은 가정과 가족, 그리고 그 속 각기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민진영 작가의 〈Between Roof and Roof〉
민진영 작가의 〈Between Roof and Roof〉

◇가정은 어떤 공간인가?= 자라나는 새싹이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 이들을 길러내고 보호하는 가족, 그리고 그들의 따스한 보금자리인 집.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평화로운 가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동 학대가 벌어지는 주된 공간 역시 가정이다. 이번 전시에는 이런 모순적인 가정의 모습을 포착하는 작품들이 포함됐다. 미술관 이주연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가정 폭력에 대한 경험을 증언하고 가족과 집에 관한 고정관념에 문제를 제기하며, 소외되고 상처 입은 어린이의 회복과 환대를 모색하는 작품으로 이뤄져 있다”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집의 모습을 띤 육각기둥 모양의 구조물이 관객을 맞이한다. 정돈된 집의 형상 속에는 붉은 불빛이 깜빡이고 있다. 민진영 작가의 〈Between Roof and Roof〉는 집 내부를 완전히 보여주지는 않으면서도, 붉은 불빛을 이용해 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가장 친숙한 공간이라고 여겨온 가정을 낯설게 느낀다.

작품들을 찬찬히 감상하다 보면 어디선가 사랑을 설명하는 남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시장 한편에 상영되고 있는 〈사랑의 형태〉라는 제목의 영상물이다. 영상 스크린 옆에는 여러 인형을 엮어 만든 설치물이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바닥에 설치된 야구 방망이나 테니스 라켓과 같은 물건들도 함께 기둥 모양의 그림자를 만든다. 이 물건들은 일상적인 소품이지만 언제든 흉기가 될 수 있다. 작품의 제목인 〈The War: 가장 일상적인〉이 보여주듯, 소품들이 만드는 그림자는 가장 편안해야 할 가정에서의 일상이 폭력으로 변모하는 현실을 묘사한다. 김수정 작가의 〈The War: 가장 일상적인〉 속 조형물은 〈사랑의 형태〉 영상과 오묘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이 가정이라는 공간에 기대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과 그 속에 은폐된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김수정 작가의 〈The War: 가장 일상적인〉과 〈사랑의 형태〉 영상
김수정 작가의 〈The War: 가장 일상적인〉과 〈사랑의 형태〉

◇가족이라는 이름의 억압=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팎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담아낸 작품들 또한 눈길을 사로잡는다. 우리 사회에 공고히 자리한 가족 제도는 때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족쇄가 된다. 아이들은 성별에 따른 행동과 취향을 강요받고, 자신의 꿈을 대신 실현하도록 재촉하는 부모들에게 고통받는다. 전시장 계단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고경호 작가의 〈아들-포지셔닝〉 연작은 아들에게 당연시되는 규범이 그의 개별성을 억압하는 모습을 생생히 그려낸다. 전형적인 가족사진을 그린 〈들러리〉, 태권도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 〈미술학원에 가고 싶었지만, 역시 태권도〉 등, 고경호 작가는 그의 작품에 가족 앨범에서 흔히 보이는 장면에 아들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제목을 붙였다. 거센 붓질에 일그러지고 지워진 아들의 얼굴은 관객에게 진정으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듯하다.

그렇다면 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네버랜드 – 경계의 아이들〉은 신희수 작가가 탈가정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공동체에서 활동하며 촬영한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이 물음에 나름대로 답한다.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의 소지품을 촬영한 사진들, 헤드폰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인터뷰까지, 작가는 여러 매체를 이용해 억압적인 가정과 위험한 사회의 경계에 놓인 아이들의 삶을 보여준다. 작품은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을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작품에 등장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이주연 학예사는 “피사체가 된 아이가 전시장을 직접 방문하고 너무나도 좋은 기억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했다”라며 “전시를 매개로 이뤄지는 연대와 회복을 목격하는 일이 가장 인상 깊다”라고 말했다. 

고경호 작가의 〈아들-포지셔닝〉 연작 중 일부 작품
고경호 작가의 〈아들-포지셔닝〉 연작 중 일부 작품
신희수 작가의〈네버랜드 – 경계의 아이들〉
신희수 작가의 〈네버랜드 – 경계의 아이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이번 전시는 두 차례의 연계 강연을 통해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현실을 더욱 직접적으로 조명한다. 지난달 20일에 진행된 ‘일그러진 가족, 신음하는 아이들’ 강연에는 『이상한 정상가족』의 저자인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이 가족 내 불평등과 ‘정상가족’의 범주를 벗어난 가족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김 전 차관은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사적 안전망인 가족이 중요시되며 가족주의가 강력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짚었다. 또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입양아, 미혼모, 다문화 가족 등이 받는 편견과 차별에 관한 설명도 이뤄졌다. 이후 열린 27일 강연 ‘아동의 목소리, 잘 들리시나요?’에는 서울대 공익법률센터 소라미 부센터장이 강연자로 나섰다. 소 부센터장은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동의 의사를 온전히 고려하지 못하는 현재의 아동 학대 신고 절차와 양육시설의 실태를 고발했다. 또한 그는 그동안 간과됐던 해외 입양아 사례를 설명하며, 입양 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과 아동 정책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관객들이 자신의 유년 시절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참여형 즉흥 연극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오는 19일(토)에 진행될 전시 연계 연극에서는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즉석에서 연극으로 재현할 예정이다. 이주연 학예사는 “강연이 전시가 다루는 문제 상황을 심화해서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왔다면, 이 즉흥 연극은 마음을 나누고 회복하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밤을 넘는 아이들〉 전시는 다양한 작품을 통해 가정과 사회에서 충분히 돌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빛을 비추고,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현실과 우리의 경험을 돌아보게 한다. 밤을 넘는 아이들이 더 밝은 아침 햇살을 마주하기 위해 우리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지금, 전시를 감상하며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어떨까. 

 

사진: 구민지 기자 grrr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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