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중어중문학과 전형준 교수

눈이 내린 후 하얗게 물든 자하연 옆 인문대(1동)에서 전형준 교수(중어중문학과)를 만났다. 전 교수는 중국 문학 연구자, 번역가, 그리고 평론가로 평생을 문학에 전념했다. 그의 역서 『아Q정전』과 비평집 『문학의 숲으로』에 친필서명을 해 기자에게 건네는 그의 모습에서 문학을 대하는 따스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Q. 중국 문학을 연구하면서 기뻤던 순간이 있다면?

A. 1999년 발표한 「‘20세기 중국문학론’ 비판」 논문이 중국 학계에 영향을미쳤을 때 제일 뿌듯했다. 기존에는 20세기 이후의 중국 문학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을 기준으로, 현대 문학과 당대 문학으로 분류했다. 이에 반해, ‘20세기 중국문학론’은 20세기 초부터 20세기 말까지 이어진 문학을 하나의 흐름으로 파악해 ‘20세기 중국 문학’이라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20세기 중국문학론’에 동의하지만, 몇몇 부분을 수정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껴 「‘20세기 중국문학론’ 비판」 논문을 작성했다. 이 논문이 중국에서 발표된 지 몇 달 뒤에 「신화문적」이라는 잡지에 실렸다. 「신화문적」은 중국에서 발표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글 중 학술적 가치가 있는 글을 재수록하는 잡지다. 문학 영역에는 한두 편 정도만 실리는데, 중국 학계에서 내 연구가 외국인 학자의 글임에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판단해 선정한 것이다. 또한 후배 학자들도 이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줘서 학자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국 문학 분야에도 영향을 미쳐 기뻤던 적이 있다. 중국의 시인 아이칭(艾靑)의 작품을 번역해 출판했는데, 그 중 「대언하(大堰河)」라는 시는 그 당시 한국 문학이 마주한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때의 한국 민중 문학에는 민중과 지식인의 거리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딜레마가 있었다. 민중 문학이 스스로는 민중을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추상적인 관념의 서술에만 그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칭의 삶은 지식인과 민중의 모습이 중첩돼 있었고, 이런 그의 삶이 작품에 반영돼 그 목소리가 관념적인 말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명료하게 보여줬다. 내가 번역한 작품이 한국 문학의 영양분이 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Q. 『아Q정전』과 『변신 인형』을 번역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

A. 『아Q정전』 속 루쉰의 문장은 중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도 매우 난잡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이러니와 역설이 많이 사용돼 오독의 염려가 있고 뉘앙스 파악이 쉽지 않다. 그래서 『아Q정전』의 번역을 처음 펴낸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정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변신 인형』의 저자인 왕멍의 글은 루쉰의 글에 비해 명료하지만, 속어와 방언이 많이 사용돼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1980년대 후반에 『변신 인형』의 번역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중국어 사전을 구하기 어려웠음은 물론이고, 구하더라도 그 내용이 빈약했다. 그래서 문맥을 바탕으로만 번역하려다 보니 오역이 많았다. 이후 사전이 충분히 갖춰지는 등 여건이 좋아졌기에 많은 수정을 거쳐 개정판을 냈다. 『변신 인형』도 계속 수정해 나갈 예정이다.

 

Q. ‘성민엽’이라는 필명의 문학 평론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A. 1981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석사 과정에 입학했고, 1982년에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했다. 순서상으로는 석사 과정 입학이 더 빨랐지만, 평론가로 살아가고자 했던 결정이 그보다 먼저였다. 나는 늘 중국 문학 연구와 한국 문학 평론이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나는 이 둘 사이의 관계를 ‘내 안의 비교문학’이라고 표현한다. 중국 문학을 연구할 때는 한국 문학의 시각으로, 한국 문학을 평론할 때는 중국 문학의 시각으로 바라봤다. 게다가 중국 문학을 전공하며 평론 활동을 계속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에 내 시선은 차별화되기 마련이었다. 많은 평론가들이 단순히 서양 문학과 한국 문학을 비교해 왔다. 그러나 나는 중국·동아시아 문학까지 지평을 넓혀 더 넓은 관점에서 한국 문학을 비평할 수 있었다.

 

전형준 교수는 정년퇴임 이후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채널 ‘전형준 교수의 문학 이야기’에서 중국 문학과 문학 일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한국 문학을 최전선에서 실험하는 ‘문학 실험실’에서 활발히 목소리를 내고, 문학과지성사 편집위원 일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진: 구민지 기자 grrr02@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