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 졸업을 맞은 학생들의 이야기

조현지(아동가족학과 졸업)
조현지(아동가족학과 졸업)

순식간에 지나간 꿈같던 대학 생활과 거기에서 느낀 바를 온전히 녹여내고 싶은 욕심에 쉽사리 글이 써지지 않아 몇 번을 퇴고하고 있습니다. 막 입학했을 시절 과거의 나와, 몇 년 후 우연히 다시 이 글을 들여다보게 될 미래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지만, 일단은 당장 졸업을 앞둔 현재의 제가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담아보려 합니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보다 입시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해 왔던 과거의 나에게 빚을 진 상태로 스무 살을 맞이했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후회하지 않게 이 캠퍼스에서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해보겠노라’ 다짐했던 입학식에서의 제가 떠오릅니다. 얼마 전에 사진을 정리하는데 1학년 때의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네요.

화려하게 순항하는 것만 같던 제 대학 생활은 곧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한 제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코로나 시국’은 참 고된 조건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너무나도 너무한 2년이었습니다.) 처음 느껴보는 대학에서의 권태에 빠져있던 와중, 평소 저를 오래 봐 온 친구가 그러더군요. 이제는 잠시 쉼 없이 달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원체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 터라 가지각색의 전공과 취미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매 순간이 즐겁고 소중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과 웃고 떠드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친구, 친구 노래를 불렀는데 정작 나 자신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이죠. 바쁘고 재미있는 이십 대 초반을 보냈지만 동시에 미성숙하게 행동한 기억도 많은 게 그 때문이었나 싶습니다. 불가피하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것을 기회 삼아 스스로와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우친 새로운 내 모습을 하나로 통합하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오래된 마음속 응어리들을 마주하며 나와 친해지려 노력했습니다. 그러자 제각기 흩어져 있던 경험 조각들이 비로소 나의 모습으로 맞춰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에게는 숙제가 참 많습니다. ‘이상적인’ 대학생이 되기 위해 학업, 연애, 동아리를 모두 완벽히 해내도록 요구받습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겨우 알 것 같을 때쯤에는 졸업이 가까워져 있고, 그 무렵에는 자연스럽게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그렇게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대학 생활은 세상의 중심인 나를 알아가는 시기가 돼야 합니다. 청소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어른도 아닌 그 모호한 상태를 즐깁시다. 그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할 때 피가 끓는지, 어떤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 지금 몸과 마음에 아픈 곳은 없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합시다. 그리고 혹 나와의 문답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기회가 보인다면 주저 말고 용기 내봅시다. 돌아보면 그 용기들이 어떤 경로든 자양분이 돼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 학교의 더 많은 학생이 행복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계속될 자아 탐색의 첫 단추를 서울대에서 꿰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소중한 경험 조각들을 선물해 준 많은 인연들에 무한한 고마움을 전합니다. 덕분에 여한 없이 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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