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 졸업을 맞은 학생들의 이야기

이소현(미학과 졸업)
이소현(미학과 졸업)

지나고 보면 현상만 남아있다. 감정은 사라진다. ‘어떻게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었구나’로 기술의 양상이 바뀐다. 시간이 무언가를 해결해 준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현상을 인식하는 데서 생기는 감정의 북받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진다. 그러니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다면 무의미한 감정 낭비를 그만하고 해결책을 찾는 편이 나을 텐데, 사람들은 또다시 문제가 되는 현상을 인식하고 북받치는 감정으로 괴로워한다. 나도 그렇다.

대학 4년을 저 굴레에서 보냈다. 무언가 일을 벌이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매번 고통을 느꼈다. 이를테면 학보사 업무와 전공과목 여섯 개 수강을 병행하면서 교내 논문 프로그램, 개인 과외, 대외활동 등 할 일을 늘려 나를 정신적으로 몰아넣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살피기보다 감당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려 일을 성급하게 추진하곤 했다.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졸업 직전 학기에도 이 습관을 고치지 못해 애를 먹었다. 매일매일 ‘번아웃’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면서 내가 내린 결정들을 후회했는데, 그러면서도 왜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했나.

무의식적으로 그 순간엔 그 결정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이후에 밀려올 후회보다 결정을 내려서 얻는 효능과 만족감이 먼저였다. 시간이 지나면 현상만 남으니, 현상 모으기에 집중했던 셈이다. 고통스럽더라도 후에는 고통이 사라지고 내가 감당한 끝에 얻은 결과물들만 현상으로 남아있을 거라 믿으면서 똑같은 실수를 이어갔다.

결국에는 나를 위한, 내가 내린 선택이었음에도 ‘실수’라는 단어를 떼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느꼈던 감정이 몸과 정신을 명백하게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갖가지 일을 떠안으며 경험했던 자괴감, 무력감, 다른 사람에 대한 미안함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했다. 언젠가는 사라질 감정이더라도 감정이 존재했던 당시의 위력은 엄청났다. 그런 탓에 정신적으로 무너진 적도 많았다. 마지막 겨울학기에는 취업을 다 해놓고 까딱하다가 졸업도 못 할 뻔했다. 졸업을 위한 일련의 절차들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마무리할 힘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극적으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졸업 절차를 끝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도 감정의 무게를 버티면서 버거운 결정들을 내리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끊임없이 내 인생을 스스로 꼬고 괴로워하지 않을까.’

생각의 무더기에 파묻힌 끝에, 그럼에도 앞으로 그런 삶을 반복해 살아갈 것이란 판단이 섰다. 그때의 선택이 없었더라면 이뤄낼 수 없었던 성취들이 있다. 당시의 선택들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것 덕분에’ 좋은 성취들을 얻어냈다는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건 아니다. 다만 결말에는 성취라는 현상만 남을 거라 믿는다면 내 선택에서 비롯된 고통을 인내할 용기를 얻지 않겠나.

괴로움으로 주저앉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그때 즈음에야 짓궂게도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고통은 또 한 번 한때의 사건 수준으로 소각될 테다. 그렇게 인내하며 살아간다면 내일의 나는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더 괜찮은 성과를 낸 사람이 될 것이다. 알량한 다짐을 되새기며 교문을 나선다.

 

“내가 원하는 시기와 세상이 원하는 시기가 맞아떨어진 적이 있었나? 때때로 포기할 때 즈음에야 다가오는 세상은 얄밉도록 짓궂다.” (만화 <유색의 멜랑꼴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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