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지리교육과 류재명 교수

지난달 18일 서교동의 한 식당에서 류재명 교수(지리교육과)를 만났다. 류 교수는 30년 가까이 사범대에서 지리교육을 가르치면서 그린리더십 운영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환경교육에 공헌했다. “퇴임 이후에는 서울을 떠나 경북 영천에서 자연과 함께 살려 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후련함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였다.

Q. 오랜 기간 서울대에서 협동과정 환경교육전공을 맡았다. 환경교육에 어떻게 관심 갖게 됐는지?

A. 학부생 시절, 지리학이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막상 교수가 돼 보니 그 관계를 제대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인간과 환경이 지리교육이라는 바구니에 함께 들어 있긴 하나, 각자가 따로 포장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 점이 너무 아쉬워서 내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환경교육 강좌도 개설하고 전공 주임도 맡았다. 조금 감정적으로 시작했지만 돌아보면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환경교육을 공부한 덕분에 내가 몰두할 연구 분야를 찾았다. 행동경제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환경과 관련된 인간 행동에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을 환경행동학이라 이름 붙였다. 사소한 조건이나 환경 변화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아마 환경교육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이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Q. 교수 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 10년 전쯤이었다. 신입생 면접에서 한 학생에게 지리교육과에 지원한 동기를 물어봤다. 보통 어릴 때부터 지리를 좋아했다든지 선생님이 되고 싶어 지리교육과에 지원했다고 답하는데, 이 학생은 달랐다. 자신이 짐바브웨 아이들을 돕고 있는데,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니 마냥 더울 것으로 생각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반팔 옷 여러 벌을 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에 “언니, 반팔도 정말 고맙지만 여기도 쌀쌀할 때가 있으니 다음에는 긴팔도 보내주세요”라는 답장을 받고 느낀 바가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남을 제대로 도우려면 지리 공부를 해야겠구나’라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말이 내게 충격을 줬다. 지리 공부의 목적은 지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남과 싸워 이기려는 것이 아니다. 남을 돕기 위해 지리를 공부해야겠다는 대답에 나는 그 자리에서 만점을 줬다.

 

Q. 지리환경교육자로서 서울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A. 서울대 학생들은 무겁고 어려운 문제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어려운 문제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한다 하더라도 인간은 사소한 것에 흔들리는 존재다. 개인의 행동은 환경에 대한 반응이며, 반응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작은 차이에 의해서 크게 달라진다. 내가 현재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 감정은 나와 같이 있는 사람의 작은 반응 하나로 인해 생겼을 수 있다. 따라서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쉬운 문제라도 무시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하루 한 번씩은 쉬운 변화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늘 이 부분을 강조했다. 작은 것에 주목하는 접근 방식은 지리와도 관계가 있다. 지리란 단순히 그 장소만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위치를 설명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해서도 주변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남들에게 내 본질을 보여주기는 어렵지만, 내 주변을 통해 얼마든지 나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일상에서 자기 주위의 소중함을 알고 작은 차이의 힘을 인지할 수 있기 바란다.

 

류재명 교수는 “사람은 혼자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기대 살아간다”라며 “남은 인생에서 글을 쓰게 된다면 삶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작은 것에도 미소 짓고 감사할 줄 아는 그의 앞길에 더 큰 행복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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