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역사교육과 유용태 교수

눈이 조금씩 쌓여가던 지난달 17일 사범대(10동)에서 유용태 교수(역사교육과)를 만났다. 책으로 빼곡한 그의 연구실은 한평생 역사 연구에 매진한 그의 삶을 보여주는 듯했다. 인터뷰 내내 역사 연구에 대한 유 교수의 신념과 학생을 향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Q.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근현대사와 역사 인식에 관해 연구했다. 해당 분야를 연구하게 된 계기는?

A. 나의 대학 시절은 군사정권의 억압과 그에 반발하는 학생의 민주화 운동이 공존했던 혼란한 시기였다. 나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은 군부가 집권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이를 타개할 돌파구 내지는 대안을 찾으려 외국의 역사와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나는 비교적 우리나라와 가까운 중국에 흥미를 느끼고 관련 강의를 수강하며 중국 현대사에 관심을 키워나갔다. 즉, 중국사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했다기보다, ‘한국의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라는 현실적 고민에서 시작해 학술 연구로 나아갔다.

또한 농촌 출신 학생이었던 나는 ‘왜 농촌은 늘 소외당하고 가난하게 살아가는가’라는 의문을 품어왔고, 부모님의 삶과 내 고향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런 문제의식은 농민이 중국 현대사의 주역으로 활약한 사례를 배운 후, ‘직업대표제’를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지역대표제가 중심이 되는 한국의 국회의원 선출 방식과 달리, 직업대표제는 직업 단체별로 해당 집단의 의사를 대변할 대표자를 뽑는 선거제다. 만약 직업대표제가 시행된다면 국회에서 농민이나 노동자 집단이 차지하는 비율이 현저히 늘어날 것이다. 비록 실행에 옮겨지지는 못했지만, 중국 농민은 1920년대에 직업대표제 도입을 시도했다. 나는 직업대표제가 지역대표제보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를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확신이 있다. 농민이 소외당하지 않고 정치·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낼 방법을 모색하고자 했던 학부 때의 문제의식이 지금껏 이어져 왔다. 

 

Q.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 의장을 역임하며 2020년에 서울대 내 다른 교수들과 함께 『학생들이 만든 한국 현대사』를 출판했다. 

A. 2016년 서울대 민교협 의장을 맡고 있을 당시에,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해 서울대 학생운동사를 정리하자는 안건을 올렸다. 우리 학교의 학생운동을 지금 누군가 정리하지 않는다면, 이를 기억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며 정리가 안 될 것이라는 염려가 들었다. 6월 민주항쟁의 핵심 인물인 박종철 열사가 서울대 동문임을 강조하며, 직접 작성한 편찬 계획서를 들고 가 성낙인 전 총장을 설득했다. 이후 서울대 각 단과대에 재직 중인 여러 교수들과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작업을 추진해 나갔다. 

다만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당대 경찰, 검찰, 안기부의 기록이 해당 연구의 핵심자료였고, 이를 열람하기 위해서는 서울대의 공식적인 요청이 필요했다. 그러나 편찬위원회가 서울대 공식 사업 기구로는 인정받지 못했기에 핵심 자료 열람이 불가능했다. 또한 편찬한 책을 바탕으로 교양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에게 학생운동사를 가르치고 싶었지만, 이 계획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남은 후배 교수들이 학교에서 계속 노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Q. 은퇴 후의 계획은?

A. 학부 시절에 못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한다. 먼저, 제천에 내려가 텃밭을 가꾸며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이후에는 민생의 꿈과 길을 이야기한 옛 중국 학자들의 경제사상이 정리된 교양서를 출판하고자 한다. 10여 년 전 관련 연구를 위해 중국에 답사를 간 적이 있는데, 관련 자료는 중국공산당 핵심 관료만 열람이 가능해 연구를 포기했었다. 다만 해당 주제에 관한 학술 연구는 아니더라도, 공개된 자료를 참고해 교양서를 쓰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민생의 꿈과 길에 관한 문제의식을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함으로써,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포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자신을 이끌어 준 원동력이 무엇이냐 묻는 기자의 질문에 유용태 교수는 “가족의 사랑과 동료 간의 신의가 학문 연구의 튼튼한 바탕이 됐다”라고 답했다. 끝으로 그는 “대학에서의 4년은 인생에서 중요한 출발점이자 전환점”이라며 “소속 학과 활동뿐만 아니라 학회,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며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을 남겼다. 

 

사진: 유예은 기자 eliza721@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