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수의학과 이항 교수

지난달 7일 수의대(85동)에서 이항 교수(수의학과)를 만났다. 이항 교수는 야생동물 보전유전학 분야의 전문가로, 동물원법 개정안을 연구하고 야생동물 구조치료관리 교육을 시작하는 등 다양한 동물 문제에 주목했다. 호랑이 보전으로 유명한 그의 연구실 문을 열자 책장 한쪽을 가득 메운 호랑이 인형들이 기자를 반겼다. “해외 각지에서 온 호랑이 인형”이라며 환하게 웃는 이 교수의 모습에서 호랑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Q. ‘한국범보전기금’ 대표를 맡아 오랜 기간 한반도에서 한국 호랑이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호랑이 보전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A.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지만 처음부터 호랑이에 관심 가진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서 수의생물학 연구를 하다 보니 실험동물을 죽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물이 좋아서 수의사가 됐는데 동물 죽이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다른 연구 분야는 없나 찾아보게 됐다. 그러다 흥미를 느낀 것이 야생동물 연구였다. 1999년 해외 야생동물 보전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박물관과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호랑이에 대한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우리 민족을 호랑이 민족으로 알고 자라지 않나. 그런데 호랑이 관련 전설이나 민화 말고, 진짜 호랑이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는 거의 없다. ‘호랑이 나라에서 호랑이를 모르다니, 이건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0년 호랑이해(庚寅年)를 앞두고 우리나라에 살던 호랑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전 세계에 있는 한국 호랑이 뼈를 조사했다. 분석 결과 그 유전자가 현재 러시아 아무르 호랑이와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Q. ‘원 헬스*’ 개념을 국내에 소개했고, 앞으로 수의학의 주 무대는 생태학이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생태계와 관련된 수의학의 과제는?

A. 지난 100년 사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게 됐고, 이를 위해 인류가 야생 생태계를 침범하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 빈도가 크게 늘었다. 오늘날 지구는 코로나19처럼 야생동물에서 유래한 질병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질 수 있는 환경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도 물론 소중하지만, 생태계가 죽으면 누구도 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류가 당면한 실질적 위협은 암이나 당뇨 같은 질병이 아니라, 신종 전염병과 기후 위기 등 생태계 관련 문제다. 수의학자는 동물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생태계 균형을 지키는 일에 관심 가져야 한다. 원 헬스라고 하면 사람과 동물의 관계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의 건강이다. 그래서 나는 에코 헬스(Eco Health)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Q. 지난 교수 생활을 돌아보며 후학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매듭짓지 못한 일들이 많아 아쉽지만, 앞으로 누군가 이어받아 마무리하리라 생각한다. 내가 새롭게 시작했던 일 중에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화됐는데 한국에서만 하지 않던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 하지만, 세세하게 보면 전 세계적 기준에서 후진적인 분야들도 있다. 그렇게 뒤쳐진 분야 중 하나가 우리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개고기 문제를 보면, 개를 먹어도 되는가의 논쟁을 떠나 위생적으로 관리되기 어려운 대규모 개 농장 체제로 인해 새로운 전염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개인소유 야생동물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위험하다. 선진국이 됐다고 자만하지 말고, 사소해 보이는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이항 교수는 끝으로 “오늘날 수의학은 좁은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학문이 됐다”라며 “후학들이 자기 전공 분야에만 매몰되지 말고 주변과 지구를 돌아볼 줄 아는 넓은 시야를 갖췄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원 헬스(One Health): 인간과 동물, 환경의 건강이 상호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모든 건강관리 분야에서 학제 간 협력 및 소통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

 

사진: 하주영 기자 sisn0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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