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원 기자(사진부)
장재원 기자(사진부)

식물은 신기한 존재다. 이번 관악구 사람들을 준비하며 낙성대역 근처에서 농업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을 취재하게 됐다. 이 센터 속 온실에는 열대과일부터 공기정화 식물까지 다양한 식물들이 있었다. 이런 식물들을 기르시는 분들을 보며 나도 식물을 길렀던 경험을 떠올리게 됐다. 

주로 나는 집에서 식물을 기른다. 작은 선인장부터 동백꽃까지 식물을 기르는 것은 하나의 취미이자 소소한 삶의 낙이다. 학교 교양과목 중 생활원예를 수강했을 만큼 식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관심의 시발점은 식물의 특징이다. 사실 식물만큼 정직한 존재는 없다고들 한다. 어떤 영양분이 부족하면 자라지 않고, 물이 없으면 말라가고, 온도가 맞지 않으면 꽃이 피지 않는다. 상대적인 기준 대신 정해진 절대적인 기준을 따라 생존한다. 집에서 기르던 화분들이 잘 자라지 못한 경우를 생각해보면 늘 하나씩의 명쾌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물을 주지 않았거나 채광이 부족했거나 하는 이유들이 있었다. 

이런 식물들을 부러워 한 적이 있다. 나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흔들리고 내가 힘들어 하는 이유를 찾기 어려워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이 밀려 올 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식물을 봤다. 늘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인 ‘생장’을 계속해 나가는 식물의 자세는 나에게 한편의 위로가 됐다. 나만 이렇게 아등바등 애를 쓰는 것 같은 순간에 ‘모두 열심히 살고 있어. 너도 그리고 나도’라는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작은 존재가 건네는 큰 위로는 때때로 사람을 살아가게 한다. 요새는 ‘반려 식물’이라는 말도 생겼다. 반려 식물은 반려 동물과 비슷한 의미로, 동물이 아닌 식물을 대상으로 해 그것으로부터 마음의 안정을 찾거나 위안을 얻는 등 인간에게 반려 동물과 같은 역할을 해 주는 식물을 지칭하는 단어다. 다소 생소한 개념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반려’하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식물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식물만이 갖고 있는 초록빛은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사실 현대 도시의 삶은 지나치게 채도가 낮다. 사람들은 회색 아스팔트를 밟고 회색 건물로 들어가며 무채색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식물의 초록빛은 물 위에 퍼지는 잉크와 같다. 작은 양의 색채가 무색의 우리를 행복으로 물들인다. 봄날 공원을 걸으면서 느꼈던 초록빛과 숲은 내 기억 속 행복이라는 페이지에 기록돼 있다. 이런 순간들은 생각보다 소소한 행복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사랑하고 아끼고 위로받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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