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 편집장
박건우 편집장

그간 데스크 칼럼에 경험담과 인상비평만 늘어놓은 것 같아 이제는 목소리 좀 내보고자 대선 관련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참이었다. 엇비슷한 시기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운이 돌긴 했지만, 올림픽의 적대행위 금지 관습이 우산 역할을 해주리라 믿었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이 ‘2월 16일’로 구체적인 날짜를 언급할 때도 정보 교란쯤으로 생각하고 이를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푸틴이 상식을 저버리는 결정을 하기 전까지는.

내 기억 속 우크라이나는 몇몇 저명한 ― 전쟁으로 인해 징집 가능성도 있는 ― 축구선수가 있는 나라, 시트콤 속 ‘대통령 역할’이었던 젤렌스키가 부패 정치인을 몰아내고 실제로 대통령이 된 나라였다. 소련이 해체됨과 동시에 분리 독립한 여러 국가들 중 하나쯤이라고 여겼다. 우어는 당연히 모르고, 우크라니아의 역사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얼토당토 없는 명분 창조와 기만의 산물이라는 점은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100년 전쯤에나 볼 수 있을 법한 ‘무장해제’와 ‘비나치화’라는 명목은 물론, 군대를 철수시킨다느니 전쟁은 없을 것이라느니 모두 낯뜨거울 정도로 뻔뻔한 거짓말이었다.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의 독립을 위해 동부에 진군할 것이라던 푸틴은 수도인 키예프까지 러시아군을 진격시켰다. 명백한 푸틴과 그 내각의 폭정이다. 

그 와중 중국 외교부는 모호하게 “각국의 주권을 존중한다”라면서도 러시아 안보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주권존중과 내정불간섭을 최우선 외교 정책으로 내세우고, 이를 방패삼아 서방의 비판을 모조리 무마한 중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진정 ‘안보 우려’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나. 러시아의 주권과 우크라니아의 주권 중 어느 것이 더 위기에 처해있나? 최고 수준의 서방 경제 제재도 별 타격 없다는 듯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우크라이나만큼 심각한 안보 우려를 겪나? 2014년 크림 반도 사태와 조지아 침공을 비롯해 러시아가 동유럽 국가들에 가한 위협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우크라이나에게 다자 안보가 절실했음은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계를 냉전 때로 돌렸다.

전후에 젤렌스키가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그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전쟁의 빌미를 누가 제공했는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간다. 그것이 정말 러시아의 침공에 있어서 유의미한 분석인지 모르겠다. 용납 불가능한 러시아의 침공이 가장 큰 전쟁의 빌미였던 것은 아닐지.

어쨌든 젤렌스키가 대통령으로서 키예프를 떠나지 않고 지킨 끝에 서방의 지원이 속속히 도착하고 있다. 양 나라의 젊은이들이 희생되고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사상자도 늘면서 일을 더 이상 키우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라도 젤렌스키를 응원하게 된다. 여기서 항전을 멈추고 의지를 꺾으면, 러시아는 이와 같은 역사를 다시금 반복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그를 지지하는 각국의 행보가 푸틴의 무력시위는 국제 사회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전례로 남길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