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 CJ 대한통운 택배노조 총파업 현장을 찾다

작년 12월 28일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해 마련된 ‘사회적 합의’를 대한통운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파업에 돌입했다. 영하의 날씨에도 파업현장을 지킨 택배노조는 지난 23일(수)부터 CJ 대한통운 대리점 연합회(연합회)와 대화에 들어갔다. 기자가 24일 진행된 파업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서소문동에 울려 퍼지는 짙은 호소의 목소리=24일 오후 1시 기자가 방문한 서소문동 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대한통운의 사회적 합의 이행과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택배 사업자와 노동자뿐만 아니라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함께 일궈 낸 사회적 합의는 택배기사의 주당 노동시간을 60시간 이내로 줄이고, 택배기사의 업무에서 분류작업을 제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자회견에는 다양한 단체 인사들이 참석해 사회적 합의 주체들의 진정성 있는 참여를 호소했다.

 

그중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강규혁 위원장은 “다른 회사는 표준계약서를 준수하는 반면 대한통운은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유발하는 부속합의서를 추가한다”라고 지적했다. 오전에 청와대 관계자를 만나 책임 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 그는 “수수방관하는 국토부와 사회적 합의를 마련해 놓고 이를 무시하는 청와대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곳인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강 위원장은 “중앙노동위원회가 택배노조의 교섭 대상이 대한통운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한통운이 대응하지 않고 있다”라며 “우리가 언제 교섭하자고 했나. 대화하자고 했지”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뒤이어 발언한 빈민해방실천연대 최영찬 위원장은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지만, 가장 힘든 지금 이 시기를 넘어야 자본과 권력의 썩은 사슬을 깨부술 수 있다”라며 연대를 강조했다. 그의 “반드시 승리합시다”라는 외침으로 현장은 한층 뜨거워졌다. 

 

◇핵심은 부속합의서 철회=CJ 택배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와 연합회 간 비공개 대화 도중에도 택배노조원들은 자리를 지키며 그들만의 조용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얼음장 같이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이더라도 은박 단열재를 깔고 덮은 채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표정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했다. 

택배노조 파업의 시원은 대한통운의 부속합의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택배노조는 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부속합의서로 무력화하려 한다며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렸다. 전국택배연대조합 창원성산지회 김경민 지회장은 “부속합의서는 터미널에 도착하는 모든 물량 무조건 배송과 당일배송, 그리고 주6일제라는 독소조항들을 포함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속합의서만 철회하자고 요구하는데도 사측은 대화 한 마디도 없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25일 택배노조는 부속합의서마저도 복귀 후 논의하기로 한발 더 물러섰지만 대화는 잠정 중단됐다. “더는 죽고 싶지 않아 파업했다”라는 그의 말에는 그간의 울분이 담겨 있었다.

김 지회장은 이외에도 대한통운-대리점-택배 기사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와 대한통운이 과장·왜곡한 택배 기사 연봉, 그리고 배송에 필수적인 각종 장비를 기사가 사비로 부담하는 문제 등을 설명했다. 그는 “‘철의 노동자’라는 노래의 가사 중에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모든 노동자가 그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그렇게 살기 위해 우리는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하는 내내 김 씨의 볼이 눈에 들어왔다. 두꺼운 외투도 소용없는 찬바람에 벌겋게 튼 볼은 그의 굽힐 수 없는 뜨거운 의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총파업이 쏘아 올린 촛불=24일 오후 7시에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매주 토요일은 공대위가, 평일에는 공대위에 속한 여러 종교 및 시민단체가 번갈아 가며 집회를 맡는다. 한국청년연대가 주최자였던 이날은 청년들의 발언을 중심으로 집회가 진행됐다. 사회문제의 현장을 영상으로 담는 ‘청년B스튜디오’의 임해솔 씨가 마이크를 잡고 미리 작성한 편지를 낭독했다. 그는 “부끄럽게도 파업에 관심을 크게 두게 된 것은 본사 점거 농성 때부터로 얼마 되지 않았다”라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보니 이 문제가 모든 노동자의 권리와 직결됨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라며 “기사에 댓글을 달고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함께 투쟁하는 것이니 이렇게라도 조금씩 표현하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오후 8시, 오늘의 촛불은 꺼졌지만 아사 단식 농성 중인 택배노조 진경호 위원장의 텐트 앞에는 작은 촛불들이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택배노조 충청지부 이복규 지부장을 비롯해 약 10명의 인원은 텐트 곁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며 위원장의 건강을 염려했다. 이 지부장이 울먹이며 마이크를 잡고 “이제 세상이 우리의 피나는 60일간의 투쟁을 알기 시작했다”라고 말하자 주변에 있던 이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이번 겨울, 서소문동의 겨울은 더욱 시리다. 봄이 오고 차가웠던 겨울은 기억 속으로 사라져도 대한통운 본사 앞을 지키던 그들이 살아낸 유난히 시리고 아팠던 겨울을 기억하자. 그들이 따뜻한 봄과 함께 일터로 복귀하기를 고대한다. 

 

사진: 하주영 기자 sisn02@snu.ac.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