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오늘의 교육」 채효정 편집위원장 인터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 강사, 정치학자, 교육 운동가…「오늘의 교육」채효정 편집위원장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이다. 채효정 씨는 “현장으로부터 공부의 물음을 가지고,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 연구를 하는 현장 연구자”로 본인을 소개했다. 책상머리 연구자가 아닌 계속 대지에 뿌리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와 교육, 대학, 사회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진 제공: 채효정 씨)
(사진 제공: 채효정 씨)

정치에서 교육으로, 기존의 체제에 대항하다

채효정 씨는 대학에서 서양 정치사상을 전공했다. 그중에서도 ‘감각을 어떻게 정치적 세계에서 복원할 것이냐’가 그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는 근대 정치 이후로 정치학이 감각을 억제하고 토의나 토론, 이성의 활용 등을 강조하는 식으로 발달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를 되돌리려는 시도가 포스트모더니즘 사조 속에서 우발적으로 이뤄져 오기는 했지만, 채효정 씨는 이를 좀 더 근본적으로 해명해 보고자 했다. “정치는 폴리스*에서, 경제나 사적인 것은 오이코스*에서 한다는 분리 패러다임은 근대 정치학자들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 원형은 고대 정치 속에도 있어요. 이 폴리스와 오이코스라고 하는 분리된 체계를 통합하는 것이 제 핵심적인 연구주제예요.” 그는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에도 이런 정치학이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며 “지구라는 오이코스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 사회뿐 아니라 자연과 생태로까지 정치의 대상과 주체를 확장하고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분리된 정치를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은 교육 운동으로 이어졌다. 채효정 씨가 처음으로 교육 운동 단체 활동을 시작한 곳은 ‘학벌없는사회’였다. 그는 설립 준비 때부터 초동 멤버로 활동했는데, “당시 사회적으로 큰 문제들이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김훈 작가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칼럼에서 쓴 것처럼, 그때는 청소년들이 ‘낙엽처럼 떨어져 죽’고 있었어요. 신문에 맨날 자살 기사가 나고, IMF를 지나면서 사회적 압박이 교육 현장으로 막 들어오고…” 채효정 씨는 청소년들이 죽기 시작했다는 것을 매우 위험한 징조로 느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상황 속에서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채효정 씨는 청소년의 삶을 파괴하는 학벌 체제의 모순을 느꼈다. 당시 교육 운동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교사 운동, 학부모 운동, 대안 교육 운동 등 부문별로 나눠져 진행되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함께 모아내는 보다 근본적인 운동, 대학 서열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인 대학 서열 문제를 놔두고는 초·중등 단계에서 어떤 개혁적인 제도를 집어넣어도 다 입시로 빨려 들어가요. 학벌 체제의 정점에서, 대학원생으로서 여기서부터 싸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시간이 지나며 청년 실업 문제가 가중되고 졸업장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학벌 프리미엄은 여전히 견고하다. 그가 학벌 폐지 운동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채효정 씨가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잔디밭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채효정 씨)
채효정 씨가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잔디밭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채효정 씨)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선 넘기’와 ‘연대’

대학원을 수료하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던 채효정 씨는 2016년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때 경희대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강사를 대량 해고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교수자 협의회를 만들고 강사들이 조직적으로 노동조합 준비도 하고 대자보도 붙이며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돌아온 것은 앞장서서 행동한 그에 대한 표적 해고였다.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했던 그는 수요일 점심시간마다 한 시간씩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시위를 했는데, 점점 사람들이 붙기 시작했다. “피켓을 들며 배운 교훈이 있는데, 제가 강의할 때도 많이 이야기하는 ‘삼자론’이에요. 세 명이면 된다. 혼자서는 외롭고 무서운데 두 명이면 시작할 수 있어요. 사실 두 명도 위태롭죠. 근데 세 명이면 끄떡없더라고요. 한 사람이 못하게 돼도 또 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는 수요 집회를 통해 ‘약자의 힘은 단결과 연대에서 나온다’라는 것을 절절히 깨달을 수 있었다.

시위를 하던 중, 함께 연대하던 ‘교육공동체벗’의 한 조합원이 그에게 제안을 해왔다. ‘당신이 잘하는 걸 가지고 싸움을 하면 되지 않느냐. 원래 강의를 하던 사람이니까 강의로 한 번 투쟁을 해 보면 어떻겠냐’라고 해서 채효정 씨는 잔디밭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대학은 나에게서 강의를 빼앗아갔지만 나는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 또 들을 사람도 있다는 걸 보여주게 된 계기가 됐죠.” 해고 후 잔디밭에서 학생들, 시민들, 연대자들과 함께 한 강의의 내용을 엮어 만든 책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는 그때의 활동이 학생들에게도 큰 경험이 됐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잔디밭은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들어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잡아가는 것도 아니고 징계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스스로 움츠러들었던 게 많았는데, 그걸 깨뜨려버린 게 가장 큰 성과였어요.” 대학에서의 많은 선을 학생들과 함께 넘어갔던 경험은 그에게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시간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가 책에서 지적했던 대학의 기업화·시장화의 문제는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고, 저항하고 목소리를 내야 할 학생운동은 계속해서 침체되는 분위기다. 채효정 씨는 이것이 학생운동의 좌절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사회 전반의 우경화와 직결된 문제라고 봤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묻자 그는 “학교, 직장, 노동, 농민 등 부문별로 구획된 부문 운동의 틀을 넘어 전선을 재교차하면서 다시 그어야 한다”라며 “사회 전체에서 진보적인 사회 운동이 계속 강화될 때만 학생운동도 같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고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동권과 비(非)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을대을 싸움 구도에 갇히지 않으려면 더 큰 틀에서의 지배와 피지배 관계를 생각하며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학교 안의 다양한 운동하는 주체들과 힘을 합치고, 학교 안에 머무르지 않고 학교 밖으로도 자본 대 노동의 기울어진 권력관계를 바로잡는 활동들을 광범위하게 벌이는 게 중요해요.”

채효정 씨의 잔디밭 강의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채효정 씨)
채효정 씨의 잔디밭 강의에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사진 제공: 채효정 씨)

모두의 실천으로 만드는 더 나은 세계

이런 사회 운동의 일환으로 채효정 씨가 택한 것은 교육 운동이었다. 그가 편집위원장으로 있는 「오늘의 교육」은 협동조합 교육공동체벗이 만드는 매체다. 교육공동체벗은 소수의 활동가만 활동하고 일반 회원은 회비만 내는 방식이 아닌, 모두가 십시일반해서 각자 실천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협동조합 형태로 조직됐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육공동체벗의 조합원들은 서로를 ‘벗’이라고 부른다.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 소모임 반이 많았어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부방도 만들고, 조합원 중에 꼭 한 사람은 능력자가 있어서 수선이나 생활 기술, 봉제, 목공 등을 배우기도 하고요.” 현재 이런 소모임은 많이 줄었지만, 교육공동체벗은 「오늘의 교육」을 비롯한 출판 사업과 현장에서의 연대·실천을 조직하고 연결하는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의 교육」도 편집위원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 교체되고, 편집위원장도 돌아가면서 하고 있어요. 그런 점들이 저는 민주적이고 좋다고 생각해요.”

「오늘의 교육」은 ‘교육 불가능’의 절망적인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오늘날 이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불러오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이야기한다. “교육 불가능은 교육공동체벗의 어떤 ‘선언’이었어요. 희망을 가지고 교육에서 무엇인가를 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가능한 세계가 없다는 이 현실을 인정하자, 정직한 절망에서부터 시작하자고 생각했죠.” 그러나 ‘교육 불가능의 시대’라는 그 선언은 절망에서 시작할지언정 절망적인 선언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시·정시 비율이나 입시 제도 개혁과 같은 차원을 넘어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어야 한다는 새로운 시작점을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효정 씨는 오늘날 이야기되는 교육의 생태적 전환 역시 단순히 환경 교육을 하거나, 소비 실천의 필요성을 머리로 아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봤다. “스스로 각성해 생활 속에서 작은 소비 실천을 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문제는 그걸로 만족하고 끝나 버리는 거죠. 이와 연결된 사회적 노력을 반드시 해야 해요.” 그는 ‘생태적 전환은 생태적 저항’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전환을 가로막는 반동을 없애면서 사회를 개선해 나가기 위한 저항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채효정 씨는 요즘 ‘저항하는 녹색’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린뉴딜부터 탄소중립까지 오는 동안 탈탄소전략들이 친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체제 안에 들어오고 제도화돼 왔어요. 당사자인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상황 속에서 방향을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와 관련된 문제 제기를 본격적으로 해 보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워커스」 잡지에 연재해 온 ‘워커스 사전’을 묶어 책으로 낼 계획이다. 워커스 사전은 노동자와 민중, 소수자와 약자의 관점에서 기존의 개념들을 재해석·재명명한 것이다. “‘거버넌스’, ‘민영화’, ‘공유경제’와 같은 이름 뒤에 해당 사업이 어떤 의도와 원리에 의해서 작동하고 있고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를 밝히는, ‘지배의 기술’을 폭로하는 그런 사전이에요. 예를 들면, 민영화를 민영화라고 하는 순간 사유화라는 본질이 숨겨지는데, 그동안 그런 식으로 작명을 해 왔어요. 민영화가 아니라 사유화라고 해야죠.” 이외에도 그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체제가 1990년을 기점으로 어떻게 한국인의 사고방식과 정서에 내면화됐는지를 사상적 차원에서 보는 책도 출판할 예정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채효정 씨는 독자들에게 “공적 이성을 발휘하는 계급의 배반자가 돼 달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90년대 이후로 SKY 학생들의 계급 지형이 중상층으로 기울어지면서, 그 조건이 안 되면 진입하기 힘들어진 현실을 지적했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라고 생각하지 말고, 학교에 대한 비판을 우리 자신에 대한 피해나 손해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해요. 계급의 배반자가 돼 사회를 더 낫게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채효정 씨의 저항과 연대의 길에 함께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소망한다.

 

*폴리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로, 공적 영역, 정치 공동체를 의미한다.

*오이코스: 폴리스에 대비되는 가정 경제 단위로서의 집을 뜻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 존재의 기초적인 삶터를 의미한다.

 

레이아웃: 채은화 기자 chae129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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