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선 취재부장
김민선 취재부장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 수도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요한 묵시록의 예언에 따라 끔찍한 연쇄 살인이 계속되고, 치밀한 탐정인 윌리엄 수도사와 그의 제자 아드소는 사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미로와 같은 장서관을 통과해 『시학』 제2권 앞에 도달한 아드소와 윌리엄 수도사는 그곳에서 호르헤 노인을 마주한다. 늙은 수도사 호르헤 노인은 웃음이 신의 신성성과 근엄함에 대한 도전이라고 믿었다. 그는 “웃음은 범부를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킨다”라고 맹신하며 희극에 대한 책인 『시학』 제2권에 손댄 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웃음에 대해 호기심을 보였다고 살인을 저지르다니. 호르헤 노인의 광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 이외에는 모두 거짓으로 치부하는 맹목적인 신념이 그를 살인자로 인도했을 것이다. 호르헤 노인이 눈이 먼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점 역시 자신이 믿는 진리 이외의 것을 보지 못하는 광신도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어 온 진리는 결국 호르헤 노인 자신의 파멸뿐 아니라 장서관 대화재라는 참사를 불러왔다.

호르헤 노인은 종교가 절대적 진리였던 중세 시대에 국한된 인물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는 귀를 닫고 맹목적인 지지를 하는 모습은 이번 대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후보자의 정책 역량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보다 가십이 앞서는 상황이 반복됐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상대 후보 네거티브에는 민감한 반응이 이어졌다. 제20대 대선을 최악의 대선이라고들 말하는데, 결국 최악이라고 불리는 해당 후보들이 남게 된 것에는 국민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거대 양당 사이에 막혀 제3의 길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정치적 양극화 앞에서 언론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안타깝게도 언론은 정책 검증보다는 의혹에 불을 지피는 일에 더 열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파성이 오피니언을 넘어 보도까지 침범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언론의 펜촉은 국민의 공정한 선택을 돕는 방향보다는 후보자들의 가십을 찌르는 것에 집중했다. 이런 보도 행태에 따라 누가 선두를 달리는지가 대중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대선이 곧 마무리되고 학내에서는 총학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학교가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처럼 지난 총학 선거에서는 각종 의혹이 난무하며 네거티브로 점철된 정치판을 연상시켰다. 선본 「자정」은 지난 선거의 논란을 뒤로하고 선거에 재출마했다. 후보자의 인간성에 대한 검증은 중요하나, 그 과정에서 독단에 빠지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라는 문장으로 소설을 마쳤다. 덧없는 선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신문』 역시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호르헤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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