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장애인 이동권의 실태를 짚다

2001년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연대 투쟁이 지난해부터 ‘승하차 시위’의 형태로 재개되면서 화제가 됐다. 승하차 시위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 승하차를 반복하는 시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의 장애인 단체는 지난해 1월부터 이동권 보장과 장애인 권리 예산 확충을 외쳤다.

장애인 이동 편의의 현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3조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등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의 39.8%가 교통수단 이용에 여전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는 2017년에 비해 2.1% 증가한 수치다. 응답자들은 △버스와 택시의 불편함 △장애인 콜택시 등 전용 교통수단 부족 △지하철 엘리베이터와 같은 편의 시설 부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지난 4일(금) 혜화역에서 열린 전장연 선전전에서 마이크를 잡은 최일환 씨는 “역내 장애인용 남자 화장실이 공사 중이라 비장애인 남자 화장실로 갔더니, 문 앞에 계단 3개가 있더라”라며 “급한 순간에 주요 시설을 사용할 수 없을 때가 많다”라고 밝혔다.

장애인 이동권 개선 약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서울시가 발표한 ‘장애인 이동권 증진을 위한 서울시 선언’에 따르면, 2022년까지 서울 지하철 1역사 1동선* 승강기 100% 설치와 2025년까지 시내 저상 버스 100% 도입이 약속됐다. 그러나 지난해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지하철 구간 기준 20여 개 역에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고, 저상 버스는 전체 버스의 66% 도입된 것에 그쳤다. 심지어 2022년 서울시 예산안에는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이 삭감되거나 미반영됐다. 작년 10월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린 이후 예산안이 수정돼 공사비 반영 및 설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 10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신설되고, 공간 확보가 어려운 6개 역사 내 승강시설의 설계 및 검토가 이뤄질 예정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설치 외에도 다양한 문제들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 시위 참여자 중에서는 “3cm의 턱 때문에 1km를 돌아간다”라며 고충을 토로한 사람도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이 실시한 ‘2018 지하철 장애인 편의시설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출입구 70개소 중 12개소는 이동 편의 시설 위치 안내 표지가 없거나 표지판 내에 엘리베이터 표시가 없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역내로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또한 기준 미달의 △점형 블록 △휠체어 리프트 △역무원 호출 버튼의 작동 미흡 △승강장과 열차 간 넓은 간격 및 높이 차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환승로 안내 미흡 등과 관련해 개선할 부분이 여전히 많았다.

 

시위가 전하는 불편함, 그리고 메시지

다만 승하차 시위가 출퇴근 시간대에 기습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열차 지연에 영향을 받은 시민이 적지 않다. 시민들의 불편함이 축적되면서 시위뿐만 아니라 이를 주최한 장애인 단체를 향한 평가가 엇갈리는 실정이다. 혜화역에서 출근하는 시민 A 씨는 “열차 지연으로 인한 지각 한두 번은 사장님도 이해해 줬지만 세 번째부터는 눈치가 보였다”라면서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문제이기에 불편해도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시민 B 씨는 “장애인들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토로했다. 이에 장애인 이동권 컨텐츠 제작 협동조합 ‘무의’의 홍윤희 이사장은 “사람들이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이를 혐오에 초점을 둬 납작하게 다루는 언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승하차 시위의 중심지였던 4호선 혜화역 승강장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승하차 시위와 별개로 장애인 이동권 및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선전전이 매일 오전 8시부터 1시간 동안 열리고 있다. A 씨는 “마침 오늘 세 달 만에 처음 선전전 내용을 듣는 중”이라며 “격앙된 분위기 속에 묻혔던 그들의 목소리가 이제야 들린다”라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 모두 시위로 인한 불편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시위가 없었다면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이 보장돼야

시민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된 만큼, 승하차 시위 이후 긍정적인 변화가 분명 있었다. 전장연 김필순 기획실장은 “저상 버스 도입 의무화, 특별교통수단 이동지원센터 및 광역이동지원센터의 운영 비용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이 작년에 통과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시작일 뿐, 갈 길이 멀다. 개정안으로 예산 증액을 못 박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실장은 “여야의 조정 과정에서 운영비 지원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 ‘할 수 있다’로 변경돼 예산 반영 여부가 확실치 않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빠르면 올해 추경, 늦으면 내년 예산안으로 반영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시위자들은 기획재정부, 나아가 차기 정부를 꾸릴 대선 후보에게 예산 증액에 대한 약속을 요구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이런 요구에 부응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시위장을 찾아 “이동권 보장뿐만 아니라 장애인 선진국을 만들겠다”라는 입장을 밝혔고, 대선 후보자 토론회의 최종 발언 1분을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관한 발제로 채우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또한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장애인 이동권의 확실한 보장을 약속했다. 그는 또한 장애인을 위한 5대 공약에서 배리어프리 및 유니버설 디자인 환경을 법제화를 통해 완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이와 관련해 공개적 언급을 한 적은 없지만, 저상버스와 콜택시 등 이동권 확대 공약을 내놨다. 

 

이동의 자유는 장애인에게도 당연히 보장돼야 할 권리임에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그동안의 약속들은 언제든 다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그들은 다시 시민들의 불편과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라도 지하철을 타야 할지 모른다. 낭떠러지에서 외치는 시위자의 격앙된 외침을 협박이라고만 생각하지는 말자. 

 

*1역사 1동선: 교통약자가 타인의 도움 없이 지상 출구부터 승강장까지 하나의 동선으로 이동하는 것.

 

사진: 오소영 사회문화부 차장 ohsoyoung20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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