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만나다 | ‘아픔’을 바라보는 김관욱 교수의 시선

‘사랑합니다, 고객님.’ 비대면 환경으로의 전환과 방역지침으로 쏟아지는 문의에도 콜센터 상담사들은 전화가 연결된 뒤 친절한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코리아빌딩 콜센터 집단 감염의 발생은 상냥한 응답에 가려져 왔던 콜센터 노동 현장의 실체를 드러냈다. 『사람입니다, 고객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는 노동 공간이 초래한 아픔과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낱낱이 드러낸다. 책을 통해 아픔을 위로하는 김관욱 교수(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를 만나 그가 사회적 아픔에 공감해 온 과정을 들어봤다.

의료인류학자의 시선에서 건강 불평등을 바라보다

김관욱 교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자로, 오랫동안 흡연과 건강 불평등을 연구해 왔다. 질병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원인을 엄밀하게 규명하는 의학과 인간 관계를 이해하고 현상을 기술하는 인류학의 조합은 사뭇 낯설다. 김 교수는 병원에서는 질병으로 인해 노동을 할 수 없는 환자들을, 사회에서는 노동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질병을 얻은 이들을 만났다. 그는 “의료 현장에서는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해 말하는 의사와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환자가 만나기에, 사람과 사람 간의 오해를 풀어 나가는 인류학적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사회적 재난과 참사의 현장에서 그 오해의 폭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의료인류학자는 의학이 측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를 들여다보며 의학과 인간을 연결한다.

의료인류학자는 어떻게 콜센터를 연구하게 됐을까? 흡연에 관해 연구해 온 그는 2010년도를 전후해 여성의 전체 흡연율은 증가하지만, 되려 고학력·고소득 여성 흡연율은 감소하는 현상을 확인했다. 이에 반해 저학력·저소득 여성 흡연율이 증가하며, 학력과 소득 차이에 따른 흡연율의 격차가 커지게 됐다. 김 교수는 학력과 소득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사회 계층 간의 격차가 흡연율이라는 건강 지표로 드러나게 된 원인을 현장 연구를 통해 찾아내고자 했고, 특히 콜센터에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높은 흡연율에 주목했다. 김 교수는 “흡연 사실을 숨기는 경향으로 인해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처럼 ‘과소 보고’가 됐을 가능성을 감안해도, 콜센터 여성 노동자의 흡연율은 약 35%로 전체 성인 여성 집단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라며 “집단 감염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밀집된 근로 환경의 문제인 것처럼, 흡연율과 같은 건강 지표의 이상 수치는 직군에 내재된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 교수는 보건소 금연 클리닉으로 현장 연구를 시작했다. 콜센터 단지를 발로 뛰고 상담사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들의 노동 현실을 알아봤다. 그는 2014년부터 콜센터가 집중 분포한 구로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서 직접 상담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들을 흡연으로 이끄는 노동 환경의 문제점을 찾아내고자 했다. 콜센터 상담사들은 목 디스크와 허리 디스크를 포함한 중추 근골격계 질환부터, 인후두염, 헤드셋으로 인한 청력 손실, 오래 앉아 있는 환경으로 인한 방광염, 정신과적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경험까지 직무 환경으로 인한 건강 악화를 경험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입사 이후에 질병이 악화됐다고 한다. 김 교수는 “상담사에게 담배는 고통을 마비시켜 큰 부작용 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드러그 푸드*’가 된다”라고 설명했다.

 

통제와 경쟁의 노동 현장에서 외치는 ‘적정 콜 받기’

그간 콜센터 노동 환경의 문제는 악성 고객의 갑질과 감정 노동으로 국한돼 왔다. 그러나 김관욱 교수는 이는 표면적인 문제이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콜센터의 구조적 문제가 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를 야기해 온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콜센터로 걸려 오는 상담 전화는 자동 콜 분배기를 거쳐 상담사에게 지속적으로 배당된다. 고강도의 노동이 지속됨에도 화장실을 가려면 손을 들어 직접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휴게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는 1970~1980년대 구로공단에서 ‘비숙련 노동자’라는 명칭과 ‘경력 단절 여성’이란 프레임으로 여성 노동자의 저임금·고강도 노동을 정당화한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산업 체계가 디지털 정보 산업으로 전환됐음에도, 저임금·고강도 노동의 현장에는 여전히 여성 노동자가 존재한다.

콜센터 상담사의 무리한 노동은 이들이 일반적으로 하청의 형태로 공공·민간 부문의 원청 기관에 간접 고용된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실적이 부진할 경우 해고로 직결되는 무기 계약직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는 콜센터의 노동 환경을 더더욱 열악하게 만든다. 게다가 콜센터 상담사의 실질적인 존재 이유가 폭언과 불필요한 절차로부터 원청 직원들을 보호하는 것에 있기에 호 전환*은 금기시된다. 이런 현실은 상담사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를 ‘벽’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 무력감을 낳는다. 김 교수는 “해로움을 회피하려는 본능은 곧 건강과 직결된다”라며 질병의 발현 여부와 상관없이 해로운 노동 현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정동 노동’이라고 칭한다. ‘정동’(Affect)은 마음을 따라 움직이며 나타나는, 신체 변화를 초래하는 감정 상태다. 김 교수는 상담사들이 자존감이 상실된 상태로 위축돼 있으며, 하고 싶지 않아도 명령을 따르는 ‘정동’의 노동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 부족에서 찾으며 계속 건강하지 못한 노동을 하는 ‘정동적 지배’에 이들이 묶여 있다는 것이다.

성장주의의 통제하에 실적은 향상됐지만, 이에 반해 노동 현실을 개선하려는 제도의 변화는 미미했다. 이에 콜센터 상담사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며 몸을 변화시키고 저항을 시도했다. 한 콜센터에서는 노동조합의 요구 사항을 적은 조끼인 ‘몸자보’를 일상 근무 중에도 의자에 걸어두며 조합원들이 서로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했다. 상담사들은 장기간 앉아서 근무하며 굳어진 몸을 펴주는 스트레칭 ‘몸 펴기’를 통해 건강을 좇으며 감춰진 통증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노동조합 단위로 진행됐던 활동 중에서도 특히 ‘적정 콜 받기’를 연대와 공감의 지극한 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적정 콜 받기는 상담사 간의 실적 경쟁에서 벗어나, 노동 환경과 건강의 회복을 위해 적정한 수의 콜을 받자는 움직임이 집단 행동으로 성공한 것”이라며 “이는 노동자들이 연대를 통해 ‘정동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라고 설명했다.

공감과 연대로 정동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질병’과 ‘고통’이라는 표현과 비교했을 때, ‘아픔’이라는 말에는 발화자의 애정 어린 시선이 오롯이 충전돼 있다. 김관욱 교수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책의 제목은 가족에게 전하는 인사말에서 떠올렸다”라며 “질병, 고통 따위의 표현과 달리 집단이 공유하는 이해, 즉 ‘간주관성’을 전제하는 ‘아픔’이라는 표현은 공감의 맥락에서 나오는 발화다”라고 전했다. 독자가 언젠가는 내가 겪게 될 수도 있다는 공감의 시선으로 사회 어딘가에 존재하는 아픔을 바라봤으면 한다는 의미를 담아낸 것이다. 그는 “『사람입니다, 고객님』도 제목에서 책의 내용이 아픔을 들여다 보고 있음을 표현함으로써 책을 읽지 않더라도 제목을 접한 이에게 아픔에 대한 공감을 부탁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사회가 통증을 강요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앞서 콜센터에서 나타난 정동적 지배는 일상에서 경험하는 크고 작은 아픔과도 연결돼 있다. 그는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에서 우리 사회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통증을 강요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어느새 피로는 한국의 풍토병이 됐고, 직장인들에게 어깨 결림은 당연해졌으며, 한국의 수험생이라면 ‘잠을 줄여서라도 공부해라’라는 말을 들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김 교수는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과 다양한 원인으로 인한 아픔을 인내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신념이 아니다”라며 한국 사회 전반에도 정동적 지배가 존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아픔은 결코 의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을 되돌아보고 미래를 고민해 볼 때다. 김 교수는 성장과 이윤의 극단적인 추구가 선으로 치부되고, 건강은 당연히 희생돼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회는 콜센터를 포함한 사회적 고통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미 ‘효능’이 인정된 콜센터의 노동 시스템이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러므로 적정 콜 받기를 통해 노동자들이 보여준 공감의 연대가 사회 전체로 확대돼야 할 시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콜센터에 관한 편협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노동자들의 삶에 공감하고, 전문 디지털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 주는 ‘콜키퍼’로서 상담사들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적정 콜 받기와 같은 합의와 연대는 사회의 더 넓은 영역에서도 당연히 이뤄질 수 있다”라며 “동정이 아닌 공감과 인간애로 서로의 아픔에 접근했을 때 비로소 아픔이 치유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워라밸’이라는 일시적 보완책을 넘어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목표에 관해 묻자, 김관욱 교수는 ‘치유로서의 저항’이라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진단과 치료에만 한정돼 있던 건강 개념을 확장시키고, 인류학자로서 치유와 연대의 현장을 돌아보며 공감을 통한 치유가 우리 삶 안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게끔 만들 것”이라며 통증을 강요하는 사회에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런 그의 생각에 연대해 서로의 아픔을 마주하며 강요받은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를 소망해 본다. 그럼 오늘도,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드러그 푸드(Drug Foods): 미국의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가 제시한 개념으로, 노동력에 관련된 식품이나 약물을 뜻한다. 19세기 노동자들이 담배·커피·초콜릿 등을 즐겨 사용해 고통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면서 노동을 계속할 수 있던 것에서 유래됐다.

*호 전환(Call Transfer): 걸려 오는 전화를 지정된 다른 번호로 접속, 연결해 주는 서비스.

 

사진: 구민지 기자 grrr02@snu.ac.kr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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