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 공급망 재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우크라이나 사태로 원자재 가격이 출렁이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어느 나라도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글로벌 공급망(Global Value Chain)의 영향력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은 어떤 부가가치가 어느 교역 단계와 국가에 귀속되는가에 대한 개념이다. 『대학신문』은 한국의 공급망 위기를 되짚고, 한국 무역의 구조적 취약성과 대비책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여러 차례의 공급망 위기들

공급망 위기는 크게 두 종류다. 산업연구원 김바우 전문연구원은 “공급망 위기는 원유 같은 원자재 가격 상승이 생산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가격 위기와 특정 품목의 공급이 끊기는 수급상 위기로 나뉜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경우 원유·천연가스의 가격 상승으로 인한 타격이 우려되므로 가격 위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이 최근 겪은 대부분의 공급망 위기는 수급상의 이유였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2020년 중국산 와이어링 하니스 수급 차질 △2021년 요소수 대란이 대표적이다. 일본 수출규제의 경우, 규제 자체의 영향은 거의 없었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일본이 수출을 규제했지만, 일본 기업이 벨기에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입하는 방식으로 수입 다변화가 가능했다”라며 “일본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이윤 추구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은 관련 기술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김양팽 연구원은 “저순도 불화수소는 이미 국내 생산이 가능했고 반도체 제조를 위한 고순도 불화수소를 만드는 공정이 어려웠다”라며 “그러나 해당 공정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대응 과정에서 드러났다”라고 평했다.

한편 요소수 대란은 일본 수출규제와 달리 고의적 제재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중첩돼 나타났다. 중국과 호주의 외교적 마찰이 중국의 호주산 석탄 수입 중단으로 이어졌고, 중국 정부의 탄소중립 기조가 더해져 전력난이 발생했다. 요소의 원료인 석탄 수급이 원활치 않자 요소 수급 역시 불안해졌고, 주변국에 대한 요소 수출이 제한됐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김경훈 연구위원은 “공급망 내 다층적인 충격이 한국 요소수 사태로 예상치 못하게 이어졌다”라며 “수입 다변화도 이뤄지긴 했지만 중국이 수출 제한을 풀면서 해결된 측면이 강하다”라고 분석했다.

 

한국 무역의 구조적 취약성

특히 요소수와 와이어링 하니스의 공급망 위기는 한국과 중국의 분업 시스템이 구조적 원인이며, 그 중심에는 중국산 제품의 월등한 가격 경쟁력이 있다. 김양팽 연구원은 “중국에서 10원에 사 오던 와이어링 하니스를 국내에서 만들면 100원이 넘게 들어간다”라고 밝혔다. 김경훈 연구위원은 “수입 품목 중에서 중국이 수입액 1위를 차지하는 품목은 4,000개가 넘는다”라고 설명했다. 높은 일본 의존도 역시 한국 무역의 고질적인 구조적 취약성이다. 김양팽 연구원은 “일본 반도체 제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낮지만 반도체 소재 부문에서는 높은 편”이라며 “한국은 반도체를 제조하기 시작하면서 소재를 일본에서 수입했기에 국내 소재를 사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높은 의존도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중국과 일본에 의존하는 무역 구조의 연원은 2000년대부터 유지된 동북아시아 3국 간의 분업 체계다. 김경훈 연구원은 “일본은 소재·부품 산업, 한국은 중간재, 중국은 최종재에 가까운 조립·가공 단계를 담당하는 방식으로 분업이 이뤄졌다”라며 “한국은 중국에 무역 흑자를, 일본에 적자를 봤고, 중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적자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흑자를 보는 구조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분업 구조는 중국의 기술력 발전으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또한 비교우위에 따른 경직된 공급망에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 또는 여러 대체 공급국가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공급망 재편이 이뤄지며 한·중·일 분업 구조가 취약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김민재 대우교수(서강대 경영학부)는 “미국의 중국 때리기, 보호무역주의의 확산과 같은 배경에서 비용과 노력을 감수하더라도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공급망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이는 코로나19로 가속화됐다”라고 설명했다. 김경훈 연구위원은 “한국이 단독으로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은 어렵지만 미국 주도의 공급망 재편 아래서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급망의 안정화를 위해

무역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크게 국산화를 하는 방법과 무역 다변화를 하는 방법이 있다. 국산화에는 기술 개발을 통한 자체 생산뿐 아니라 생산 거점을 해외에서 자국으로 이전하는 리쇼어링도 포함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국산화는 해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김양팽 연구원은 “반도체에 들어가는 5~600가지의 소재 중 수입에 의존하는 것들은 언제 수급 불안이 발생할지 몰라 생산기술을 확보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라면서도 “비상 상황에서 수입 제품을 국내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수준 정도면 된다”라고 말했다. 이에 2020년 산업자원통상부는 ‘소재·부품·장비 2.0 전략’을 발표하고,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고자 공급망 관리 대상을 기존 대일(對日) 100개 품목에서 글로벌 차원의 338개 이상 품목으로 확대했다. 

그렇다면 리쇼어링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충분히 고려 가능한 방안이지만,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김양팽 연구원은 “해외 생산 거점이 국내로 이동하면 소비자 물가가 생산비 인상만큼 뛰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경훈 연구원 역시 “이윤 극대화를 이유로 기업이 선택한 해외 공장을 되돌릴 정도의 강력한 유인이 없다면 정부가 개별 기업의 리쇼어링을 유도하는 것은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국산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수입국을 다각화하는 무역 다변화도 중요하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 10개국과 인도에 대한 직접 투자를 골자로 하는 정책으로, 고질적인 대중국 의존을 줄이는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김양팽 연구원은 “중국에 의존하던 원자재, 농산물, 저가 노동력을 동남아시아 국가로 다각화해 중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공급망 위기는 또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 모른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원만하게 유지하고, 무역 동향을 면밀하게 살펴 산업계가 공급망 위기에 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조기경보시스템을 공고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개별 기업 역시 위험 관리에 힘써야 공급망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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