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연금 개혁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다

2025년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연금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연기금은 2056년에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군다나 국민연금의 급여 적정성 문제가 지적되고 공적연금을 보완하는 사적연금의 가입률이 2018년 기준 16.9%에 그치며, 공·사연금 개혁이 시급함을 보여줬다. 

 

◇현실의 문제에 부딪힌 연금 개혁=연금 체계는 크게 공적연금에 대한 사적연금의 역할에 따라 보완형과 대체형*으로 분류되며, 우리나라는 공적연금을 통해 충분하거나 상당한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보완형 체계에 속한다. 이런 보완형 체계에서는 공적연금의 정상화가 선행된 후 사적연금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적연금 제도에서 제기되는 가장 큰 문제 세 가지는 △연금 적용의 사각지대 △급여 수준의 적정성 △재정 지속성이다.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수형태근로자 편입 △보험료율 인상 및 가입 기간 연장 △연금 수급연령 인상 등 수많은 방법이 논의됐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공적연금의 본 목적을 우선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적연금을 손보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보험연구원 강성호 연구위원은 “공적연금의 정상화는 사회적 합의가 수반돼야 하는 것이라 완전한 정상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며 “그렇기에 사적연금이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강화돼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적연금 역시 가입률이 저조해 노후소득을 제대로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강 연구위원은 “사적연금을 강화하기 위해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은 물론 저소득층의 자발적 가입을 유도하기 위한 선별적 지원도 이뤄져야 한다”라며 “다만 사적연금이 안정적인 노후소득보장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중도에 해지하는 경우 지원액 회수와 같은 불이익을 부과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연금 개혁, 산 넘어 산=연금 개혁에 관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현실화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보험료율 인상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다. 홍백의 교수(사회복지학과)는 “보험료율을 높이자는 의견은 20여 년 전부터 계속 나왔지만, 아직도 진전이 없다”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가 보험료율을 12.65%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했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이후 노무현 정부도 보험료율을 올리려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본회의에서 좌절됐다. 홍 교수는 “보험료율 인상에 호의적이지 않은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표심을 최우선시하는 정치권에서 연금 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분석했다. 

연금 간 역할 분담도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공적연금 내에서도 명확한 역할 분담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사연금 간 역할 분담도 해야 하는 것이다. 강성호 연구위원은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과 특수직역연금조차 담당하는 행정기관이 달라 합의를 도출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못한 이유는 궁극적인 정책 목표가 합의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노인빈곤율을 낮추는 것과 노후생활을 보장할 만한 수준의 공적연금을 제공하는 것 중 무엇이 일차적인 정책 목표인지에 따라 공·사연금의 역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설정된 역할에 맞게 제도의 크기와 목표소득대체율, 보험료율 등이 결정되므로 역할 분담에 신중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공적연금에 대한 사적연금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설정할지에 관한 논의가 통합적으로 진행되기보다, 공적연금 또는 사적연금 각각의 문제점에 초점을 두고 논의가 진행돼 공·사연금 간 역할 분담은 지지부진하다. 강 연구원은 “공·사연금의 모든 주체가 한자리에 모여 연금 개혁의 현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현실화를 위한 내실화=연금 개혁을 실현하려면 연금제도의 내실화 면에서 정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 부처 간 협력 또는 독립적인 연금 기구 설치를 제안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경우, 통합적 시각의 노후소득보장 정책 수립을 위해 관련 부처 간 위원회를 상설해 이를 구속력 있게 운영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한편 강성호 연구위원은 “부처 간 충돌을 막기 위해 대통령이나 총리 직속의 특별위원회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라며 “해당 위원회는 사적연금까지 다룸으로써 다층적인 노후소득보장체계와 공·사연금제도의 개선 사항을 합의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다른 보완형 체계의 국가는 어떻게 연금 체계의 내실화를 시도했을까. 스웨덴은 명목확정기여(NDC) 방식으로 공적연금을 일원화해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 냈다. NDC는 보험료 납부액뿐만 아니라 경제 상황, 은퇴 연령 등을 모두 고려하므로 개인의 은퇴 시점과 인구통계학적 상황에 따라 연금 수령액에 차이가 생긴다. 독일의 ‘리스터 연금’은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 중 하나다. 강 연구원은 “리스터 연금은 감소한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고 저소득층 및 다자녀가구에 더 많은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사적연금 체계를 보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초고령사회의 노후소득보장 욕구를 사적연금의 한 형태인 ‘톤틴형 연금’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다. 톤틴형 연금은 가입자가 조기 사망할 경우 적립금과 사망보험금의 차액을 다른 가입자의 연금 재원으로 활용하는 제도로, 계약자가 장수할수록 수령액이 증가한다. 톤틴형 연금은 사망자의 보험료를 생존자 연금으로 지급한다는 점과 보험사의 기금 횡령 및 규제 부재로 외면받았지만, 최근 일본에서 관련 상품을 선보이며 다시 조명받고 있다. 다만 홍 교수는 톤틴형 연금 도입에 관해 “연금을 저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라며 “보험회사의 지출을 줄이는 수단에 그칠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공적연금의 노후소득보장과 노인 빈곤 방지라는 본래의 목적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사연금 개혁이 불가피하다. 급격한 고령화로 본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위기에 빠진 연금 체계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연금 개혁과 내실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할 것이다.

 

*대체형 연금 체계: 공적연금으로 최저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고, 최저수준 이상의 노후소득 보장은 사적연금이 담당하는 연금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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