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종(기계항공공학부·17)
정윤종(기계항공공학부·17)

겨우내 〈그 해 우리는〉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 등 여러 콘텐츠가 ‘핫’ 했지만,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를 하나 꼽으라면 아담 맥케이 감독의 〈돈 룩 업〉을 꼽고 싶다. 영화 속 천문학자 민디 박사와 대학원생 디비아스키는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을 발견하고 경고하지만, 인류의 멸망이 6개월 14일 후로 예고된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다가올 선거 생각뿐이다. 미디어는 위기보다는 가십에 더 관심이며 대중은 과학자들을 밈으로 소비하고 조롱한다. 기업은 인류의 위기를 돈벌이 기회로 삼아 도박을 시도하고 어떤 과학자들은 기꺼이 그 기회에 올라타 진실을 흐린다.

〈돈 룩 업〉만큼이나 영화를 우리 사회와 겹쳐 보는 여러 반응이 흥미로웠다. 당장 우리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가 과학과 결부돼 있다. 배가 침몰한 원인, 폐 손상과 가습기 살균제의 연관성,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여부, 백신 접종의 이득과 부작용을 판단하는 일까지 많은 이슈에서 ‘과학적 판단’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과학은 단지 침대를 만드는 데 쓰이거나 자동차만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현대 문명을 움직이는 사회적 작동 원리다.

하지만 이런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잘 작동하고 있느냐 물었을 때,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하기는 몹시 어렵다.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운석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정부는 방역 정책을 통해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확산 초기 확진자 멍석말이에 앞장서던 언론은 백신을 두고 자극적 보도만 쏟아 내기 바빴다. 전문가 집단 또한 사회적 책무를 다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예컨대, 방역 패스의 효용을 두고 열린 한 TV 토론에서 전문가라고 나온 패널이 실험군과 대조군이라는 최소한의 과학적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고 백신 무용을 외치는 모습은 참 암울했다. ‘세계 100대 의학자’를 자처하는 한 교수도 백신이 아닌 비타민C로 코로나19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두고 “이런 분이야말로 〈돈 룩 업〉 속 민디 박사 같은 분이다”라는 반응이 있다는 것은 탈진실 시대의 코미디다.

지난 몇 달 간의 대선 국면에서, 대선 후보들도 앞다퉈 과학기술 공약을 내놨다. 어떤 후보는 탄소 중립 목표가 조정되는 것이 ‘과학적’이라 말하는가 하면, 어떤 후보는 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이 ‘진짜 과학적인 것’이라 말한다. 한쪽에서 코로나19 방역 정책이 ‘비과학적’이라며 비판하자 다른 한쪽에서는 방역은 정치 공세의 대상이 아니라며 발끈한다. ‘과학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는 후보도 있었다. 모두가 제각각 소리 높여 과학을 외치지만, 진짜 과학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한 후보가 SNS에 “비과학적 방역 패스 철회”라는 단문의 메시지를 냈던 일을 기억한다. 방역 정책에 관한 평가와는 별개로, 이런 맥락 없는 메시지 속 ‘과학’이라는 단어가 진정한 의미의 과학일까. 난무하는 네거티브 속 등장한 “역술은 일종의 과학”이라는 말은 또 어떤가. ‘내가 과학적이고, 너는 비과학적이네’ 식의 공방 속 과학은 그저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과학의 본질은 주장이 아닌 그 방법에 있다. 대다수 백신 접종자에게 문제가 없었으므로 백신은 안전하다는 소박한 귀납주의자의 주장도, 백신을 맞은 후 사망자가 있으므로 백신은 위험하다는 반증주의자의 주장도 진실을 반영하기에 너무나 단순하기는 매한가지다. 어떤 주장이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반대의 주장이 저절로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비과학적이었다고 해서 원전을 많이 짓겠다는 정책을 그 자체만으로 과학적이라 평가할 수는 없다. 물론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중요하겠지만, ‘과학과 정치를 분리하고’ 전문가의 의견대로만 하면 무조건 만사형통이라는 식의 태도 또한 우려스럽다.

과학이 그저 구호로만 머문다면 ‘돈 룩 업’(Don’t look up)과 ‘룩 업’(Look up)은 구분할 수 없는 두 개의 구호일 뿐이다. 과학의 특별함은 법칙과 원리가 아닌, 과학이 세계를 반영하는 방식에서 비롯된다. 또 과학은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두 달 뒤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모쪼록 과학이 구호를 넘어 변화의 방법으로서 가치를 갖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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