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효주 사회문화부장
구효주 사회문화부장

멋모르던 신입생 시절 참석했던 ‘서어서문학과 A교수 파면’ 전체학생총회의 기억을 이따금 떠올려 본다. 1,600명이 넘는 학생이 A교수 파면을 요구했고, 이를 위한 투표가 진행됐다. 각자가 속한 과·반의 깃발을 들고 모여 비표를 드는 모습, 수많은 사람이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은 지금 돌이켜 보면 경이롭기만 하다.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경이롭다’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총회는 상상하는 것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A교수’라고 칭하는 것만으로는 그 교수가 어느 과인지 쉽게 떠올릴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교수가 고발돼 학생들이 무감해진 것인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 드나드는 일이 줄면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것인지, 어떤 이유로 학생 사회가 침체됐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봤을 때, 이전에는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였던 학생들이 더 이상 모이지 않는다는 현상만은 확실하다.

몇 년째 지속되는 ‘제62대’ 총학생회(총학) 선거도 학생 정치의 실종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선거가 투표율 50%를 넘기지 못하고 무산됐다. 무관심도 선거 무산의 큰 이유겠지만, ‘선거가 성사되면 해당 선본은 무조건 당선이니 투표를 하지 않겠다’라는 의견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선거에 출마한 선본이 당선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 의사를 ‘무투표’로 ‘의사 표시’한다는 것은 어폐가 아닌가. 어떤 의도를 가졌든 그런 사람과 무관심한 사람의 한 표는 결과적으로 똑같다. 이들은 대개 ‘정치적인 학생회는 필요 없다’ 혹은 ‘총학이 없어도 별로 안 불편하다’라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는데, 나는 이런 이유는 총학이 없어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함을 말하고자 한다. 

정치적인 학생회는 필요 없다는 주장의 취지에는 어느 정도 동감하나, 이는 이미 ‘정치적인’ 학생 사회에서 정치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실현 불가능한 주장에 가깝다. 영국의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그의 저서 『정치를 옹호함』에서 “정치적이지 않은 자기 이익이란 없으며, 정치적이지 않은 공동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말처럼 모든 학생은 학생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학생회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 또한 하나의 정치적인 주장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혹시나 서로의 정치적 견해차로 생길 수 있는 오늘의 갈등을 내일로 미뤄 두자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나는 총학이 존재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으며, 총학이 있는 세계가 그렇지 않은 세계보다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다. 선본 「퍼즐」의 ‘어도비 라이센스 제휴’ 공약을 두고 갑론을박이 일어났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작은 사안조차도 무엇이 가치 있는지에 관한 판단은 여럿 존재하기에 이를 수렴하고 조정하는 것이 총학이 해야 할 일이며, 여러 의제를 선제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조정하는 과정만으로도 충분히 총학의 가치는 입증될 수 있다. 

몇 번의 선거가 무산돼도, 어떤 선본과 공약이 나와도, 나는 여전히 총학이 학생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최선의 방안이라 믿는다. 그래서 언젠간 있을 제62대 총학에게 바라고 싶고, 그래서 다시 한번 총학을 옹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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