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책 | 인문 건축가가 그리는 『공간의 미래』

공간의 미래

유현준

364쪽

을유문화사

2021년 4월 25일

 

 

정확한 예측은 생존의 열쇠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는 것이 생사를 결정했고, 21세기 현대인의 노후는 주가와 집값 예측에 달렸다. 인류에게 닥친 코로나19는 모든 패러다임을 바꿨고, 팬데믹의 종식을 향해 달려가는 2022년의 인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새로운 예측을 요구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건축은 어떤 생존 전략을 취해야 하는가? 『공간의 미래』의 저자 유현준 교수(홍익대 건축학과)는 인간적 삶을 위한 건축의 지향점을 제시한다. 

 

권력이 사라진 공간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시간 대신 공간을 통해 권력을 행사해 왔다. 저자는 시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발생한다는 이론을 토대로 공간을 분석한다. 이런 권력의 작동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은 종교 시설이다. 초기 종교 건축물인 괴베클리 테페는 최초의 종교적 공간인 동굴의 벽 구조를 모방해 신비감을 고양했으며, 또 다른 유명 신전 지구라트는 높은 계단을 이용해 제사장의 위상을 가시화했다. 이후 바실리카 양식*으로 건축된 교회는 직사각형 평면 구조로 큰 규모의 실내를 확보했고, 직사각형의 좁은 변에 위치한 종교 지도자는 시선을 통해 권위를 획득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공간에 모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해 공간이 상징하는 권력 구조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권력이 사라진 공간은 재조직의 과정을 겪으며 스스로의 존재 이유에 관한 본질적 질문을 던졌다. 예컨대, 팬데믹은 종교가 인간 구제라는 본질에 기반함을 상기시켰다. 주중에 누구나 방문할 수 있도록 건물을 개방한 세종산성교회가 대표적이다. 신성함의 상징이었던 교회가 시민의 공유 오피스이자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위한 온라인 수업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처럼 권위를 내려놓은 공간은 그것이 품은 가치를 세상에 적극적으로 펼칠 수 있게 됐다. 

 

소규모·다핵화 공간의 미래

코로나19는 새로운 형태의 교육과 재택근무를 시도하는 기회가 됐다. 이를 뒷받침하는 공간의 핵심 구조는 소규모와 다핵화다. 저자는 만약 코로나19로 확대된 비대면 쇼핑의 여파로 상업 시설의 수요가 감소해 서울 면적의 15%가 공실이 된다면 하나의 학교를 작은 단위로 분화시킨 위성 학교를 계획할 수 있다는 사고 실험을 제시한다. 위성 학교가 실현되면 학생이 휴대폰을 이용해 5인 이하의 소규모 수업을 받을 위성 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코로나19는 재택근무의 시대를 열었다. 재택근무의 장점을 수용하면서도 회사 보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거점 오피스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거점 오피스 7개를 설치했고, 직원들이 온라인 예약으로 좌석을 선택해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와 같은 거점 오피스는 장기적으로 계열사 간의 벽을 없애고 수평적인 조직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장점도 있다.

상업 역시 변화를 맞았다. 팬데믹 이전부터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 쇼핑의 성장세에 맞서 소비자에게 공간적 경험을 제공하는 전략을 취했다. 대표적으로 ‘더현대 서울’은 두 개 층의 상업 공간을 없애고 건물 중앙에 정원을 조성했으며,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별마당 도서관’은 자연 채광의 높은 천장고에 큰 책꽂이를 가진 공간을 선보였다. 또한 전염병은 이처럼 경험을 판매하는 풍조를 유지하는 동시에, 대형 공간을 구획화해 매출을 올리는 생존 전략을 취하게 만들었다. 특별 소비자를 위해 명품 매장의 비중을 48%로 높이는 계획을 추진 중인 롯데백화점 본점이 대표적이다. 한편 쇼핑몰 대형화와 반대로 오프라인 공간에는 작은 다핵화 점포가 증가하는 추세다. 극도의 다핵화가 이뤄진 미래에는 서점·빨래방과 융합돼 특별한 공간적 체험을 제공하는 개성 있는 편의점도 기대해 봄 직하다. 

 

결국 몽상가가 세상을 바꾼다

팬데믹이 남긴 사회적 단절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는 도서관·공원·벤치 등 익명의 상태에서 공통의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서술한다. 마포구 연남동에서 공덕동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숲길은 미래에 필요한 선형 공원의 좋은 예시다. 서로 다른 두 지역의 주민들은 경의선 숲길을 왕래하며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이처럼 용도를 상실한 철길에 공원을 만든 아이디어를 활용해 미래의 공원을 기획할 수 있다. 물류 교통을 지하 터널로 해결해 기존 지상 도로의 차선을 여유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그 예다.

사회의 화합을 도모하는 한편 자연과 인간의 관계 회복 노력도 필요하다. 서울에 위치한 그린벨트는 비닐하우스와 무허가 건축물이 난무할 뿐,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저자는 엣지 시티(Edge City)를 조성해 그린벨트와 도시가 만나는 경계부의 땅을 고층·고밀도로 개발하고, 나머지 90%의 땅을 친환경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고 언급한다. 나아가 저자는 비무장 지대(DMZ)를 배경으로 한 ‘평화 엣지 시티’를 구상하면서, “미래는 꿈꾸는 자들이 만든다”라며 장을 마무리한다. 

한 번 세워진 건물은 몇십 년간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건축은 공학의 영역에 국한되면 안 된다. 건축의 뿌리는 반드시 휴머니즘에 기반해야 하며 건축가는 인간을 위한 최상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 이 관점에서 『공간의 미래』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은 건축가의 꿈의 설계도다.

 

*바실리카 양식: 로마의 시장과 법정으로 사용된 공공건물인 바실리카에서 유래한 것으로, 직사각형 평면을 기본으로 외벽으로 둘러싸인 내부 공간 안에 기둥이 줄지어 늘어선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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