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삽화: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저놈 잡아라...... 적이다 적...... 난 시민이야...... 문 좀 열어달라고...... 나 좀...... 헉헉...... 내게도 열어줘...... 아으......”

“제발 그만둬, 이 바보 멍충이야. 열리긴 뭐가 열렸다는 거야. 다 닫혔어, 다 닫혔다구.”(김소진,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중에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철학자 칼 포퍼가 나치의 탄압을 피해 뉴질랜드에 머물며 집필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 이 책에서 포퍼는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온 전체주의의 폭력에 맞서 ‘닫힌 사회’에 대비되는 ‘열린 사회’의 개념을 제시한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열린 사회’란 개개인들의 결단과 자유로운 비판을 허용하고, 합리적인 토론과 시행착오를 통한 점진적인 발전이 가능한 사회다. 그런데 사회적 약자들이 합리적인 대화의 장 자체에 참여할 수 없고, 강자의 권력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관철시키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는 ‘열린 사회’란 너무나도 낙관적인 이론일 수 있다. 

소설가 김소진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91)은 바로 칼 포퍼의 책에서 제목을 따온 소설이다. 1991년 민주화 시위 중 사망한 김귀정 열사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 앞, 시신을 탈취하려는 공권력에 대항해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필사적으로 시신을 수호하고 있다. 그런데 소설은 그 시위대 내부, 대학생들·시민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와 (어디서도 찬밥 신세라) ‘밥풀때기’라 불리는 기층 민중 간의 대립을 그린다. 사회 변화를 꿈꿨으나 정치인들의 행태에 실망한 ‘밥풀때기’들은 김귀정 열사의 죽음을 애도하고, 순수한 학생들의 운동에 참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과격함과 방법적 미숙함으로 인해 민주화 시위를 욕 먹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되고, 논의의 장에서 배제된다. 민주적인 질서와 절차를 강조하는 대책위 사람들은 충동적이고 거친 행동을 보이는 ‘밥풀때기’들과 끝내 연대하지 못한다. ‘밥풀때기’들은 그들을 ‘열린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열린 사회’를 막으려는 자들뿐 아니라, ‘열린 사회’로 향하는 길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불편한 ‘공공의 적’으로 간주된 것이다. 

물론 현대 시민 사회에서 이성적이고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질서와 절차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밥풀때기’들의 절실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닫혀 있는 사회의 모습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소설은 ‘열린 사회’를 향한 시위 과정에서 오히려 기층 민중들이 배제되고, 시위를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되는 모순을 간파한다. 이를 통해 그런 사회가 과연 ‘열린 사회’인지, 누구를 위한 ‘열린 사회’인지 묻는다. 

그럼 지금 여기의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가정에서, 교실에서, 사회에서, 언론을 통해서 민주적인 대화는 가능한가. 매우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시위가 과격하다는 이유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공공의 적’으로 간주되지는 않는가. 이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사회라서 더 이상의 구조적인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 사회일까. 세대와 성별, 지역에 대한 ‘갈라치기’ 속에서 차별과 배제, 혐오의 언어가 난무하지는 않았는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누군가에게는 더욱 닫힌 사회가 되지는 않았는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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