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석 전 편집장
신용석 전 편집장

『대학신문』의 학생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6월초부터였다. 각 단과대별로 한 명씩(당시 문리대와 사대는 남녀 각 1명) 소정의 시험을 거쳐서 선발된 학생기자는 총 14명이었고 초대 학생 편집장은 반영환(사대) 선배였다. 월요일에 한 번씩 8면을 발행하던 『대학신문』이 1962년부터는 목요일에 4면을 발행하는 주 2회 12면 체제로 되면서 편집국은 항상 분망하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취재와 기사작성 그리고 편집과 조판까지 전임기자 두분을 모시고 매주 12면을 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수강과 학점 취득보다는 『대학신문』을 만드는 일이 우선순위였던 시절이었다. 신입생 때 입사해 졸업반이 되기까지 4년 동안 『대학신문』 학생기자로 일하다가 1964년에는 학생 편집장이 돼 나름대로 지면 쇄신을 위해 『세계의 대학에서』라는 고정란을 만들고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기고를 받던 기억이 새롭다. 

1965년도에는 미국 정부 초청으로 70일간 미국각지를 여행하면서 대학들과 연방 및 지방정부 부처들 그리고 기업들을 찾아보면서 『대학신문』의 특파원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모처럼의 행운이기도 했다. 뉴욕 주의 북부지역에 위치한 코넬대에 머물면서 일간으로 나오는 「코넬 크로니클」이라는 학생신문이 20여 면으로 발행되고 있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시라큐스대에서는 일간으로 나오는 학생신문 「데일리 오렌지」와 월남전에 관해서 회견했던 기사가 다음 날 신문에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 당시 미국은 종이 신문의 전성기였고 인구 기천명의 도시에서도 일간 신문이 발행되고 있었지만 대학교에서까지 두툼한 일간 신문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거대하고 다양한 국가를 통합하며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신문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1964년에는 졸업을 앞두고 『대학신문』의 선후배 학생기자들과 ‘함춘 프레스 클럽’이라는 친목 겸 연구단체를 만들었다. 외국 대학과 교류하고 국제학생기구에 가입해 활동하기 위해서는 정식 명칭과 회원을 가진 단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당시 『대학신문』은 의대 구내에 있는 함춘원에 자리 잡고 있었고 30여명의 회원으로 창립해 초대 학생 편집장을 맡았던 반영환 선배가 회장을 맡았다. 함춘 프레스 클럽은 창립 후 세계청년회의(WAY) 등 국제기구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외연 확대를 도모하기도 했으나 차츰 1960년대 『대학신문』 학생기자들의 친목단체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그 후 임효빈(공대), 신용석(농생대)을 거쳐서 2018년도부터는 이석현(의대) 박사가 회장을 맡아 분기별로 한차례씩 만나는 친목모임으로 장수하고 있었으나 코로나 사태로 동면중이지만 회원들 간의 개별적 모임은 계속되고 있다. 1960년대 초에 4년간을 『대학신문』에서 일하고 1964년 함춘 프레스 클럽을 창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만남을 계속하고 있는 『대학신문』 사람들을 대표해 『대학신문』 70주년 기념을 축하하면서 앞으로 100주년까지도 서울대와 한국의 지성을 상징하는 종이신문으로서 건재하기를 기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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