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총연극회 제76회 정기공연 〈고도〉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기다린다. 떠나간 사랑, 보이지 않는 희망, 혹은 장밋빛 꿈처럼 그것이 도래하리라는 확신이 없을지라도 꿋꿋이.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총연극회의 제76회 정기공연 <고도>가 지난 23일(수)부터 25일까지 두레문예관에서 열렸다.

(사진 제공: 총연극회)
(사진 제공: 총연극회)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도>는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는 한 극단의 이야기다. 원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고도’라 불리는 미지의 인물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두 부랑자 ‘고고’와 ‘디디’에 관한 희곡으로, 명확한 서사가 결여된 채 이어지지 않는 대화와 우스꽝스러운 몸짓만을 보여 준다. 총연극회는 여기에 극단원 간의 갈등이라는 서사를 덧입힌다. 그러나 이 또한 각 인물이 자기의 이야기만을 하고 있어 기승전결이 확실하지 않다. <고도> 속 극단원들도 자신들이 연기하는 고고와 디디처럼 각자의 고도를 기다릴 뿐이고, 무대 위에는 미지의 대상을 기다리는 행위만이 흩어진 채 존재한다.

관객은 자연스레 고도가 누구며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에 관해 의문을 품게 된다. 극 중에서도 극을 올리기 위해 극단원들이 부단히 노력하는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럼 이제 뭘 하지?”

“기다리는 거지.”

“그야 그렇지만 기다리는 동안 뭘 하느냐고.”

“목이나 매고 말까?” 

 

고고와 디디를 연기하는 극단원들은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 목을 맬지 고민하고, 내일 고도가 오지 않으면 목을 매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음 날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이 생사를 걸면서 애타게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도> 속 극단원들이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미지’ 혹은 ‘무’(無) 그 자체다. 가령, 조명이 좋아 조명 기사로 일했던 극 중 인물 ‘세라’는 조명 빛 아래 서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배우가 되지만, 왜 그것이 좋은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관객의 시선을 누리는 순간을 사랑하는 것은 세라의 가장 근원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세라 자신도 그런 욕망을 가지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처럼 고도의 정체는 개인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고유한 것이므로 고도를 기다리는 이유는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영영 알 수 없다.

 

고도는 누구인가

그렇다면 고도는 누구일까?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걸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답했다. <고도>의 연출을 맡은 이성재 씨(자유전공학부·16)는 “연출 과정에서 나 역시 고도가 누구인지 상정하지 않았고, 지금도 고도가 누구인지는 특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즉, 고도는 배역, 배우, 관객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로 형상화되는 관념에 가깝다.

또한 고도의 의미는 개인에게조차 유일한 것으로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고도>에서 무대감독 역을 맡은 배우 장서연 씨(공예과·21)는 “무대감독 역으로서 고도란 직업적 성공을, <고도>를 준비하는 동안의 나에게는 실수 없는 공연을 올리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미나 역을 연기한 배우 구나운 씨(성악과·21)는 “배우로서 고도는 무대에 마침내 서게 되는 그 순간으로, 무대 밖 나에게는 삶의 지향점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고도>는 극중극의 형식으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고, 고고와 디디를 연기하는 배우를 끊임없이 교체함으로써 고도의 가변성을 은유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 고고와 디디는 평생 고도를 기다렸지만, 항상 똑같은 고도를 기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고도>에서 사랑만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던 세라가 몇 번의 다툼 끝에 결국 극단의 연출가 ‘이든’과의 이별을 택하고, 진정한 예술만을 꿈꿨던 이든이 세라를 계속해 그리워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요

<고도>에는 세 층위가 존재한다. 총연극회의 <고도> 외부,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하는 <고도> 내부, 그리고 가장 안쪽의 극중극 <고도를 기다리며> 내부라는 세 겹의 층위는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의 커다란 의미를 발생시킨다. <고도>의 배우들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기 직전 “목이나 매고 말자!”라고 외친다. 이 구호는 고도에 더는 목매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비관의 끝을 달리는 듯 보이지만, 이는 오히려 더는 수동적으로 고도를 기다리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긍정의 표현이다.

이성재 씨의 설명도 이와 유사하다. 그는 “허우적대는 몸과 말, 그리고 모호하고 답답한 느낌을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다”라며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두가 함께 경험할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을 뿐,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무대에 올리되, 특정 메시지를 상정하지 않는 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일 그 자체에 의미를 둔 연출이다. <고도>를 본 관객들은 저마다의 고도를 상정한다. 관객 진채은 씨(언어학과·20)는 “고도라는 존재를 연극으로 치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고, 이다빈 씨(국어국문학과·20)는 고도의 의미에 관해 “당연한 것을 당연시 여겨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없는 일상”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극을 만들거나 감상하며 고도의 정체를 고민하는 개인으로부터 고도의 의미는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간다.

 

삶은 어쩔 수 없이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각기 다른 고도를 마음에 품고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가 고도를 기다리는 장면을 끊임없이 재현하는 동시에 관객이 고도 자체에 매몰되는 것을 경계하듯, 우리도 고도를 기다리는 것에만 빠져서는 안 된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에 절망스러울 때는, 오지 않는 고도가 아니라 고도를 기다리는 일 자체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부조리극: 현대 문명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가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은 연극 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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