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현금 없는 사회로의 건강한 이행을 위해서는

“손님, 여기는 현금 결제가 불가능한 매장입니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나 집 앞 식당에서 현금으로 결제하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는가. 혹은 현금통 없는 버스를 본 적이 있는가. 신용카드와 모바일 페이 등의 비현금 결제 수단이 점점 우리 삶에 깊이 들어오면서, 현금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스름돈 계좌입금 서비스 모바일 화면 (사진 제공: 한국은행 전자금융기획팀)
▲거스름돈 계좌입금 서비스 모바일 화면 (사진 제공: 한국은행 전자금융기획팀)

현금 없는 세상?

◇현금 없는 사회란=대체로 동전 및 지폐를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 등 비현금 지급 수단을 주로 사용하는 사회를 현금 없는 사회라 지칭한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16년에 낸 보고서에 따르면,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캐나다의 경우 비현금 결제 비중이 80%가 넘는다. 해당 국가들은 고액의 현금 거래까지 금지하는 추세며, 특히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우 2030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 완료를 국가적 목표로 설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현금 없는 사회라는 거대한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2013년도 마스터카드(MasterCar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현금 결제 비중은 당해 70%를 넘어섰으며, 2018년 한국은행 조사 결과 당해 가계 지출 중 상품 및 서비스 구입에 대한 현금 결제 비중은 19.8%에 불과했다. 5년 사이에 비현금 결제 비중이 약 80%까지 오른 것이다. 2018년 영국(28%)과 스웨덴(13%)의 현금 결제 비중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코앞까지 다가온 수준이다.

간편 결제 시장의 확대는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페이코’(PAYCO) 운영과 ‘GS홈쇼핑’, ‘쿠팡’ 등의 전자결제 서비스를 대행하고 있는 NHN의 송충렬 이사는 “현금 없는 사회는 이미 국내에서 상당 부분 이뤄진 상황”이라며 “온라인 시장뿐 아니라, O2O* 시장 확대에 따라 오프라인 시장에서도 급속히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이 일어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와 ‘뱅크샐러드’ 등에서 제공하는 간편 송금 기능이나 QR결제와 같은 비현금 결제 수단의 확산이 현금 없는 사회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 송 이사의 판단이다.

현금 없는 사회의 도래가 더욱 빨라진 것에는 비현금 결제 수단 발달과 동시에 현금 사용이 감소한 영향도 있다. 한국은행의 「2019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개인이 지갑에 보유 중인 현금은 평균 53,000원으로, 2017년에 비해 27,000원 감소했다. 연령별로 보면 2017년 기준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연령층인 50대가 평균 101,000원, 가장 적은 현금을 보유한 20대가 평균 46,000원을 보유했으나, 2년 뒤에는 50대가 평균 71,000원, 20대가 25,000원을 보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윤석 선임연구위원은 모든 연령층에서 2017년에 비해 현금보유액이 유의미하게 줄었다고 부연했다. 또한 같은 조사의 ‘지급 수단별 특성 및 종합만족도 평가’에서 신용카드는 80.8점을 받아 79.5점을 받은 현금을 뛰어넘었다. 이는 지급 수단의 △편리성 △안정성 △수용성 △비용 항목의 소비자 선호도를 모두 고려한 점수로, 신용카드는 편리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부여받아 지급 수단 종합만족도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2019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의 ‘지급수단별 특성 및 종합만족도 평가’에서 발췌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2017년 지급수단 이용행태 조사결과」, 「2019년 지급수단 및 모바일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결과」의 ‘지급수단별 특성 및 종합만족도 평가’에서 발췌

◇동전·현금 없는 사회의 장점은=이처럼 현금 없는 사회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동시에 중앙은행의 정책 변화가 있어야 완전한 이행이 가능하다. 이영환 명예교수(동국대 경제학과)는 “현금 없는 사회는 무엇보다 중앙은행 주도하의 통화량 감소를 전제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명시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고 밝힌 바는 없으나, 2016년부터 추진해 온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의 취지를 통해 현금 없는 사회의 기대 효과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은 거스름돈과 같은 소액의 동전 거래액을 계좌에 입금하거나 상품권에 충전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전자금융기획팀 이승민 조사역은 동전 없는 사회 사업의 목적에 대해 “동전을 없애기 위함이라기보다 전자 금융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동전 사용 및 휴대에 따른 불편을 완화하고 동전 관리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전 유통을 축소해 국민의 편의를 증진함과 동시에 금융기관이 동전을 확보·보관·회수하는 데 들이는 비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 검토에 따르면, 찌그러지거나 부식된 동전을 폐기 후 새로 만드는 데에 매년 약 600억 원을 지출한다. 동전 없는 사회 추진을 통해 동전 환수율을 높이고 제조량을 줄임으로써 동전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다. KB 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추진도 같은 맥락에서 지폐 제조량의 감소로 이어져 효율성 측면에서 특장점을 지닌다고 판단했다.

이외에도 현금 없는 사회는 투명성, 안정성, 간편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영환 명예교수는 “부정부패나 뇌물 수수에 주로 사용되는 현금이 줄어든다면 자산 거래의 투명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의 「현금 없는 경제: 의미와 가능성」에 따르면, 현금 없는 경제로 이행할 시 세율 인상 없이도 약 20~29조 원의 세수를 추가로 확보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만큼의 세율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고 추정된다. 또한 현금 도난 위험이 감소한다는 측면에서 안정성이, 현금보다 결제가 간편하다는 점에서 간편성이 증대된다는 것이 현금 없는 사회의 장점으로 꼽힌다.

 

*O2O: Online to Offline의 줄임말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비스를 연결해 소비자의 구매 활동을 도와주는 새로운 서비스 플랫폼. PC, 스마트폰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주문·제공하는 서비스를 통칭하는 말.

 

카페, 버스도 현금보다는 카드

◇현금 없는 매장이 대세=현금 없는 매장의 우세는 비현금 지급 수단의 간편성을 더욱 명료히 보여준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는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와 일반 식당 중에서도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되는 곳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 24일(목) 기준 ‘스타벅스’는 전국 1,665개의 매장 중 1,088개의 매장을 현금없는 매장으로 운영 중이며, 신용카드나 스타벅스 앱 카드를 활용한 간편 결제를 주된 지급 결제 수단으로 취급한다. 그중에서도 서울에 위치한 스타벅스 매장 중 현금 없는 매장의 비율은 76%에 이른다. 애초에 현금으로 계산하고자 하는 고객이 많지 않아, 현금 없는 매장 운영에 큰 고충은 없다는 것이 스타벅스의 입장이다.

또한 ‘투썸플레이스’는 전국 1,097개 매장 중 122개, ‘할리스’는 570여 개 중 80여 개를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한다. 할리스커피 관계자는 “신용카드나 간편 결제를 통한 결제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반영해 현금 없는 매장을 운영하게 됐다”라며 “현금 없는 매장은 고객의 주문 및 결제 편의성을 높이고 매장 직원이 고객 서비스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은 현금 없는 매장이라고 해서 현금을 지닌 고객을 거부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비현금 지급 수단을 우선시하되 현금도 공존할 수 있도록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포스기도 현금통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사용 중”이라 밝혔다. 

성수동에 자리한 개인 카페 ‘무브모브’도 2020년 오픈한 이래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 중이다. 무브모브에서는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 카카오페이, 제로페이로만 결제가 가능하다. 무브모브 매장주는 “운영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 중”이라며 “현금이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시재*를 맞추는 등 자잘한 일들이 많아지는 데다, 성수동 상권 자체가 현금에 의존하지 않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금 결제를 요청하는 손님은 일주일에 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라며 “그때도 간편 결제와 같이 다른 지급 수단으로 대체 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금 없는 버스=버스의 현금통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서울시에는 18개 노선의 버스 418대를 현금 없는 버스로 운영 중이다. 서울시청 버스정책과는 “현금으로 승차료를 지불하는 비율이 낮고,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금 승차제 시범폐지를 결정했다”라며 “주로 현금을 사용하는 고령층을 대상으로, 버스에 부착된 QR코드로 모바일 교통카드를 무료로 발급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라고 밝혔다. 서울시청은 이와 더불어 스마트폰 사용이 어려운 승객을 고려해 향후에 요금을 납부할 수 있는 안내서 또한 제공하고 있다. 세종시도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현금 지불 비용이 반토막 나자, 올해부터 BRT 노선버스 39대를 대상으로 버스에 있는 현금통을 모두 없앴다. 세종도시교통공사는 “간혹 현금만 소지한 승객이 있을 경우 차량 내에 부착된 ARS 번호로 전화를 걸어 계좌 이체하는 방식으로 안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인천시도 올해 1월 10일부터 6월 30일까지 시내버스 35대를 대상으로 현금 승차제를 시범 폐지한다.

▲서울시 현금 없는 버스 (사진 제공: 서울시 버스정책과)
▲서울시 현금 없는 버스 (사진 제공: 서울시 버스정책과)

◇코로나19와 현금의 퇴장=코로나19가 만들어 낸 비현금 지급 수단 선호의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이윤석 연구위원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면 서비스 자체가 줄어들었고, 불가피하게 대면으로 거래를 할 때도 전염에 대한 우려로 현금 사용이 크게 줄었다고 추정된다”라며 “현금은 사용되지 않고 ‘퇴장’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현금의 퇴장이란 시중에 유통되던 현금이 더 이상 유통되지 않고 지갑 또는 금고 같은 곳에 머무는 현상을 지칭하는데, 오만 원권을 중심으로 현금 환수율이 급격하게 감소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오만 원권 환수율은 역대 최저치인 16.1%에 불과했으며, 이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환수율 60.1%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수치다.

소액 결제 중 비대면 결제 금액 비중 (출처: 한국은행 「2021년 상반기 중 국내 지급결제동향」)
소액 결제 중 비대면 결제 금액 비중 (출처: 한국은행 「2021년 상반기 중 국내 지급결제동향」)
주: 1 개인 및 법인 신용·체크카드(국내 가맹점) 일평균 금액 잠정치 기준2 ( )안은 전년동기대비 증감률3 ARS, 생체인식 등 포함(출처: 한국은행 「2021년 상반기 중 국내 지급결제동향」)
주: 1 개인 및 법인 신용·체크카드(국내 가맹점) 일평균 금액 잠정치 기준2 ( )안은 전년동기대비 증감률3 ARS, 생체인식 등 포함(출처: 한국은행 「2021년 상반기 중 국내 지급결제동향」)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상반기 중 국내 지급결제동향」에 따르면, 소액 결제 중 비대면 결제 금액 비중은 2019년 이후로 꾸준히 증가해 2021년 상반기엔 41.2%를 기록했고 모바일기기를 이용한 결제 규모는 21.4%로 대폭 증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모바일 결제와 더불어 대면 결제의 경우에도 결제 단말기에 모바일 기기를 접촉하는 결제 방식이 확산된 결과”라고 밝혔다. 송충렬 이사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비대면 주문 및 결제에 대한 소비자·가맹점의 요구가 커지면서 당초 예상보다 간편 결제 사업 활성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라며 “오프라인 매장 결제 방식도 키오스크, QR코드·바코드, 모바일 앱 등의 방식으로 진화 중”이라고 말했다.

 

*시재: 현재 가지고 있는 현금의 액수. 들어오고 나간 돈의 액수와 현재 보유 중인 현금을 비교해 확인하는 작업을 ‘시재를 맞춘다’라고 한다.

 

소외계층 발생 등의 우려, 우리나라의 대응 방법은

◇현금 없는 사회에 관한 우려=이렇듯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불가피한 동시에 긍정적으로 활용 가능한 변화다. 그러나 이행 과정에서의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한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의 경우 △ATM 등 현금 공급 창구 축소에 따른 국민의 현금접근성 약화 △취약계층의 금융 소외 및 소비 활동 제약 △최종 결제수단으로서 현금 사용 선택권을 보장하는 공적 화폐유통시스템 약화 등과 같은 문제점이 공통적으로 발생했다. 고령층, 장애인, 저소득층, 도서 벽지 지역 거주자 등 금융취약계층이 현금 접근성 약화로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로 제기됐다. 이에 더해 지난해 10월 발생한 KT 네트워크 장애와 같은 대규모 비상사태 발생 시 현금을 대체할 지급 수단이 없다는 점과, 소수 민간지급업체의 독과점 등은 현금 없는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런 의미에서 근 10년간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급속히 이룬 스웨덴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 중앙은행 릭스뱅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미 2014년 말 스웨덴 내 상업은행 1,629개 지점 중 733개 지점만이 현금을 취급하고 있었다. 스웨덴 국내 소매업체를 중심으로 현금 결제 거부 사례도 증가하면서 소외 계층을 중심으로 현금 사용 감소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높게 형성됐다.

결국 스웨덴은 2019년 말부터 현금 없는 사회로의 급속한 전환은 바람직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현금 접근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스웨덴, 영국, 뉴질랜드 세 국가 모두 ATM 수를 급격히 줄이는 등 취약 계층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제도들로 소비자 불편이 증대됐고, 이에 피해자 구제 방안이 사후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의 대응은 어떻게?=한국은행은 해당 사례들을 반면교사 삼아, 국내 동향을 면밀히 살피면서도 국민의 현금 접근성 및 현금 사용 선택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승민 조사역은 “효율적인 지급결제시스템을 구축함과 동시에 소외되는 분들이 최소화되도록 ATM 금융맵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금융 포용’ 관점에서 현금 없는 사회를 바라보고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현금 공급 창구가 줄어들고 현금 자체를 받지 않는 매장이 늘어나게 될 경우, 디지털 소외 계층이나 카드 발급이 어려운 청소년의 소비 활동이 크게 제약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현금 없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맞으나 중앙은행 차원에서 이를 촉진할 생각은 없다는 한국은행의 뜻을 전했다. 한국은행의 금융 포용은 디지털 과도기에 취약 계층이 소외되지 않고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에 차차 적응해 나가도록 하는 성격이 크다. 

현금 없는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한국조폐공사는 어떨까. 실제로 한국조폐공사 전체 매출에서 화폐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낮아졌고, 화폐와 더불어 여권과 같은 ID 사업 등 공사의 본원적 사업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한국조폐공사는 디지털 전환이 급선무라고 판단해, 독자적인 보안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신분증 △전자서명 공통기반 사업 △모바일 상품권 △사물인터넷(IoT) 보안 모듈 사업 등 ICT 사업 부문을 집중 육성 중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모바일 지역사랑상품권 서비스, 모바일 운전면허증 구축사업 등에서 재작년 대비 높은 매출액을 달성해 ICT 부문 매출이 가시화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렇듯 한국은행과 한국조폐공사에서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 중이다.

한편 취약 계층도 점진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입장도 있다. 이영환 명예교수는 “현금이 없어져 발생하는 불편을 소외 계층이 감수하지 않도록 소액권 중심으로 현금을 유지하면서도 서서히 줄여 나갈 필요가 있다”라며 “꼭 첨단 기술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편의점과 마트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이나 체크카드를 충전하는 방식으로 소외 계층을 지원한다면 현금 없이도 편히 생활할 수 있음을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핀테크 혁명이 금융 포용 효과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핀테크 업계에 새로이 등장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과거에 은행과 메이저 금융기관이 높은 수수료를 받으며 수행했던 중개인 기능을 거의 없애고 중개 비용을 대폭 낮췄다”라며 “누구나 금융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핀테크 기업과 이들이 추진하는 간편 결제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오히려 현금 없는 사회로의 바람직한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금 없는 사회, 편리함과 안전 함께 잡아야

◇간편 결제 시장의 과제=장기적으로 봤을 때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국가기관, 기업, 소비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소외 계층을 모두 포괄하며 금융 편의를 도모해 현금 없는 사회로의 건강한 이행을 꾀해야 하나, 기술 발전 없이 이는 불가능하다. 예컨대, 비현금 지급 수단의 다양성을 확보해 현금의 대안을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송충렬 이사는 비현금 지급 수단인 모바일 지급 결제를 크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대표적인 온라인 결제 서비스로는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페이팔’(PayPal)이 있으며, 이런 서비스는 상품 구매 사이트와 연결돼 있어 계좌나 카드 연동 이후 자동으로 간편 결제가 가능하다.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는 실제 매장에서 상품을 구매할 때 모바일 기기를 통해 결제하는 서비스로 ‘삼성페이’와 ‘LG페이’ 등이 있다. 이런 모바일 결제 시스템은 편리성 덕에 간편 결제로 불린다. 간편 결제 서비스도 기본적으로는 신용카드 기반이나, 굳이 현물 신용카드를 직접 들고 다니지 않더라도 모바일 기기로 간편하게 결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는 것이 간편 결제의 존재 의의다.

그러나 간편 결제 시장의 확대와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는 바로 개인정보 보안 문제와 이를 향한 소비자들의 불신이다. 가령, 최근 발생한 쿠팡·토스 부정결제 사고 등이 소비자의 불안감 고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송충렬 이사는 “보안 코드 하나만 입력하면 계좌 등록이 완료되는 페이팔 등의 방식과 달리 한국의 간편 결제는 탄생부터 보안을 철저히 대비한 상황”이라며 “최초 카드 등록 시 본인 인증, 원타임 카드 번호 생성(OTC 방식)으로 충분히 보안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토스 부정결제 사고의 경우 일부 가맹점이 다섯 자리 결제번호와 생년월일, 이름만 있으면 승인되는 ‘웹결제’ 방식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해 발생한 일이었다. 최초 본인 인증 과정의 보안 절차를 추가하면 해결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다만 송 이사는 “편리함과 안전함 사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맞다”라며 “개인정보 유출 시 간편 결제 사업자가 책임을 지는 구조로 소비자 보호에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송 이사는 “현재도 페이코와 카카오페이와 같은 간편 결제 서비스들은 그렇게 운영 중”이라며 간편 결제 보안 시스템을 향한 우려를 일축했다.

그러나 간편 결제 사업자에게 보안 문제의 입증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법 조항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 해당 내용이 포함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되고 있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 허용 △지급지시전달업(마이페이먼트) 도입 △전자지급거래 청산 허용을 주요 골자로 하며,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 등은 비대면 거래 이용자 보호 내용을 개정안에 덧붙였다. 금융 회사와 전자금융업자는 비대면 거래 전반에서 손해배상책임 의무를 지며, 오류 없이 비대면 거래를 처리한 사실에 관해 금융 회사 등이 입증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규제 완화를 통한 핀테크 업계 활성화와 안전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으로, 핀테크 업계는 해당 법안의 개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CBDC는 현금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중앙은행에서 도입을 검토 중인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도 현금 없는 사회의 안전한 정착을 위한 하나의 방안이다. 이윤석 연구위원은 “CBDC는 민간의 가상 자산 발행이 활발해짐에 따라 정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의 지위가 위협받자 정부가 내놓은 일종의 자기방어 수단에 불과하다”라면서도 CBDC가 발행되면 이제까지 발행해 오던 현금은 종적을 감출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반면 이영환 명예교수는 “CBDC가 있다면 현금 없는 사회는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고, 거래 비용을 줄이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라며 CBDC를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CBDC는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인 만큼, 비트코인 및 여타 암호화폐보다 안정성 측면에서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반면 CBDC 역시 개인정보 보안 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이 실행한 ‘CBDC 모의실험 1단계’ 결과를 보면 국가가 개인의 거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빅브라더’ 위험성은 다소간 낮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거래의 발생 여부만 알 뿐, CBDC 송금인과 수취인의 실명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올해 6월 종료될 예정인 2단계 모의실험에서는 이용자의 주요 민간 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 활용 방안을 점검 중이다.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은 공익적 목적을 추구하므로 개인정보를 이윤 추구에 활용할 동기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는 피할 수 없는 변화이자 금융 혁신의 기회이기도 하다. IMF 외환위기 이후 높아진 국내 금융에 대한 불신과 우려를 뛰어넘으려면, 현금 없는 사회로의 성급하지 않은 이행과 함께 금융 포용 제도 마련, 안정성과 효율성을 갖춘 비현금 지급 수단의 보급이 동반돼야 한다. 현재 불고 있는 핀테크 바람과한국은행의 CBDC 추진에 희망을 걸어 보며, 현금 없는 사회가 가져다 줄 금융 혁신을 기대해 본다.

 

인포그래픽: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레이아웃: 채은화 기자 chae129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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