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서울대 동번호 체계를 파헤치다

서울대는 큰 규모의 캠퍼스를 자랑하는 만큼 200개가 넘는 건물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큰 캠퍼스에서 제대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동번호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서울대에서 동번호만으로 건물을 찾다가는 큰 캠퍼스를 헤매게 될 가능성이 크다. 동번호 체계가 무질서해 이를 바탕으로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신문』이 서울대 동번호 체계의 문제를 짚고 그 해결책을 찾아 봤다.

 

기능을 상실한 동번호

동번호의 가장 주요한 역할은 위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관악캠퍼스가 조성될 당시 동번호는 건물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채택됐다. 박인권 교수(환경계획학과)는 “서울대는 많은 건물로 이뤄져 있는데 지번은 하나뿐”이라며 “주소만 가지고 건물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동번호를 통해 건물을 찾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서현 교수(건축학과)는 “동번호는 단과대에 따라 차별적으로 부여돼 각 단과대의 위치를 표기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재의 동번호는 본래 취지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인접한 동번호를 가진 건물들은 실제로도 비슷한 위치상에 존재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은 건물이 많은 상황이다. 예를 들어 약학관2와 약학관4는 서로 인접한 건물임에도 동번호는 각각 29동, 141동이다. 오히려 29동과 인접한 동번호를 가진 28동은 도보로 약 5분 거리만큼 떨어져 있다. 153동인 우정원글로벌사회센터 옆에는 71-1동인 체육문화교육연구동이, 그 옆에는 137동인 언어교육원이 위치해 있는 것도 또 다른 사례다. 이처럼 동번호 체계가 어긋나 있는 현상을 캠퍼스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현재의 동번호 체계는 숫자 인접성이 위치 인접성을 담보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혼선을 준다”라고 지적했다. 학내 구성원들 역시 동번호로 길을 찾는 데 어려움을 호소했다. 황민지 씨(중어중문학과·20)는 “동번호의 규칙을 잘 몰라 길을 찾을 때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불편함을 토로했고, 허민 씨(인문계열·21)는 “동번호가 갑자기 건너뛰는 경우도 많아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동번호 체계, 왜 무너졌나

현재 사용되는 동번호 체계의 기반은 관악캠퍼스 조성 시기에 마련됐다. 당시에는 단과대나 시설·용도별로 건물을 묶어서 번호를 부여해, 인문대부터 사회대는 1~10번대, 자연대는 20번대, 공대는 30번대, 예술대(현 음미대)는 50번대의 번호를 사용하게 됐다. 본부와 중앙도서관 같은 지원 시설은 60번대, 그 외 건물은 70번대를 부여받았다. 이후 추가된 캠퍼스 시설에는 새로운 번호군이 부여됐다. 호암교수회관과 교수아파트는 120번대, 농생대는 200번대, 신공학관 일대는 300번대를 부여받았고, 연구공원 일대의 건물들은 900번대를 사용하게 됐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동번호가 나름의 체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구성원들은 동번호를 통해 위치 정보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 캠퍼스가 급속도로 팽창하며 동번호 체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1976년에는 총 76개 동이었던 건물이 2021년 기준 226개 동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이렇듯 신축 건물이 과포화되다 보니, 건물 수가 기존에 배정된 번호군을 초과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대 캠퍼스 마스터플랜 2012-2016」에서도 “일부 신축 건물은 기존의 단과대나 시설에서 떨어져 건축되며 동번호는 연속돼도 위치상으로 인접하지 않은 경우가 다수 생겼다”라는 지적이 나왔다.

본부도 무질서해진 동번호 체계를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을 내놨다. 건물 배치의 복잡성을 줄이기 위해 「서울대 캠퍼스부문 장기계획 2007-2011」에서 캠퍼스를 A영역부터 K영역까지 11개로 나누는 새로운 영역 구분을 제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길안내 표지판에서 볼 수 있듯, 건물이 속한 영역의 알파벳과 건물의 번호가 병기돼 있다. 그러나 해당 영역 구분의 의미를 아는 구성원이 많지 않고, 영역이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길 찾기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동번호 체계 개선에 얽힌 문제들

동번호 체계는 일찌감치 캠퍼스 마스터플랜에서 지적돼 왔으나, 여러 얽힌 문제들로 인해 현상을 유지하고 있다. 기획과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들어 현 동번호 체계가 유지되는 연유를 밝혔다. 첫째로, 통일된 기준의 설정이 힘들다는 점이다. 서울대는 단과대와 구성원의 수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의견을 모으기 힘들다. 새롭게 동번호를 부여한다고 해도 기존의 번호군을 유지하고 싶은 단과대가 있거나, 단과대별로 선호하는 동번호가 달라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 둘째,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동번호 체계를 한번 바꾸게 되면 학내 모든 사이니지*를 전부 수정해야 하고, 홈페이지상의 주소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동번호 체계의 수정은 서울대 단독으로 시행하기 힘들다. 서울대의 모든 건물은 건축물 대장과 등기를 통해 국가에서 관리되고 있다. 동번호를 바꾸려면 건축물 대장과 관련된 사안은 구청과 협의하고, 등기는 등기국에 직접 요청해야 하기 때문에 행정적으로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학내 구성원들이 점차 캠퍼스 생활에 익숙해지며 새로운 동번호 체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요인 중 하나다. 박인권 교수는 “익숙함으로 인해 더 효율적인 체계를 채택하지 않는 경로의존성 때문에 여태껏 동번호 체계가 개선되지 않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최재필 교수(건축학과)는 “스마트폰의 내비게이션 기능으로 인해 동번호를 바탕으로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줄었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동번호가 위치 정보 제공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문성우 씨(건축학과·22)는 “건물의 대략적인 위치를 몰라 항상 캠퍼스 맵을 켜고 다녀야 한다”라고 불편함을 전했다. 구성원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들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현 교수는 “여전히 수많은 내외 방문객들이 실제 건물 위치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구성원과 외부 방문객의 편의성을 위해 동번호 체계 문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무질서한 동번호 체계, 해결책은?

동번호 체계의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동번호를 다시 새롭게 부여하는 것이다. 마스터플랜 12-16에서는 건물 번호와 캠퍼스 영역 구분을 합친 새로운 체계를 제안했다. 이는 현재 서울대의 영역명(A~K)에다 각 영역의 입구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건물 번호를 1번부터 재부여하는 방식이다. 가령, A영역의 입구에 있는 건물인 미술관은 A01번이 되는 식이다. 박인권 교수도 이와 비슷하게 A영역은 100번대, B영역은 200번대와 같이 맨 앞자리 수가 구역을 나타내고, 나머지 두 수가 개별 건물의 위치를 나타내는 식으로 표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영역 구분을 모르는 사람도 따라가기 쉽고, 번호만 보고 위치를 짐작할 수 있도록 정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 등 다수 대학에서 이와 유사한 방식의 동번호 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한양대 건물 번호 재정비 사업에 참여한 한양대 관리처 시설팀 김승덕 직원은 “구상 단계에서 방문자들의 편의를 위해 구역을 나누고 사람이 다니는 길 위주로 번호를 부여하는 방법을 채택했다”라고 설명했다.

▲입구부터 동번호를 재부여하는 방식
▲입구부터 동번호를 재부여하는 방식

동번호를 대신해 위치 정보 제공 기능을 수행할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다. 동번호 체계가 이미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동번호 자체를 재편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서현 교수는 “동번호는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사용됐기에 개별 건물의 동번호를 바꿀 필요는 없다”라고 밝혔고, 최재필 교수도 “현재 동번호를 토대로 캠퍼스 관리가 이뤄지고 있어 동번호가 바뀌면 실무진이 불편을 겪는다”라고 말했다. 최근 발표된 「서울대 캠퍼스 마스터플랜 2022-2026」에서는 캠퍼스 전체에 도로명 주소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방식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도로명 주소와 같이 현재 ‘관악로1’로 통일된 캠퍼스 내부도로를 간선과 지선으로 구분한 뒤, 정문에서 10m마다 주소가 1씩 올라가게 설정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정문을 기준으로 건물의 대략적인 위치를 예측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이 방식을 도입하면 신규 건물이 들어서도 위치를 유연하게 지정할 수 있다”라며 “한 건물에 입구가 여러 개 있을 경우 각 입구별로 위치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점을 꼽았다.

▲캠퍼스 전체에 도로명 주소를 도입하는 방식
▲캠퍼스 전체에 도로명 주소를 도입하는 방식

영역과 건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방법도 있다. 마스터플랜 22-26에서는 구성원 간 공감대 형성을 위해 버들골, 감골, 윗공대, 아랫공대와 같이 익숙한 이름을 바탕으로 영역을 새롭게 구분하는 방식이 제안됐다. 최 교수는 “일상생활 속에서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이름이 필요하다”라며 “친숙한 이름을 붙이면 구성원들 간 위치 소통이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도서관 관정관처럼 건물을 호명할 때 동번호보다 건물명이 더 명확하다는 것이다. 조항만 교수(건축학과)도 “동번호는 관리 체계를 위한 것이고 구성원들을 위해서는 건물 이름이 따로 있어야 한다”라며 “알프레드 러너 홀(Alfred Lerner Hall)처럼 건물을 대표하는 명칭에 건물의 사용 용도에 따른 한시적인 이름을 덧붙이는 방법이 있다”라고 언급했다.

▲입구부터 동번호를 재부여하는 방식
▲입구부터 동번호를 재부여하는 방식

한편 동번호 체계의 변화가 진행되는 과도기에는 구성원들의 혼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박인권 교수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 번호판을 잠시 유지하고 새 번호판을 임시로 달아 놓는 방법도 있다”라고 조언을 남겼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의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과연 이번 마스터플랜을 끝으로 동번호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을까. 최재필 교수는 “구성원들의 요구와 집행부의 의지만 있다면 동번호 체계를 바꿔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직언했다. 조항만 교수 역시 “여러 사람이 오랜 기간 연구해서 만든 마스터플랜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법정 계획과 연동시키면 좋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학내 구성원들과 본부가 더 나은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사이니지(Signage): 표지판과 같이 특정 정보의 전달을 위해 만든 시각적 구조물.

 

삽화: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인포그래픽: 신윤서 기자 oo00ol@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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