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정책의 변천과 과제

문화재청은 지난달 24일 오래도록 전승되며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가치를 대표해 온 ‘한복 입기’를 신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가치가 큰 무형의 문화적 소산을 문화재로 지정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 보전·계승하는 국가무형문화재 제도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대학신문』이 전통문화의 보존을 위한 국가적 노력과 국민적 인식이 변화해 온 과정, 그리고 향후 전통문화 정책의 과제를 짚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통문화를 대해 온 방식

과거에 발생해 현재까지 축적·전승된 고유한 문화를 의미하는 전통문화는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과 생활 양식을 담고 있다. 헌법 제9조에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된 바와 같이 그간 정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여러 정책을 시행해 왔다. 1952년 최초의 문화유산 법령인 ‘문화 보호법’이 제정되며 한국적인 것을 발굴해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가 됐고, 뒤이어 1962년 문화재의 관리·보호·활용을 도모한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됐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전문위원을 겸임 중인 김희선 교수(국민대 교양대학)는 “이 시기 전통문화는 종종 근대화에 반하는 구습(舊習)으로 인식되면서도 민중의 생활 속에 살아있는 양가성을 띠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며 기존에 천시되거나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던 민중 예술 분야가 법률 체계 안으로 들어왔다. 문화예술진흥법은 문화예술의 종합적인 발전에 조력해 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강정원 교수(인류학과)는 “문화재보호법은 민중들의 삶을 보여주는 무형문화재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 없이 일부 문화재만을 소극적으로 지원했다”라며 “당시 무형의 유교적·유학적 정신문화는 활발히 연구됐지만, 1970년대도 마찬가지로 민속문화는 소멸을 막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에 그쳤다”라고 말했다. 

이후 전통문화를 부흥하려는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 대학가 농악 풍물패를 중심으로 등장하며 문화 정책의 종류와 범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고 1990년대 들어 국내 문화재가 잇따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이런 흐름에 일조했다. 다만 강정원 교수는 “이 과정에서 무형문화재와 관련한 용어가 통일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졌고, 정부의 일방적인 문화재 지정이 대중적 인식과 문화 정책의 괴리를 심화시키기도 했다”라고 지적했다.

 

무형문화재 제도, 그 의의와 한계는

2000년대 이후 대중화와 보존이라는 두 방향성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늘었음에도, 현대화된 우리의 삶 속에서 전통문화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전통문화를 소멸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정부는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국가의 △지정보호 △전승지원 △전수교육관 건립지원 △기타 제도적 지원 등의 내용을 담아 기존 ‘무형문화재 제도’를 보완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규원 선임연구위원은 “무형문화재의 지정 범위가 택견, 판소리 등 공동체적 요소를 갖춘 문화로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무형문화재 제도가 갖는 한계점도 존재한다. 김희선 교수는 “소멸 위험에 처한 전통문화의 보호라는 무형문화재 제도의 목적은 시행 과정에서 달성됐다”라면서도 “예술성이 있는 문화재에만 주목했다는 한계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판소리와 토속 민요를 예로 들며, 토속성과 일상적인 성질을 갖추고 소멸의 위험이 큰 토속 민요가 예술성을 중시하는 판소리보다 되려 제도의 취지에 더욱 부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보존과 전승을 목표로 하는 무형문화재 제도에 일부 변형이 불가피한 예술 영역이 들어가며, ‘원형’ 개념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는 문화재가 지정됐을 때의 형태를 뜻하는 ‘전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일부 해결됐고, 문화재 지정 이후 발생한 변화를 제도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편 무형문화재의 지정 범위가 개별 사례들마다 달라 발생하는 혼란도 있다. 강정원 교수는 “무형문화재의 지정 범위를 명확히 하고, 민속문화재 혹은 유형문화재 등과 경계가 중첩되지 않도록 문화재 유형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라며 법 제도에 학문적 연구 성과를 반영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속 가능한 전통문화를 위해

한복 입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은 전통문화에 대한 관점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김희선 교수는 “무형문화재를 유형문화재처럼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물질 혹은 물체로 바라본 과거와 달리, 의복이자 물질(material)인 ‘한복’이 아니라 생활 양식이자 문화(culture)인 한복 ‘입기’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라고 평했다. 또한 무형문화 기술을 보유한 특정 인물 또는 단체를 지정하지 않은 ‘아리랑’과 ‘김치 담그기’처럼, 한복 입기가 ‘2부식 구조(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 옷고름, 착용 순서 등을 갖추고 있는 한복을 예절·형식에 맞춰 입고 향유하는 문화’로 규정된 점도 돋보인다. 강정원 교수는 “공동체성이 강한 생활 방식을 지정한 사례”라면서도 “지정 단계에서 연구를 통해 관련 문화(과거 의복 문화)에 대한 맥락을 충분히 살핀 뒤 홍보가 이뤄져야 문화재 지정이 실제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행동의 지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무형문화재 제도를 포함해, 앞으로 전통문화정책이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세계화와 현대화의 흐름 속에서 전통문화를 국가 경쟁력을 위한 수단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김희선 교수는 “국가 주도 문화정책들이 자칫 국가 경쟁력만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라며 “우리가 문화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과, 삶 속에서 문화가 실현되는 것이 실질적으로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김규원 연구원은 △보존 △대중화 △홍보·교육의 세 가지 정책적 목표가 필요하다며 “전통문화 대중화 과정에서 국가 단위의 정책 집행보다는, 자생적으로 문화를 만들고 계승하는 직업인들의 자리가 마련됐을 때 경쟁력 있으면서도 지속 가능한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민속·토속적 요소에 주목해 전통문화의 가치를 온전히 이해해 나갈 필요도 있다. 강정원 교수는 “사람들이 전통문화의 일상성을 인식하고, 생활 양식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가능케 하는 문화정책이 추구돼야 한다”라며 “향토 문화재를 지정했을 때 사람들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전통문화의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결국 우리 문화의 특징인 공동체성과 민속적인 요소들에 대한 이해가 수반됐을 때 전통문화의 적극적인 향유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정책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함께 발전하고 확대돼야 한다. 공동체성을 갖춘 전통문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미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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