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CBDC의 상용화를 살피다

비트코인이 등장한 이래, 이는 누군가의 투자의 대상 또는 투기의 대상이었다. 금융의 디지털 전환을 인식하고 민간 화폐의 막대한 영향력에 위협을 느낀 정부와 기관을 중심으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인 CBDC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됐다. 세계, 그리고 한국은 CBDC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새로운 결제 수단: CBDC

◇CBDC, 암호화폐와 무엇이 다른가?=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디지털화폐는 크게 암호화폐와 CBDC로 구분된다. 암호화폐는 우리가 흔히 들어 본 비트코인과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존의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시킨 스테이블 코인이 대표적이다. 

민간에서 발행되는 암호화폐와 다르게 CBDC는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법정화폐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현금으로 대표되는 명목화폐와 교환가치가 동일하다. 더불어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별도의 관리자가 없고 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특징 때문에 자금세탁이 쉽지만, CBDC는 국가 기관의 엄격한 감독을 받는다. 한국금융연구원 이명활 선임연구위원은 “암호화폐는 가격 변동성이 높고 공신력이 없다는 특성 때문에 범용성을 지닌 화폐로 기능하는 데 한계가 있다”라며 “스테이블 코인 역시 가격 변동성을 축소하기는 했으나 발행 주체에 대한 신뢰성이 높지 않다는 한계를 가진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암호화폐는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네이버페이’ ‘카카오페이’ ‘티머니’ 등의 전자화폐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전자화폐는 화폐와 유사한 기능을 하고 환급이 가능하지만, 특정 플랫폼과 가맹점 내로 사용 범위가 한정돼 있다. 반면 CBDC는 플랫폼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통용될 수 있다.

◇CBDC, 왜 등장했을까?=이처럼 이미 다양한 지급 결제 수단이 존재하는데도 CBDC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연구위원은 “CBDC가 암호화폐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암호화폐가 실제 화폐로서 기능할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암호화폐와 CBDC 도입은 별개의 문제”라고 언급했다. 그는 “주요국이 소매용 CBDC* 발행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현금 없는 경제’에 대한 대응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CBDC는 정부가 자산 이동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 통화정책의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 정준혁 교수(법학과)는 “CBDC는 암호화폐와 달리 우리가 사용하는 현금을 디지털 형태로 구현한 법정화폐이므로, 정부 주도하에 효율적인 통화정책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CBDC 도입에 열 올리는 세계

◇도입 이유는 제각각=디지털 결제 수단 이용률이 높은 선진국과 한국은 현금 없는 사회로의 이행에 대비하고, 효율적인 통화정책 집행을 위해 CBDC 도입을 고려 중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디지털 결제 수단 이용률이 낮은 개발도상국은 금융 포용*의 차원에서 CBDC의 도입에 적극적이다. 카리브 제도에 있는 바하마는 국토가 30여 개에 달하는 도서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금융 인프라 구축이 미흡해 2020년에 CBDC를 도입해 사용 중이다. 이 외에도 나이지리아, 동카리브해 7국 연합 등이 CBDC를 정식으로 통용하고 있다.

금융 체계가 완벽히 정립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은 신용 불량자 등 은행 계좌 개설이 어려운 이들이 많아 현금의 사용이 줄어들수록 안정적인 결제 수단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자본시장연구원 장보성 연구위원은 “기업은 대금 수금이 어려운 지역에 서비스 제공을 꺼리게 되는데, 해당 지역의 시장이 없어지면 소비자의 후생이 떨어지고 생산도 축소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CBDC를 통해 금융 포용을 확대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계좌가 없는 국민에게 디지털화된 결제 수단을 제공해 경제활동의 제약을 줄이는 데, 이차적으로 국내의 금융 격차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 이명활 연구위원은 “현금 수요가 급격히 축소돼 실물 화폐가 사라질 위험에 처한 국가의 경우에는 중앙은행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결제 수단으로써 CBDC가 이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CBDC 상용화는 모든 국민이 스마트폰이나 PC 등의 전자 기기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실현 가능하므로, 전자 기기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CBDC 도입은 사회적 약자를 오히려 소외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1992년 핀란드 중앙은행은 최초의 CBDC라고 할 수 있는 ‘아반트’(Avant) 카드를 발급했으나, 카드를 인식하는 단말기의 부재 등 모든 거래에서 무제한 통용돼야 한다는 법정화폐의 기본 조건을 충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핀란드 법원에서 위법 판결을 받았다. 

◇CBDC와 화폐 전쟁=많은 국가 중에서도 현재 CBDC 도입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에 일부 도시에서 CBDC의 일종인 디지털 위안화 시범 사업을 시작했다. 더불어 올해 2월에 개최됐던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참가자에게 디지털 위안화 서비스를 개방했으며, 오는 9월 개최 예정인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적극적으로 선전할 계획이다. 

CBDC 도입이 과연 화폐 전쟁으로 번질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결제시스템(SWIFT)에서 중국이 배제될 가능성을 우려해 디지털 위안화의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화폐혁명』의 저자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는 “2012년 미국이 이란을 SWIFT 시스템에서 배제해 이란의 수출길이 막힌 것을 보며, 러시아와 중국은 SWIFT를 대체할 탈달러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화폐 전쟁은 단지 미국·중국·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CBDC 개발에 힘쓰고 있는 중동 국가와도 관계된 문제며, CBDC 발행은 세계가 분권화·다양화의 흐름으로 나아가는 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국의 CBDC 상용화 추진을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견해도 있다. 장 연구위원은 “중국의 CBDC 상용화 추진은 자국 내 자금 정보의 효율적인 관리와 자본 통제 의도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 지급결제서비스의 급성장으로 자금 흐름 추적이 어려워진 문제에 대응하는 차원으로 보인다”라며 CBDC의 도입을 패권 경쟁으로 보는 시각은 다소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이 연구위원 역시 “현재 주요국이 논의 중인 소매용 CBDC는 중앙은행이 최종적으로 ‘거래완결 작업검증’을 책임지기에 암호화폐와 달리 그 사용이 국내로 제한돼 해외 사용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CBDC 도입, 한국은 아직 멀었나?

한국은행은 지난해부터 CBDC의 기술적 모의실험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은행은 모의실험 1단계에서 CBDC의 제조·발행·유통 기능의 정상 작동 여부를 점검했으며, 오프라인 상황에서의 작동과 개인정보 보호 강화 기술을 연구하는 모의실험 2단계에 돌입했다. 이렇게 모의실험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CBDC 상용화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편 결제 시스템이 체계적인 한국=한국은 금융 포용도가 높고 간편결제 시스템이 잘 활용되고 있으므로 CBDC의 도입으로 인한 이익이 비교적 적어 도입 필요성이 낮다는 분석이 있다. 정준혁 교수는 “한국은 은행이나 신용카드 발급 문턱이 상대적으로 낮아 금융 포용이 덜 문제가 되고, 이미 신용카드, 간편결제 사용률이 높아 CBDC 도입으로 인한 이익이 다른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라고 밝혔다.

◇국가의 개인 정보 침해=국가가 CBDC를 통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상존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침해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활 연구위원은 “지금도 전자 결제 수단을 이용한 거래는 모두 기록이 남고 정부가 이를 조회할 수 있기에, CBDC의 도입이 정부의 과도한 자금 흐름 추적으로 이어지리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CBDC가 도입된다면, 향후 ‘제한된 익명성’ 보장을 통해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 외에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중앙은행에는 한정된 정보 접근만을 허용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민간 은행 기능 약화=통화정책의 파급력을 높일 수 있다는 CBDC의 장점은 곧 민간 은행의 기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CBDC가 은행 예금을 대체하게 된다면, 은행의 수익성이나 자금 중개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CBDC 도입이 민간 은행 역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장보성 연구위원은 “CBDC가 은행 예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이자를 지급한다면, CBDC가 은행 간의 경쟁을 촉진해 결과적으로 은행 수신(受信)이 늘어나고 대출 활용 자금도 증가하기 때문에 금융 중개 기능이 오히려 좋아질 수 있다”라고 밝혔다. 

◇CBDC 도입을 위한 과제들=그렇다면 CBDC의 상용화에 앞서 어떤 제도적 정비가 이뤄져야 할까? 정준혁 교수는 “CBDC가 자금 세탁 등의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강제집행 형태의 법 제도가 갖춰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익희 교수 역시 “중앙은행에서 민간은행으로 보내는 디지털화폐는 추적이 가능하고, 상업은행과 개인 또는 기업 간 거래에서는 추적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채택하는 등 운영체계를 이원화하는 기술을 검토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연구위원은 “향후 국가 간 거래 및 환전에 소매용 CBDC가 통용되려면, 구체적인 사용 방법에 관한 협약과 국경·통화 간 상호 운용성을 보장하는 다국가 통화 중앙은행디지털화폐인 ‘m-CBDC’의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CBDC 도입 시 유형별 고려도 필요하다. 장보성 연구위원은 “만약 CBDC가 이자 지급형으로 발행되지 않는다면 기존 국내 전자 지급 결제 수단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자 지급형 CBDC는 개인에게 미치는 통화정책의 영향력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정준혁 교수는 “오프라인 상황에 사용할 수 있는 ‘저장형 CBDC’와 ‘토큰형 CBDC’를 보조적 수단으로 마련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CBDC의 개발과 도입은 현금 사용률이 줄어가는 현 상황에서 피해갈 수 없는 국제적인 흐름이다. 우리가 CBDC 상용화에 대비해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충분한 사회적 협의 과정을 가져야 할 때다.

 

*소매용 CBDC: 일반인들도 제한 없이 소액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의 CBDC.

*금융 포용: 개인이나 사업체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하는 금융 서비스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 또는 그것이 가능하도록 돕는 과정.

 

삽화·인포그래픽: 정다은 기자 rab404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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