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고(古)조리서 속 한식

지난해 문화재청은 국내에서 출처가 확실한 조리서 중 가장 오래된 『수운잡방』을 희소성과 독창성, 그리고 역사∙학술적 가치를 근거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제2134호)로 지정했다. 음식 조리서가 보물로 지정된 첫 사례였다. 조선시대 3대 조리서라 불리는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시의전서』는 본격적인 조리 관련 문헌이 나타난 조선 중기 이후에 등장한 문헌들이다. 고조리서는 국어사, 식문화사, 농업사의 발전과 관계 깊은 문화재다. 『대학신문』에서 이 조리서들이 현대에 어떻게 복원되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소개되고 있는지 다뤘다.

 

고조리서, 한식 문화 체험의 토대가 되다

『수운잡방』은 조선 중종대에 쓰여 고려 말기에서 조선 전기에 걸친 안동 지역의 식생활과 조리법을 추정할 수 있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수운’은 ‘격조를 지닌 음식 문화’, ‘잡방’은 ‘여러 가지 방법’을 일컬어 곧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걸맞은 요리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뜻을 담은 이 책은 총 121가지 음식을 재료의 사용에서 가공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 『수운잡방』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있으며 안동의 수운잡방연구원에서는 조리서에 수록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수운잡방 접빈객 상차림’을 제공하고 있다. 

『수운잡방』에 담긴 음식들로 구성한 상차림이다. 현재의 요거트와 비슷한 타락, 꽃물로 빛깔을 내는 청포묵, 채소와 육수를 넣은 분탕 등이 있다.
『수운잡방』에 담긴 음식들로 구성한 상차림이다. 현재의 요거트와 비슷한 타락, 꽃물로 빛깔을 내는 청포묵, 채소와 육수를 넣은 분탕 등이 있다.
수운잡방연구원에 전시돼 있는 복원 음식 모형이다. 보물 지정서와 조리서의 사본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수운잡방연구원에 전시돼 있는 복원 음식 모형이다. 보물 지정서와 조리서의 사본을 함께 보관하고 있다.

 

『수운잡방』이 우리나라 최고(最古) 조리서라면 『음식디미방』은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다. 이 조리서는 1600년경 작성돼 조선 중후기 양반가의 식생활과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전통음식 연구의 지침서이자 교본으로 알려져 있다. 가루음식과 떡 종류의 조리법 및 각종 술 담그기를 자세히 기록한 이 책의 원본은 경북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경북 영양군에서는 세계인이 공감하는 ‘맛’과 ‘멋’에 대한 한국적 모델을 제시하고자 ‘음식디미방 명품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조리서를 작성한 장계향 선생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두들마을(영양군 석보면 원리리)에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과 전통한옥체험관을 짓고 정부인장씨예절관, 음식디미방교육관, 전시관을 열었다.

 

한편 조선시대 조리법을 집대성한 ‘조선판 음식 백과’도 있다. 1800년대 말 무렵 작성된 『시의전서』는 1919년 상주 군수 심환진에 의해 발견됐고 420여 가지 음식들의 조리법으로 구성돼 식품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시의전서』는 한자어 ‘골동반’ 대신 ‘부빔밥’(비빔밥)이라는 한글 용어와,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통배추김치가 최초로 등장한 조리서다. 오첩반상∙칠첩반상 등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반상도식도’를 담고 있기도 하다. ‘시의전서 전통음식 명품화 사업’의 일환으로 고조리서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의전서 명품체험관 ‘백강정’을 비롯한 복원 음식점 6곳이 상주시에 위치해 있다. 시의전서 전통음식연구회와 백강정의 노명희 대표는 “시의전서 메뉴를 현대화하기 위해 복원 연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조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옛 음식을 보존하는 사람들

고조리서의 해석과 현대화는 그 안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식생활을 보여주는 역사와 음식을 모두 복원∙재현하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선 옛 언어로 쓰인 조리서를 현대어로 풀이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 처음부터 한글로 쓰인 『음식디미방』과 같은 조리서라 하더라도 지금은 쓰이지 않는 재료나 조리방법, 조리기구를 현대의 것으로 바꿔 적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반대로 음식을 재현해 보며 역으로 용어의 의미나 조리 과정을 이해하고 구체화하기도 한다. 『음식디미방』의 조귀분 종부는 “조리서의 음식을 만들어 보며 변형이나 추가가 필요한 부분은 현대어 풀이가 적힌 책 위에 덧붙여 놓는다”라고 설명했다. 노명희 종부는 “옛 조리서가 요즘의 조리서만큼 아주 구체적이진 않지만, 기본 요리 실력을 갖추고 몇 번 따라해 보면 본인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복원된 음식들 중에서 재료 준비의 용이성, 가격의 적절성 등을 기준 삼아 상품화가 가능한 것을 분류한 뒤 상차림이나 정식 메뉴가 구성된다.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내에 위치한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유물전시관이다. 장계향의 생애를 보여주는 고문서와 책자, 장계향의 초상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 내에 위치한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유물전시관이다. 장계향의 생애를 보여주는 고문서와 책자, 장계향의 초상화 등을 전시하고 있다.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 『음식디미방』의 전통주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수십 종의 전통주를 복원해 상품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장계향문화체험교육원에서 『음식디미방』의 전통주를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수십 종의 전통주를 복원해 상품화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을 활용해 복원된 조리서와 조리법은 원문 텍스트와 함께 현대화된 조리법으로 공개된다. 상표 등록을 통해 복원 음식점을 열거나 도시락 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방식으로 브랜드화하는 경우도 있다. 각 조리서의 연구원 혹은 체험교육원에서 복원 음식을 만드는 체험을 제공하기도 한다. 조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노명희 대표는 “처음엔 『시의전서』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박람회, 전시회에 무조건 나갔다”라며 “이후 농림축산식품부와 상주시에서 문화유산으로 관심을 가져 줬고 체험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노명희 대표가 조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의 소고기 완자와 비슷한 ‘뭉치구이’와 ‘궁중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노명희 대표가 조리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의 소고기 완자와 비슷한 ‘뭉치구이’와 ‘궁중떡볶이’를 만들고 있다.
상주시 교육청 직원들이 『시의전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뭉치구이 조리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상주시 교육청 직원들이 『시의전서』에 대한 설명을 듣고, 뭉치구이 조리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현대화 과정을 거친 고조리서의 조리법들은 책으로 출판되거나 온라인상에 공개돼 조리법을 따라해 볼 수 있다. 2010년 한식 전문 공공기관으로 설립된 한식진흥원의 온라인 잡지 「한식 읽기 좋은 날」은 올바른 한식 메뉴 외국어 표기법, 한식 조리법 등을 실어 매달 발간되고 있다. 이곳 홈페이지에서 조선 3대 조리서 이외에도 『동국세시기』의 메밀묵국수, 도토리묵밥 등 다양한 한식 조리서의 현대화된 조리법을 찾을 수 있다.

 

고조리서 복원이 현대 한식으로 이어지려면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농수산식품 수출액이 전년대비 15% 가량 증가하는 등 한류의 인기에 힘입어 ‘K푸드’ 시장이 더욱 커져가고 있다. 고조리서도 마찬가지로, 전통 한식과 체험기관은 다큐멘터리 등 한식 관련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음식박람회와 다양한 행사를 통해 꾸준히 인지도와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경상북도는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고, 『시의전서』 역시 상주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고조리서를 활용하는 현장의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수운잡방연구원 김도은 종부는 “신라호텔 이부진 사장이 부지를 지원해 준 것에 사비를 털어 수운잡방연구원을 지었고, 그 밖에 다른 지원 없이 체험비만으로 운영비를 충당하며 유지하고 있다”라고 연구원 운영의 한계를 지적했다. 노명희 대표 또한 “지자체와는 상관없이 체험비를 통해 비용을 충당한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국보 지정이나 문화유산 등재로 가치를 인정받은 조리서를 실질적으로 전승하기 위해서는 한식 연구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식 인력도 점점 줄고 있는 실태다. 김동희 교수(수원과학대 글로벌한식조리과)는 “최근 트렌드로 베이커리 카페가 많이 생겨나면서 조리과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제과제빵과로 몰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식 인력 양성은 전통 한식 조리 방법을 전승하고 한식 문화를 풍부히 하는 데에 꼭 필요한 요소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한식 전문 셰프나 식품 명인 분들을 활용한 대중적 프로그램을 제작해 한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단순히 먹는 음식이 아닌 식문화에 대해 의례식, 식기, 먹는 방법 등 다양한 접근을 통한 홍보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식은 꾸준히 위상을 높이며 농식품 수출 확대, 관광 등 관련 산업의 성장까지 이끌고 있다. 이런 우리 음식문화의 기반을 더 풍부히 하는 과정에는 고조리서를 연구하며 현재의 한식에 대한 뿌리를 찾고, 지역 전통음식을 복원하는 노력이 있었다. 지역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와 한식문화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며, 나아가 우리의 독창성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전통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자부심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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