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23세 대학생에게 지난 3월 징역 4년 판결이 내려지며, ‘영 케어러’(young carer, 가족 돌봄 청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장애나 질병을 겪고 있는 가족을 돌보는 청년 및 청소년으로, 제도권 내로 들어오지 못한 채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지난 2월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발표해 범정부적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 케어러에 대한 논의가 수년 전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이에 관한 정부 논의는 이제야 출발선에 섰다. 지금까지 영 케어러는 하나의 복지 대상 집단으로 분류되지 않아 기존 복지 제도의 지원을 받거나 정보를 전달받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이들은 각자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부양 부담을 떠안아야 했고, 이는 다시금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 국회입법조사처가 11~18세 청소년 중 약 18만~29만 명의 영 케어러가 존재한다고 추산했으나, 이조차도 통계치가 없어 해외 통계를 단순대입한 추정치며, 20대 청년까지 포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다행히 이번 가족 돌봄 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에 따라 만 34세 이하, 그중 24세 미만의 청년 및 청소년에 초점 맞춘 실태조사가 진행돼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힌 기초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4일(수) 마무리된 실태조사의 원자료를 바탕으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기관과 분석을 진행해 6월에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사가 마무리된 지금, 구체적인 정책 설계와 이행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 케어러는 돌봄·생계·진로라는 세 측면이 중첩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의 지원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적인 시스템이 요구된다. △가족돌봄청년 홈페이지 구축 △노인맞춤돌봄서비스 △가족돌봄청년 특례 서비스 등의 신규제도를 조속히 마련함은 물론이고 △노인장기요양 보험 신청 △생계·교육·자활급여 △가사간병통합지원 등 기존 복지정책과의 원활한 연계도 필요하다.

복지부는 서울시 서대문구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이를 확산할 수 있는 모델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영 케어러가 다시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인지도 확산과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수적이다. 그간 가족 부양과 돌봄은 개인의 문제나 효도라는 이름으로 당연시돼 왔기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청년들과 청소년들이 떠안아 왔다. 이제 영 케어러가 가족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국가와 공동체가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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