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사진 아카이브와 기록

인간은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낌으로써 형성된 기억이 쉽게 사라지자 ‘기록’이란 행위를 통해 기억을 붙잡으려 노력해 왔다. 기록물은 당시의 생활상과 문화, 역사를 담고 있기에 시대가 지날수록 역사적 가치가 더해진다. 하지만 개인의 기록물은 체계적인 관리가 어려워 쉽게 소멸된다. 이에 지역 내지는 국가 단위로 기록물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공공 기관이 주체가 돼 문화를 기록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이때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아카이브 시스템이 힘을 발휘한다.

 

사진 아카이브의 의미

근대 사진사(史) 연구자인 사진아카이브연구소 이경민 대표는 아카이브를 “공문서, 근대 사진 등 다양한 기록물을 보관하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기록물 그 자체일 수도 있고 기록물을 보존하는 장소를 가리킬 수도 있다”라고 이 대표는 정의한다. 그중에서도 사진 아카이브는 가장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형태로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기록물이자 기록 보관소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아카이브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진의 출현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진의 출현은 학문과 생활 문화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시각 문화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이 대표는 “근대 이전까지의 사람들은 회화를 통해서만 세상을 재현할 수 있었지만, 사진술이 유입되며 질적인 전환이 이뤄졌다”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근대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사진은 특정 순간을 포착해 모습 그대로 재현하기에 어떤 형태의 기록물보다 사실적이라는 장점을 지닌다. 사진 아카이브는 이런 사진 매체의 특성을 이어받았다.

 

서울경관기록화 사업: 서울 시민의 열망을 간직하다

서울특별시는 서울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1995년부터 약 30년간 서울의 도시경관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서울경관기록화 사업을 담당하는 도시경관팀 이진표 주무관은 “서울의 도시경관은 이를 만들어 낸 서울 시민의 가치와 열망을 담아내고 있다”라며 사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서울 시민들의 열망에 의해 변화한 모습을 기록하고 보존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도시경관은 ‘서울특별시 경관조례 제9조’에 의해 5년 단위로 기록된다. 이 주무관은 “한 지역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려면 최소 30년이 소요되기 때문에 단위를 5년으로 설정해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울경관기록화 사업은 현재 6차 사업까지 완료된 상태며, 7차 사업은 올해 적정성 검토 및 자문 회의를 진행해 2024년 용역 착수될 예정이다. 현재 누적된 총 36,000여 장의 기록물은 서울시 내 외장하드와 서울시 아카이브 DB인 ‘서울경관아카이브’에 저장돼 있고, 서울연구원 데이터서비스와의 협업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63빌딩, 광화문 광장, 청계천 등 서울 공간의 곳곳을 경관지점으로 삼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특히 사진 매체가 도시의 모습을 기록할 때 동일 장소에 대한 직관적인 비교 자료로서 활용도가 매우 높다고 역설했다. 

사진 매체를 활용한 기록화 사업은 변화하는 도시를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서울의 개성 및 역사, 문화 정서 등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서울 도시경관 관리를 위한 기준 및 분석의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이 주무관은 “이를 위해 시민들이 도시 공간 속에서 경험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심상(心象)인 ‘도시 이미지’를 대표하는 장소를 찾고 그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이뤄진다”라고 덧붙였다. 즉, 서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서울 시민들이 어떤 대상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30년간 이뤄진 서울경관기록화 사업은 오늘의 서울을 만들어 낸, 또한 앞으로의 서울로 변화시킬 서울 시민들의 열망을 기록하고 간직하는 사진 아카이브다.

사진 제공: 서울 1996 도시형태와 경관, 서울특별시
사진 제공: 서울 1996 도시형태와 경관, 서울특별시
사진 제공: 서울 2020 도시형태와 경관, 서울특별시
사진 제공: 서울 2020 도시형태와 경관, 서울특별시

▶2008년 2월 10일 토지 보상에 불만을 품은 노인이 국보 제1호 숭례문에 방화를 저질러 숭례문의 90%가 훼손됐다. 상단은 숭례문이 방화되기 전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며, 하단은 복구 작업 완료 후 시민들에게 다시 공개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다. 

 

5·18 민주화운동 사진 아카이브: 40여 년 전  광주의 기억에 공감하다

서울경관기록화 사업과 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장소가 변화하는 모습을 오랜 기간에 걸쳐 기록해 변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아카이브가 있는 한편, 특정 시간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기록해 오늘날 그 의미와 배경을 살펴볼 수 있는 사례도 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시민들이 전두환 신군부의 무력 탄압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 5·18 민주화운동은 현재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다방면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관련 기록물을 관리하려는 노력 또한 이뤄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기록관 김홍길 학예연구사는 “5·18 민주화운동의 당사자들이 기억을 회고해 남긴 자료들은 모두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그들의 가족에게 전수된 기억 또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라며 오늘날도 5·18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했다. 김 학예사는 특히 사진 기록물의 성격에 대해 “사진은 일종의 시간 예술로, 특정 순간을 포착해 가치를 창출함으로써 하나의 정지된 공간을 형성한다”라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과 장소는 변화하지만, 특정 장면을 사진으로 촬영해 당시 상황에 대한 이해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라고 사진 기록물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 사진 기자들과 외신 기자들이 현장을 촬영했으며, 일부 시민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기록을 남겼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사진 기록물들로 구성된 5·18 민주화운동 사진 아카이브는 우리에게 그때 당시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새로이 창출하는 계기가 되며, 더 나아가 당시의 상황에 공감하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한다. 이와 관련해 김 학예사는 “5·18 민주화운동은 국가 폭력에 의해 민중이 희생된 사건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슬픔과 분노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항했던 시민들의 정신에 집중한다면 정의와 연대의 기억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가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단결함과 동시에 외부에 상황을 알리려 노력한 민중들의 절박하고 애틋한 감정이 다음 세대에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현장을 담은 사진 기록물들은 정지된 특정 순간의 의미와 가치, 감정을 재생산한다. 이런 사진 아카이브는 1980년 5월의 광주와 2022년 5월의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된다.

ⓒ이창성, 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이창성, 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나경택, 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나경택, 사진 제공: 5·18기념재단

▶상단은 당시 중앙일보 이창성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으로,  당시 광주의 거리가 군부 세력의 무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모습이다. 하단은 당시 전남매일 나경택 사진기자가 촬영한 사진으로,  군인이 저항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곤봉을 휘두르고 있다. 

 

사진 아카이브, 그 필요성과 나아갈 방향은

오늘날 사진은 우리에게 일상이 됐으며, 전 세대에 걸쳐 사진 문화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일반 대중이 생산한 무수한 사진들은 디지털 데이터의 형태로 SNS 등의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이동한다. 하지만 일반인의 사진 데이터는 쉽게 흩어지고 훼손되곤 한다. 이경민 대표는 “개인이 디지털 자료를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사진 데이터를 관리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사진 관리 매뉴얼 구축 등의 캠페인 활동이 방안 중 하나다. 한편 그는 “사진 분야의 양적인 확대에 비해 학문·예술과 관련된 질적인 확대가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이론보다 실기 위주의 사진 전공을 가르쳐 전문적인 비평이 가능한 사진 이론가들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렇듯 사진 분야의 양적·질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학계에서의 사진학 연구의 필요성이 촉구되고 있다. 

사진 아카이브 사업은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것은 맞지만, 경제적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디지털 사진 아카이브는 실물 사진을 보관하는 아카이브보다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 이에 이 대표는 “사진 아카이브 사업은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공공사업 형태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에는 지역 단위 기록원이 건립돼 지역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등 아카이브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라며 긍정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기본적으로 사진 아카이브는 사진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라고 사진 아카이브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더 나아가 그는 사진이 단일 매체가 아니라 ‘매체에 대한 매체’를 의미하는 메타 미디어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대표는 “사진 아카이브는 다른 매체의 활동을 기록하는, 즉 모든 영역의 움직임을 기록하는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라고 덧붙이며 사진 아카이브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을 멈추고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한다. 사진 한 장이 담고 있는 특정 순간은 당시의 기억과 융합돼 의미를 새로이 창출한다. 한편 특정 장면을 다른 시간대에 촬영한 일련의 사진들은 변화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변화하는 사람들의 가치와 열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렇듯 사진 아카이브는 과거와 현재, 앞으로의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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