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당시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이주한 조선인의 삶을 다룬 <파친코>가 연일 세계적인 주목을 끌고 있다. <파친코>의 숨겨진 매력은 언어다. 작품 내의 한국어, 일본어, 영어, 특히 상황에 따라 적절히 사용되는 표준어와 부산·제주 지역어는 또 하나의 묘미다. 유네스코가 제주 지역어를 소멸 위기 언어 5단계 중 4단계로 분류한바, 제주 지역어는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파친코>는 왜 제주 지역어를 담아냈나

<파친코>에는 제주도에서 일본 요코하마로 이주한 고한수 부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점부터 제주 지역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한수의 아버지는 야쿠자 료치 상의 장부 담당자로, 한수는 미국인 가정의 과외 교사로 일하며 일본 생활에 적응한다. 그러던 한수에게 미국행이라는 큰 기회가 찾아오지만, 한수의 아버지가 야쿠자의 장부를 조작한 사실이 들통나고 만다. 한수가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미국행을 주저하는 동안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이 일어난다.

한수 부자의 사연은 김민진 작가의 원작 소설에는 없는 내용으로 드라마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추가됐다. <파친코>의 제주 지역어 자문 및 지도를 맡은 변종수 배우는 “해당 내용은 프로듀서 수 휴를 비롯한 <파친코> 제작진이 소멸 위기에 처한 제주 지역어를 보존하려는 의지를 담아 공들여 재현한 것”이라고 각색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한국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했던 자이니치* 가족을 중점적으로 다룬 작품의 기획 의도와도 일맥상통한다. 1930년대 일본으로 이주한 제주인은 무려 제주도내 거주인구의 25%였다.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이방인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특성은 자이니치의 한을 담아내기에 적격이었다. 제주 지역이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직후에도 제주 4·3 사건 등 유독 가혹한 탄압과 수탈을 받아 오면서 제주 지역어 또한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점도 자이니치가 처한 상황과도 일면 유사하다. 

 

<파친코>로 보는 제주 지역어의 고유성

제주 지역어를 깊이 이해한다면 <파친코>의 서사와 그 정서를 더욱 섬세하게 느낄 수 있다. 중요한 정서가 전달되는 장면에서 지역어만의 어휘와 어감을 알지 못하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주학연구센터 김미진 전문연구위원은 “아무리 의역해도 외국어 번역은 물론 표준어도 담아낼 수 없는 제주 지역어만의 어감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대부분의 대화가 제주 지역어로 이뤄지는 7화는 한수 부자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자이니치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미국인 가족의 잔심부름을 맡아 주는 한수에게 그의 아버지가 단호하게 당부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너는 과외 선생이주 부름씨허는 사람 아니여. 다음 가건 분명하게 골으라이.”(You are a tutor, not an errand boy. Perhaps it’s worth reminding them of this.) 이 대사는 낯선 이국 땅에서도 기백을 지키며 살고자 했던 조선인의 강인함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제주도민 고영란 씨(연세대 사회학과·22)는 “‘골으라이’는 어감상 ‘분명하게 말해라, 어?’라고 강조하며 확언을 받아내는, 엄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이 있다”라며 “번역으로는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제주 지역어의 어감이 한수 아버지의 감정을 잘 표현해 준다”라고 말했다.

제주도만의 문화가 반영된 어휘가 사용되면 정서 전달의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배 타그냉 멀리 멀리 가라! 이 통시에서 기어라!”(I want you to get on that ship, and get the hell out of this wretched place!) 이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 갚기 위해 미국행을 포기하겠다는 한수에게 아버지가 악에 받쳐 소리치는 대사다. 한수의 아버지는 자이니치가 모여 사는 요코하마의 판자촌을 ‘통시’에 비유하며 한수에게 꿈을 찾아 떠날 것을 종용한다. 고영란 씨는 “부모님께서 ‘통시’는 제주의 토종 변소이자 돼지우리를 일컫는 단어로, 이를 대체할 만한 표준어나 영어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고 하셨다”라고 설명했다. 

통시는 제주인들의 농경 사회에서 더럽고 불결한 동시에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장소였다. 그러나 표준어 사용자는 앞뒤 맥락을 통해 이 단어가 부정적인 의미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으며, ‘비참한 장소’(wretched place)로 번역된 영어 자막도 그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제주의 문화가 담긴 ‘통시’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당시 자이니치가 새로이 이주한 공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단숨에 받아들일 수 있다.

비록 번역에는 한계가 있지만, <파친코>는 제주 지역어를 이용해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문화를 물씬 드러내며 현장성을 드높인다. 제주 재외도민 강수빈 씨(한양대 의예과·22)는 “제주 지역어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야기의 정서를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황재윤 씨(성균관대 사학과·22)는 “제주 지역어가 아니었다면 <파친코>에서 담아내고자 했던 제주 출신 자이니치의 삶을 보여주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곁에 있는 제주 지역어

제주 지역어 소멸에 대한 <파친코> 제작진의 우려는 분명 유효하다. 인터뷰에 응한 제주도민들은 모두 제주 지역어만 전달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고 입을 모았지만, 한편으로는 <파친코>에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어휘가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황재윤 씨는 “한수의 아버지가 쓴 제주 지역어는 조부모님 세대와, 한수가 쓰는 제주 지역어는 부모님 세대와 비슷했다”라고 설명했다. 고영란 씨는 “제 또래는 ‘~핸’, ‘~한댄’, ‘~언?’과 같은 종결 어미와 몇몇 어휘 정도만 사용한다”라며 “<파친코> 속 제주 지역어를 일부분 이해하지 못해서 부모님께 여쭤 봤다”라고 말했다. 변종수 배우는 이를 두고 “문화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제주 지역어 소멸에 한몫을 했다”라며 “제주도 내에서조차 표준어로 이뤄지는 교육과 표준어 위주의 매체 발달이 그 원인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미진 연구위원은 표준어 정책의 추진을 제주 지역어 소멸의 원인으로 꼽았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줄어들면 언어가 소멸의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라도, 사라지는 언어의 명맥을 이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정승철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언어학적 다양성 보존을 위해서라도 지역어의 소멸을 막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라지는 지역어로 위협받는 지역 문화에 관한 문제도 지적된다. 변종수 배우는 “지역어가 사라지면서 지역 특유의 문화도 사라져 갔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김 연구원은 “제주 지역의 문화는 제주 지역어로 완성된다”라며 제주 지역어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파친코>는 제주 지역어를 전세계로 알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라며 “제주 지역어를 보전하려는 노력과 관심이 지속되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정승철 교수는 “제주 지역어를 포함한 모든 지역어는 따뜻하고 정감 있는 언어라는 그 사실만으로도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말했다.

<파친코>는 제주 지역어를 충실히 재현하고 알리는 마중물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제주 지역어가 <파친코> 속에만 갇혀 있지 않도록 우리부터 제주 지역어에 더 깊은 애정과 관심을 쏟아 보면 어떨까.

*자이니치: 일제강점기부터 1965년 한일 수교 이전까지 일본으로 건너가 전후에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남은 조선인·한국인과 그 후손을 지칭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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