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교수(영어영문학과)
김명환 교수(영어영문학과)

몇 주 전 새 정부의 장관 후보자 하나가 청문회 과정에서 고등학생인 딸이 다수의 논문을 실은 해외 학술지를 간단한 투고 절차만 거치면 바로 게재가 되는 ‘오픈액세스 저널’이라고 불러 학문 사회의 반발을 샀다. 의혹을 해명한다면서 오픈액세스 저널을 한때 지하철 가판대에서 무료 배포하던 정보지처럼 곡해하는 표현에 무척 놀랐다.

이처럼 얼토당토않은 해명이 아예 나오지 못하려면 우리의 대학과 학문 사회의 ‘오픈액세스’(Open Access)에 관한 인식이 강화돼야 한다. 벌어진 논란이 오히려 기회다. 이제 우리도 오픈액세스 운동의 대의와 현황을 깊이 이해해 국내 학술지의 오픈액세스 전환을 촉진하는 동시에, 20년 이상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돼 최근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국제 오픈액세스 운동에 활발히 참여할 때다.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라는 생소한 이름의 부실 학술지, 가짜 학술지를 배척하는 과제도 빼놓을 수 없다.

과학적 탐구를 통한 지식과 정보는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다. 저작권과 특허권 등 지식재산권 관련 법과 제도로 보호하는 경우라도, 지식·정보·기술의 생산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만 인류에게 유용한 지식이 더 활발하게 생산될 수 있다는 것이 그 보호의 명분이다. 학술지에 연구 성과를 싣는 연구자는 당연히 자신의 논문이 널리 읽히고 인용되고 활용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오픈액세스의 큰 뜻이다. 

그러나 학문 세계의 현실이 오픈액세스의 원칙에 따라 움직여 온 것은 아니다. 디지털 정보 혁명의 눈부신 진전에 따라 국내외 학술지는 대부분 전자저널로 탈바꿈했다. 전자저널의 성장은 학문적 소통에서 시공간의 제약과 장벽을 제거하는 놀라운 성과를 가져왔지만, 그 못지않게 큰 문제를 일으켰다. 학문의 실적주의와 성과주의를 강조하는 범세계적 경향 탓에 논문이 양산되는 흐름에 편승해 엘스비어(Elsevier) 등 해외 학술출판사들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전자저널의 종수를 마구 늘리고 구독 비용도 가파르게 올렸다. 이는 대학과 연구기관에 과중한 구독료 부담을 안기는 동시에 일반 시민이나 대학 밖의 전문가들은 학술적 성과에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했다. 결국 국내외를 막론하고 학문적 소통 체제가 지식 본연의 공공성과 거리가 멀어지고 학문 사회의 자유와 자율성을 갉아먹기에 이르렀다. 국내 학술지의 경우,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학회의 열악한 재정 탓에 저작권 수입을 둘러싸고 디비피아(DBpia) 등 국내 학술정보업체의 횡포에 쉽게 휘둘린다.

심각한 학술지의 상업화에 저항하며 지식의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오픈액세스 운동이며, 이에 호응해 발간 즉시 논문을 제한 없이 공개하는 학술지가 오픈액세스 저널이다. 오픈액세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구독료가 사라지기 때문에 게재료가 일정하게 상승하는데, 약탈적 학술지들은 이를 악용한다. 이들이 오픈액세스 저널이라서 게재료가 비싸다며 연구자를 약탈한다는 뜻에서 해외에서 약탈적 학술지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과도한 게재료의 대가로 엄정해야 할 논문 심사과정을 생략하거나 느슨하게 한다는 점에서 사이비 학술지·부실 학술지·가짜 학술지라고 불러 마땅하다. 

나는 지난 3월까지 중앙도서관장으로 재직하면서 ‘학문적 소통 체제의 혁신을 위한 대학인 선언’, 즉 한국판 ‘오픈액세스선언’의 초안을 전국 대학도서관에 회람하기도 했고 ‘대학 도서관오픈액세스추진위원회’(가칭)를 제안하기도 했다. 새 중앙도서관장인 장덕진 교수(사회학과)는 취임하자마자 이와 관련한 신문 칼럼 〈새 정부는 닫혀 있는 지식의 문 활짝 열어야〉 (「경향신문」 2022년 4월 5일 자)를 기고했다. 또 2019년에 발족한 오픈액세스 운동 단체인 ‘지식공유연대’(새로운 학문 생산 체제와 ‘지식 공유’를 위한 학술 단체 및 연구자 연대)는 최근 『지식을 공유하라』를 펴냈다. 바야흐로 대학과 대학 도서관, 대학인이 오픈액세스를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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