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환(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오종환(법학전문대학원 석사과정)

고등학교 때 제일 좋아했던 과목인 ‘법과 정치’의 이름이 ‘정치와 법’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치 과정의 결과물이 법이라는 점에서 순서가 바뀐 새 이름이 타당해 보인다. 입법부에서도 많은 법조인이 일하는 것을 보며, 법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사실에 우려하게 된다. 

정치인 중에는 확실히 법조인 출신이 많다. 우리나라는 21대 총선 기준으로 국회의원 300명 중 46명이 법조인이고, 변호사만 133만 명이라는 미국의 하원에는 법조인이 3분의 1에 달한다고 한다. 법조인은 법을 직접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법조인이 법령을 제정하는 의회에서 일하는 것은 전문성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법률은 그 내용만큼이나 형식과 체계를 갖추는 것도 중요해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관여할 필요도 있다. 변호사 자격증을 살려 생업 문제를 해결하기 비교적 용이한 법조인의 특성이 그들이 낙선의 위험을 감수하고 정치에 도전하기 더 쉽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법이 해야 할 일과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같지 않다. 법은 차이를 드러내야 하고, 정치는 차이를 넘어서야 한다. 법조인의 주 무대인 사법은 법을 적용해 사실관계를 살피고, 세세한 부분까지 옳고 그름을 따져 진실을 밝혀내고 법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차이를 하나하나 부각해야 한다. 왜 이 판례가 이번 사건에 적용돼야 하는지, 적용될 수 없는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같고 어떤 부분이 다른지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 하지만 정치는 각자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생겨나는 이해관계를 표출하고 이를 조정해 모두를 위한 결론을 내는 일이다.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법조인의 정체성 위에 정치인의 정체성을 쌓아야 정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이름을 거명하기에는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수많은 분이 법조인으로서의 역량을 승화시켜 좋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서 둘이 합쳐 96%가 넘는 득표율을 얻은 양대 후보가 모두 ‘0선’ 법조인이었다는 사실에는 우려를 키우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표 구호가 교체였다는 점과 그들을 추동하는 정신 중 하나가 복수였으리라는 점은 결국 이 글을 쓰도록 만들었다. 교체를 이야기하고 복수를 다짐할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이 강골 법조인이었다는 데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당파를 대표하는 여러 명 중의 한 명인 의원이 아니라, 이 나라를 대표하는 단 한 명이 될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실제 행동으로 나타낸다면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정치가 스스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의 손을 통해 결론을 내려는정치의 사법화도 심해지고 있다. 타협과 존중이라는 정치적 해답 대신 정당들 사이에, 의원들 사이에 고소·고발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많은 친구가 법학을 공부하러 가고 있는 상황은 당연한 것을 넘어 오히려 필요해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나도 그런 선택을 해서 지금 법을 공부하고 있으니 할 말은 없고 가끔은 민망하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푸념할 권리는 있으니까.

처음 〈아크로의 시선〉 투고가 결정됐을 때는 둘 중 누가 승자가 돼도 이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나 강렬했던 그 날선 모습에 절망했었다. 그때로부터 또 시간이 흘러 결국 한 사람이 우리의 대표가 됐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그가, 법을 잊지 않으면서도 모두가 함께하는 정치라는 결말을 꿈꾸고 있길 바란다. 결국 우리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저 물리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넘어, 유기적으로 결합할 때 공존은 비로소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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