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우 편집장
박건우 편집장

#1. 청와대가 개방되기 직전인 4월경, 꿩 대신 닭이나 먹자는 생각으로 청와대 사랑채에 방문했다. 전시장 중간 한쪽 벽에는 K-방역의 성과를 기리는 활자들이 가득 메워져 있었다. 전시관 끝의 장식이 누리호 발사인 걸로 봐선 설치한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자랑할 만했다고 생각했는지 화려하게 꾸몄다. 그 중 한 칸은 ‘덕분에 챌린지’ 픽토그램 차지였다. “다들 정말 수고했다”라는 말 외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2. 5월 5일 어린이날,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나를 포함한 약 1만 명이 ‘합법’적으로 경기장이 떠나가랴 목을 놓았다. 밀려오는 감동과 벅참에 피부가 벌겋게 타는 줄도 몰랐다. 골을 넣어도 박수만 쳐야했던 지난날의 응어리를 모두가 풀고 싶었을 테다. TV 중계 화면에서는 2년 반 만에 들려 온 육성 응원 소리가 온전히 잡히도록 해설진들이 말을 멈췄다. 

#3. 신문사 일이 끝나고 버스를 타러 가면서, 축제 마지막 날의 북적북적한 풍산마당을 조우했다. 학생들도, 초청된 가수도 참 많이 참아 왔구나 싶었다. 최근의 대학 축제들은 또 어떤가. 모이지 못해, 소리지르지 못해 억울했던 분풀이의 장이었다.

결국 지나고 보니 전부 ‘사람’이 고생했다. 방역 대책 수립하는 것도 사람, 참는 것도 사람, 치료하는 것도 사람, 죽는 것도 사람이었다. 이제 희망의 청사진을 그리는 일만 남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게 위로만 전하면 좋으련만, 코로나19도 재난이었다는 걸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을 회복하니 과거가 점점 미화되고 잊힌다. 재난이 그래서 무섭다. 잊으면 또 당하기에. 그래서 우왕좌왕했던 우리의 과거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스크가 부족해 사재기가 횡횡했던 시절, 누가 더 외출을 안 하는지가 곧 성업이었던 날들, 확진자의 동선과 정보 캐내기, 병상을 찾지 못해 떠돌다가 생을 마감한 이들, 희망의 갱신 기간 ‘2주’로 버틴 자영업자들··· 모두 교훈으로 남아야 할 텐데.

썰물이 빠지고 나서야 갯바닥이 드러나듯, 일상이 회복되니 뒤를 돌아보게 된다. 인류는 꼭 재난을 겪고 나서야, 진통을 겪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체르노빌·후쿠시마 원전 사고, 태안반도 기름 유출, 시카고 폭염, 세월호 침몰 등등 손에 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아픔을 겪고, 뼈 아픈 교훈을 얻었다. 그나마도 이전의 재난 양상은 ‘휴먼 에러’를 막았으면, 순간순간의 오판과 방심이 눈덩이처럼 쌓이지 않았으면, 소외된 이들을 미리 잘 돌봤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만했다. 그러나 이젠 점점 재난이 불가피의 양상으로 가고 있다. 이전엔 ‘이길 수’라도 있었는데, 앞으로는 ‘이길 순 없지만 누가 덜 상처를 입느냐’가 돼 버릴까 두렵다. 그리고 인류를 테스트하는 기준이 급상승했음을 보여준 것이 코로나19였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 방역에 대한 평가가 이분법으로 나뉘어 정쟁의 도구로 흐르면 안 된다.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객관적인 평가로, 필요한 교훈과 깨달음을 이 재난으로부터 끄집어 내야 한다. 그저 수많은 재난을 구태여 겪고 나서야 하나씩 취약점을 깨닫는 인류에게, 코로나19가 강력한 경고를 새긴 셈이다. 위기가 지나면 한숨 돌리기도 급급하다지만, 바로 지금이 코로나19가 주관한 시험의 결과지를 받아보고 분석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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