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계약학과 도입 논의…기대와 우려 모두 나와

지난 26일(목) 학사위원회에서 ‘서울대 공대 반도체학과(계약학과) 신설(안)’을 바탕으로 반도체 계약학과 운영에 관한 초기 논의가 착수됐다. 특정 기업으로의 취업을 목표로 하는 인재 양성이 서울대 교육 이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19년 반도체 계약학과에 관한 논의가 무산된 지 3년 만이다. 이번에 제안된 신설안은 △학부생 75명 및 대학원생 30명 선발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의 협약 △2024~2029년 5년 계약 추진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번 신설안 발제를 맡은 이혁재 교수(전기정보공학부)는 “반도체 학문은 전기전자공학에만 국한된 기존의 연구를 넘어 여러 분야 및 응용 기술과 함께 접목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혁재 교수는 “이번 반도체학과 신설안은 한국반도체산업협회와 협력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전체를 선도할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라며 도입 취지를 밝혔다. 반도체학과가 계약학과의 형태로 추진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계약학과만이 현재 학부생을 증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경로”라고 답했다. 현행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수도권 대학은 인구집중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 확대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설안에 따르면 반도체학과는 정원외 선발 방식으로 인원을 모집할 예정이다. 또한 이 교수는 “반도체학과의 입학은 특정 기업의 개입 없이 전적으로 서울대 입시 규정에 따라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이번 신설안은 기업 취업 외에 반도체 분야로의 자유로운 진로 선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보완됐다. 이혁재 교수는 “대학원 진학, 교수자 활동, 협회 소속 외 다른 산업체로의 입사 모두 궁극적으로 반도체 산업 전반에 기여하는 일이므로 반도체학과의 인재 양성 목적에 부합한다”라고 전했다.

이혁재 교수는 학부 단위의 반도체학과 도입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실질적인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학부생을 겨냥해야 한다”라며 “이를 기업들도 인지하고 있기에 계약학과의 학부 신설을 희망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혁재 교수에 따르면 반도체 분야를 다루는 전기정보공학부 일반대학원은 배정된 입학정원조차 다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대학원에서의 계약학과 신설 및 확대는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부에 계약학과가 신설되는 것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호 교수(생명과학부)는 “반도체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인정하나 계약학과가 학부에 신설됨으로써 비롯될 학내 파급효과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운을 뗐다. 이 교수는 “현행 학칙상 학부에 계약학과 설립은 원칙적으로 불가하기에 계약학과를 도입하려면 학칙 개정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학칙 개정이 서울대 교육 철학의 변화로까지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이준호 교수는 “학칙 개정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충분한 심의를 거쳐 결정할 문제”라며 “현재 추진되는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 논의가 그만큼 충분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번 반도체 계약학과 도입을 시작으로 여러 산업 분야의 협회에서 계약학과 신설에 관한 제의가 들어온다면 서울대는 새로운 계약학과 설립을 막을 명분이 없을 것”이라며 학과 체계에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준호 교수는 계약학과 선발 방식의 공정성 문제에도 주목했다. 이준호 교수는 “수도권 대학 정원 제한에서 우회적인 방식으로 학부생을 증원하고자 정원외 선발을 고려하는 것으로 안다”라며 “정원외 선발은 △탈북민 △저소득층 △외국인 등을 위한 특별 전형으로 학부생 전원을 정원외 방식으로 선발하면 특혜처럼 보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늘어나는 반도체 인력 수요에 관해 이준호 교수는 기존 공학전문대학원과 연합전공 인공지능반도체공학(인지반) 확대 및 강화를 반도체 계약학과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현행 학칙상 대학원에 반도체 계약학과를 두는 것은 가능하다”라며 “기존의 연합전공과 함께 전문대학원에 총력을 기울인다면 인력 문제의 개선이 가능하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학부생 사이에서도 반도체 계약학과 도입에 관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삼성전자와 연계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에 재학 중인 A 씨는 “학과의 여러 지원 하에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다”라며 “계약된 기업에 취업하는 것 외에도 대학원이나 유학 등 여러 경로를 생각하는 학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존재했다. 심승언 씨(에너지자원공학과·21)는 “대학 지원자가 반도체 분야 진출이라는 미래가 보장된 계약학과로 쏠릴 수 있다”라며 “학부생의 진로가 초기부터 특정 분야로 확정될 수밖에 없는 계약학과의 성격도 아쉽다”라고 밝혔다. 박수완 씨(전기정보공학부·21)는 “현재도 인지반의 경쟁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연합전공 인지반의 정원을 확대하고 관련 강의를 보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한편 본부는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에 관해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김태균 협력부처장(국제학과)은 “서울대는 첨단 산업 육성, 경제 산업 발전 등의 국가적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다”라며 “국립대로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관해 고민하며 학내 논의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