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장영욱 부연구위원 인터뷰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19는 인류의 곪은 곳이 어디였는지 정확히 짚었다. 서로 낙인을 찍고 반목하며 곪아 버린 곳을 치료하기 위해 장영욱 부연구위원은 연대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유럽의 코로나19 동향, 인구통계, 국제이주 등을 연구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경제사 박사 학위를 딴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자리를 옮겨 감염병 연구를 시작했다. 일상을 어느 정도 회복해 모두가 설렘에 부푼 미래를 그리는 지금, 장영욱 부연구위원과 시계를 돌려 지난 2년 반을 반추해 봤다.

 

Q. 런던에서 공부하다가 남아공으로 넘어간 계기가 있나요?

잘 사는 곳에서만 공부하고 경험해서는 제 연구가 완성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모르는 세계를 보고 싶었어요. 남아공의 경우 백인과 흑인 거주 지역의 교육, 경제, 문화 수준이 극명하게 갈리거든요. 그곳에도 경제사를 연구하는 집단이 있고 연구 데이터가 있어서 전문성을 활용하기에 남아공이 적합했죠. 

- 감염병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곳이 남아공이었겠네요.

그렇죠. 1차 세계대전 있을 때쯤 스페인 독감이라는 매우 큰 사건이 터졌고, 그 전후의 질적인 변화들을 남아공에서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었어요. 스페인 독감 연구가 코로나19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남아공 대통령실에 올라가기도 했고요. 그런데 남아공에서 락다운이 걸리는 바람에 정작 연구는 끝내지 못했어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입사 제의를 받았는데, 락다운 때문에 8주 동안 집에만 있다가 2020년 5월에야 요하네스버그에서 대한민국 전세기를 타고 돌아왔죠.

- 남아공에 안 갔으면 지금의 자리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어요.

그렇겠죠 아마. 남아공에서의 경험은 코로나19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입체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됐어요. 팬데믹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락다운을 했는데, 기본적인 정책이 외출 금지예요. 그러나 남아공의 낙후된 지역은 오히려 집이 가장 위험해요. 수십 명이 좁은 집에서 지내니, 그 안에서 분리가 안 되고, 수도도 공동으로 사용하고요. 그래서 전염병이 봉쇄를 안 할 때보다 많이 퍼져요. 설상가상 구호도 끊겼었고요. 바이러스가 아니라 방역 대응 때문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꼈습니다. 

- 한국에도 우리가 돌보지 못 한 사람이 있죠?

당연히 있습니다. 굉장히 많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끊기면 삶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사람이 많아요. 한국에서 노숙인 봉사활동을 했었는데, 그분들은 모이지 말라고 하면 갈 곳이 없어요. 집이 없으니까요. 장애인 시설에 있는 분들도 사람 간 상호교류를 안 하면 퇴행이 일어나요. 요양 병원에 계신 노인 분들은 가족도 못 만나고 2년 동안 갇혀 있었어요. 이게 과연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제일 좋은 방식인가를 생각하게 됐죠. 경로당도 막아 놨기 때문에 다른 노인 분들도 할 일이 없으시니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만나는 분들이 있었던 거죠. 

Q. 연구하면서 사명감이 있었나요?

사명감이라고 하면 무겁지만, 이런 건 있었죠. 코로나19에 걸려서 힘든 분들, 락다운이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삶의 위협을 받은 분들, 발달이나 교육에 영향받은 분들도 있는데 반해 제 삶은 너무 편했어요. 월급 따박따박 받고, 회의도 비대면으로 자유롭게 하고, 관련 일이 많아 경제적인 손해도 없었고. 그래서 책임감이 생겼어요. 통계나 정책을 깊이 살피면서 이것이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하는 것, 그게 내가 누렸던 것들에 대한 보답이 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Q. 코로나19 팩트체크를 많이 했는데, 요령이 있나요? 편향을 극복하는 것이 단연 중요할 것 같아요.

우선 실증적으로 참·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영역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령, 백신이 효과가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효과가 있다는 근거만 찾을 수도 있으니 한번 다른 것도 보는 겁니다. 역효과가 나는 증거를 찾아보는거죠.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의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백신은 효과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죠. 다만 해석의 영역은 또 달라요. 그건 조율의 문제니까요. 예를 들어, 백신 부작용이 분명히 있다면 어느 정도 감수할 것인지,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감수하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관점, 즉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거든요. 해석의 영역에서는 저만의 관점을 가지려 하고, 다른 관점을 인정해 주려 합니다. 사실은 정확하게, 해석은 자유롭게. 잘못된 정보들을 유통시키는 건 막아야 하지만, 자유로운 해석까지 막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Q. 클럽에 다녀가 지탄을 받고 사과문까지 쓴 용인 66번 확진자를 위로하는 편지글을 쓰셨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죠.

다들 참아가며 인내하던 시기니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화도 나고, 그런 사람을 옹호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 관점에서는 그분은 별로 잘못한 게 없었고, 하필이면 그분의 일상이 감염병 통제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었죠. 그렇다고 그게 불법은 아니었거든요. 동선을 정직하게 공개하고 협조했기에 더더욱 칭찬받을 일이지, 스스로 위험과 이득을 평가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것들을 비난하면 오히려 감염병 통제에 도움이 안 될거라 생각했습니다. 

- 지금은 코로나19 걸렸다고 해서 눈치를 주지는 않잖아요.

예전에는 돌아만 다녀도 뭐라고 했는데,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한두 달이 아니라 2년 간다고 생각했으면 그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풀어도 되는 것들에는 너그럽게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들에 집중했다면, 지속 가능하면서도 비난과 갈등 같은 사회적 내상을 적게 입는 방식으로 코로나19를 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Q. “시민들의 협조도 자원이다”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국민이 협조한 만큼 보상은 됐다고 보시나요?

많은 사람이 보상을 받았죠. 버텼기에 유행이 통제돼서 지금은 자유로워졌으니까요. 비용이 적게 드는 조치를 초반에 잘 정착시켜서 비용이 크게 드는 조치를 피했어요. 유럽은 그러지 못했고요. 문제는 보상을 못 받은 사람도 있다는 거죠. 노인, 청년, 학생, 자영업자, 비정규직, 장애 아동, 이주노동자, 노숙인 등에 집중된 피해가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보상이 조금 적었다고 봅니다.

- 국민이 잘 버틴 것이겠죠?

자의든 타의든 그런 부분이 있죠. 우리나라는 개개인에게 천차만별인 위험과 이득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기준을 정한 면이 있어요. 그런 기준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요. 예를 들어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도 안 지키는 사람 많았거든요. 그런 정책 수립과 실행 사이에서 불균형이 생기다 보니 정부 정책의 신뢰가 깎이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죠. “과학방역이 맞냐”라는 얘기가 대표적이었고요. 결국 협조라는 자원이 축나 버렸죠. 그래서 오미크론 변이 유행 이후에는 방역 기조 전환이 위험이 없어졌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원래 위험은 있지만 일상생활을 위해 의무를 완화하고 자율로 지켜야 하는 부분을 명확히 했어야 하는데, 사람들을 의무에 묶어 놓다 보니 의무가 없어짐을 위험이 없어졌다고 인식했던 거죠. 한편 오미크론 유행 때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위험을 과소평가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계절독감 수준이다”라는 메시지도 그랬고요.

Q. “향후 2주가 고비다”, “거의 다 와 간다”와 같은 정부 메시지가 자주 나왔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공통으로 겪었던 과정인데, 명백한 실책이었던 것 같아요.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급급해 미래에 쓸 수 있는 자원까지 끌어 쓴 거였어요. 2주가 지나도 잡히지 않을 것이었고 잡힌다고 해도 풀면 다시 퍼지는 것이었죠. 그래서 정부의 지침에 협조한 사람과 이대로는 못 산다는 사람이 나눠졌고, 상호 비난이 장기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미쳤어요. 물론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에 비해 일상이 많이 보장됐고, 예방 차원에서 적극 3T(Test, Trace, Treat) 정책도 쓰고, 스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도록 유도했던 측면에서 잘했다고 말할 부분은 많이 있죠. 초반 한두 달 정도는 봉쇄가 작동할 수 있기에 그때는 적극적으로 하는 게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위험의 실체가 드러나면 그에 맞는 대응으로 바꿔 나갔어야 했죠.

Q. 의료계 종사자 분들은 환자가 밀리고 죽어 나가는 모습을 직접 목도했으니 위원님의 의견과 충돌할 수 있었겠어요.

그분들도 자신이 연구한 대상 안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바로 앞에서 환자가 죽어나가는데 조금 풀어도 괜찮다고 말하기 어렵죠. 그래서 사회경제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코로나19는 보건의료 현상이지만 그 영역을 뛰어넘는 상황이 많은데, 의료계 목소리가 커지는 메디컬라이제이션(medicalization)이 있었어요. 한쪽의 목소리만 나면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해결책을 제대로 제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많이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의료계 종사자 분들도, 저도 각자의 일을 한 거죠. 그 안에서 서로 균형을 향해 나가는 경험은 특별했죠. 의료계 분들도 제 얘기를 존중해 주셨고요. 오히려 소통할 통로가 없어서 문제였지, 모이면 활발히 소통했죠. 

Q. 코로나19가 차별, 혐오, 반목과 같은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낸 것 같기도 한데요.

제일 약한 부분을 공격할 줄 아는 바이러스였고 인류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죠. 대신에 교훈을 줬어요. 네가 안전하지 않으면 나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 사람들은 다 연결돼 있다는 것, 이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연대라는 것, 손을 맞잡지 않으면 자연의 도전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줬죠. 코로나19가 인류가 마주한 유일한 도전은 아니거든요. 앞으로 기후위기도 있을 텐데, 거기서 연대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걸 강조해 준 셈이죠. 물론 역설적으로 사람은 연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도 깨닫게 해 줬고…

Q. 미래에 이와 같은 비슷한 질병을 다시 맞이했을 때, 그때는 우리가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이겨낼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코로나19를 퇴치할 수 있는 기회가 딱 한 번 있었거든요. 백신 개발했을 때. 그때 '팀 휴먼'이 '팀 바이러스'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얻은 건데, 선진국들이 백신을 쌓아가는 동안 저개발 국가에는 아예 보급이 안 됐고, 글로벌 백시네이션(vaccination) 시도도 있었는데 잘 안 됐죠. 백신 물량이 충분해졌을 때 전 세계가 다 같이 짧은 기간에 맞아서 효과를 봤다면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러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변이인 델타와 오미크론이 나오면서 엔데믹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죠. 하지만 되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그림은 이상이고, 퇴치하지 못한 지금이 현실이라고 봐요. 그런 양상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 엔데믹은 풍토병이 된다는 얘기인데, 결국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건가요?

그렇죠. 절대평가로 보면 다 실패한 거죠. 상대평가로 하면 누가 더 잘했다 나눌 수 있지만.

 

사진: 유예은 기자 eliza72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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