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 졸업을 맞은 학생들의 이야기

 

노태훈(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노태훈(국어국문학과 박사 졸업)

가만히 앉아 지난 기억들을 생각하다가 결국 대학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게 됐다. 2004년의 인문대 새터(새내기배움터), 어김없이 돌아온 학과 대항(?) 장기자랑의 시간. 고교 시절 성대모사로 친구들깨나 웃기던 나는 ‘블랑카’ 역할에 자원했다. “사장님 나빠요”의 유행어가 전국으로 퍼져 나가던 시기에 때마침 새터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교육’도 받았으니 됐다 싶었다. ‘새터에 참여한 04학번 신입생들의 하루’라는 주제로 이런저런 춤과 노래까지 섞어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추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나 싶었지만, 3월이 지나서야 그 이후에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이 문제적인 재현과 무감각한 희화화가 집행부 선배들의 눈에 곧바로 포착됐고 경고 등의 징계 이야기까지 오갔다는 것이었다. 결국 특별한 일 없이 넘어가게 됐지만, 그때의 나는 억울하다 못해 종종 그들을 요즘 말로 하면 ‘선비’라고 비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꽤 세월이 흘러 나는 어쩌다가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됐고 누구보다 자주 ‘재현’의 문제를 고민하게 됐다. 그냥 티브이 프로그램의 캐릭터를 흉내 낸 것뿐이라고, 재미있으면 된 거 아니냐고,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고 이제는 말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가벼움을 가장한 악의와 혐오, 무의식적인 배제와 편견, 그런 것들을 거침없이 드러낼 수 있는 권력과 위계 같은 것에 대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조금 알게 됐다. 그걸 일깨워준 절대다수가 이 교정에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아주 많은 사람을 이곳에서 만났다.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사람, 강하게 질책하고 혼내는 사람, 질투가 날 만큼 뛰어난 사람, 너무도 나를 괴롭게 한 사람 등등. 그 모든 사람에게서 다행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떨 때는 쩔쩔매면서, 또 어떨 때는 싸우고 할퀴면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학습했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었다면 그것은 비단 전공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무수한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서 왔고, 그래서 내 가방끈은 그들로 인해 저만치 길어진 듯도 하다.

신입생으로 입학해 학기를 마친 뒤 군대에 갔고 복학 후 학부 3년 반, 석박사과정 4년을 휴학 없이 다니고 수료 후 논문 제출 기한을 꽉 채워서야 졸업을 하게 됐으니 이런 게 ‘화석’이고 ‘산증인’인가 싶기도 하다. 녹두에서 10년, 낙성대에서 5년이면 관악구 토박이라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학부생, 대학원생, 조교, 직원, 강사 등 내 마이스누 계정에는 총 5개의 신분이 뜬다. 어쩌면 ‘교수’ 빼고 다 해 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데, 그 오랜 시간을 거쳐 수없이 많은 일을 겪으며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은 사람이 변한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사람 참 안 변한다는 말은 대체로 맞지만 어떤 경우에는 틀릴 수도 있다고, 이 학교에서 보낸 20여 년의 시간이 끝내 나를 조금은 변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여기에 남겨 두고 싶다. 이제 나는 스무 살의 나를 좀 부끄러워할 수 있게 됐다. ‘흑역사’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파릇파릇한 추억이 아니라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겠다는 성찰과 반성으로 지난날을 기억하며 교정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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