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 졸업을 맞은 학생들의 이야기

문지현(바이오시스템공학부 졸업)
문지현(바이오시스템공학부 졸업)

수도 없이 교문을 들어섰습니다. 만원의 5513 틈에서, 셔틀버스 안 동기들 옆자리에서, 전공 서적을 가득 메고, 과제 마지막 문제를 풀며, 걸어서, 뛰어서, 아침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교문을 넘었습니다.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지만 한 번도 교문 밖을 나섰던 적은 없었습니다. 주저하며 들이민 첫발을 뒤로, 이 교문 안에서 방향성 없는 시간들을 마음껏 누볐습니다.

기억에 남는 강의를 꼽으라면 명강의로 유명했던 ‘심리학개론’, 동기들과 밤을 샜던 ‘공학수학’ 등일 것만 같았는데, 뜬금없이 어느 지루했던 수업의 마지막 강의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담 한 번 없는 지루한 전개에 내내 펜만 굴리던 그 수업에서, 종강 직전의 첫 사담이 지금껏 잊히지 않습니다.

“나랑 같이 수업을 듣던 친구들은, 지금은 미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고, 유명한 책을 발간했고, 큰 사업을 하고 있어요. 저도 생각지 못했지만 여기서 여러분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누구도 예상할 수 있던 일은 아니었어요.”

“여러분들도 멋진 사람이 될 겁니다, 분명.”

결정이 느린 저에게,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갈지 자유롭게 정해보라며 주어진 대학의 짧은 시간은 가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주저했던 첫발이 무색하게, 부지런히 이곳을 누비며 후회 없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급커브가 수도 없이 등장하는, 경사각을 알 수 없는 레일 위를 달렸습니다. 뭐라도 찾아보겠다고 밤을 새 전공과목을 공부했고, 땀과 눈물로 가득했던 봉사활동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카메라 장비를 이고 잔디를 뛰어다니며 동아리 활동을 했고, 어색한 정장을 입고 인턴 출근을 했습니다. 때로는 동기들과 선후배들 사이에서 반 정도만 겨우 기억나는 취한 밤들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부지런한 발버둥에도, 무언가 근사한 답을 내긴 어려웠습니다.

돌이켜보면 중앙도서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날에는 꼭 시험을 망쳤습니다. 강의실을 나서며 한 글자라도 더 담지 못한 새벽을 내내 후회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험을 잘 못 봤으니 그 시간들이 전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시간들에 담긴 정제되지 않은 열정이 전부 의미가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가득 채우는 시험 기간의 학구열과, 아침이 밝아 오는 도서관, 시험 강의실로 향하는 새벽의 냄새가 좋았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나왔을 때의 야속한 햇빛과, 체념하며 도착한 과방에서 동기들에게 울분을 토하는 그 순간들이 조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기억은 휘발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나가는 모든 행복의 순간에도 아쉬움이 늘 함께했습니다. 그래서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제게는 설득력이 없다고 느꼈습니다. 순간은 사라지고 남는 건 결과뿐이라고들 하지 않던가요. 그러나 이곳에서, 삶을 값지게 만드는 데는 과정의 기여가 더 크다는, 조금은 평범한 결론을 얻어 나섭니다. 불안함이 앞섰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기억은 새벽이 더 깊습니다. 새벽의 중앙도서관이나, 바람을 쐬던 자하연이나, 추위에 떨던 과방이나, 좁은 동아리방이나, 그런 것들이 더 남습니다. 그 시간을 함께한 동기들과 선후배들, 동아리원들, 그런 사람들이 더 남습니다. 진한 기억들은 조금도 휘발되지 않았습니다. 추상적인 결론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이곳에서 배운 건 세상을 진하게 살아가는 법입니다. 저를 뚜렷하게 하는 것은 모호한 고민의 시간들이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고, 막연한 감정들이라는 것이 이곳에서 찾게 된 진리입니다.

학교에는 제 20대의 밤과 방황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고, 이 순간을 함께해 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학교에는 기쁨과 슬픔과 좌절과 황홀이 있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있습니다. 

학문을 배우고 길을 찾겠노라 교문을 들어섰지만, 후회 없는 방황의 시간을 돌고 돌아 찾은 것은 모호했던 스스로에 대한 분명함이었습니다. 멋진 사람이 될 거라는 한 마디의 확신을 안고, 모호함 속을 마음껏 누비고 뛰었던 이 교문 밖을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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