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교수 인터뷰 | 철학과 안성두 교수

시원한 장대비가 내렸던 지난달 22일 오전 인문관5(6동)에서 안성두 교수(철학과)를 만났다. 서울대에서 13년 가까이 인도불교 연구에 매진했던 안 교수는 스스로를 고전학자라고 소개했다. 정년 이후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산스크리트어로 남아있는 『유가사지론』 문헌 번역을 완료해 출판할 예정”이라며 “이후에도 여러 인도유식사상 관련 문헌들을 번역하려 한다”라고 답했다.

 

 

Q. 독일에서 인도불교를 연구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인도불교에 입문한 계기는 무엇인가?

A.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 한국학대학원에서 한국불교철학을 공부했다. 원효의 저술을 통해 불교 사상을 이해하려 했으나 의미 파악이 쉽지 않았다. 그때 독일 함부르크대 슈미트하우젠 교수의 저서 『알라야식』을 접했다. 책이 다루는 주제와 문체가 내가 추구하는 바와 일치해 독일 유학을 결심했다. 특히 독일은 근대불교학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독일 학자들은 낭만주의에 큰 영향을 받아 인도불교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함부르크대에서 슈미트하우젠 교수의 지도하에 인도불교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했다. 산스크리트어와 고전 티베트어 학습도 병행하며 비로소 원전이 말하는 바를 조금씩 깨우칠 수 있었다.

 

Q. 연구자로서 느끼는 불교의 매력은?

A. 인문학은 학문과 자신의 삶을 연결 지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불교는 사실 종교라기보다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변화시키는 훈련을 위한 체계적 가르침에 가깝다. ‘꽃향기에 오래 노출된 몸에는 꽃의 향내가 밴다’라는 부처의 비유처럼, 연구를 계속하면서 마음의 청정함을 얻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듯하다. 내가 불교의 생사관을 완벽하게 체화한 것은 아니나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불교 사상에 깊은 위안을 받고 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가 무엇인가?

A. 인도불교 사상사에서 의미가 있는 『보성론』, 『보살지』, 『성문지』를 번역 및 출판한 것이다. 불교에서 중요한 교리는 삼보*다. 이때 삼보의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하며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 작용과 관련된 설명을 체계화한 문헌이 『보성론』이다. 『보살지』는 보살이라는 대중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 마음을 훈련하는 방식을 단계적으로 서술하고, 『성문지』는 성문이라는 전통 수행자들의 수행법을 설명한다. 불교 사상에는 의식의 본성에 관한 상당한 수준의 심리학적 용어가 산스크리트어로 기록돼 있다. 기존 한역본이나 티베트어 번역본으로는 인도불교의 역사성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고 느꼈다. 물론 한 문화가 다른 문화권에 전이될 때 오래 축적된 사상과 문화적 문법이 제대로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며 전문 용어를 번역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Q. 불교가 현대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A. 불교는 사상적으로 매우 급진적이다. 어떠한 신성(神性)도 인정하지 않고 오직 마음이 보는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다. 불교는 인간의 욕망과 증오, 무지 등의 정서적인 혼돈 속에서 우리의 앎이 영향을 받고 왜곡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앎의 왜곡이 우리 의식 깊이 자리하기에 수행과 명상이라는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실재를 이해하는 방식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을 배우는 것이 혼란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언젠가 좋은 해답이 돼 줄 것이다. 현대사회의 정신적 위기가 증폭될 때 이런 불교의 지혜가 쓰임이 있으리라 믿는다.

 

Q. 학생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A. 학생들이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 중인 것으로 안다. 물론 이를 위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삶의 진실한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는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며 그것들은 어느 학문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지식을 깨우치는 과정에서 그 본질을 등한시하지 않아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본질에 관한 질문을 좇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타인보다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이 장기적인 레이스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삶의 핵심으로 직진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은 고단하나 우리를 끝까지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안성두 교수는 가장 좋아하는 고전 구절로 『파우스트』의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는 문장을 읊었다. 목표를 향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방황은 인간에게 불가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시차가 나더라도 노력하는 바로 그 시간으로부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라며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삼보(三寶): 불자가 귀의해야 한다는 불보·법보·승보의 3가지를 가리키는 불교 교리.

 

사진: 카와하라 사쿠라 기자 sakusakukki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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